크리스는 그리스 혈통의 70세 백인 남성이다. 그는 뉴욕 지하철에서 근무하다 은퇴하고, 학교 급식 직원으로 일한 지 7년 되었다고 했다. 내가 첫 출근한 날, 그는 바로 조퇴했다. 감자 깎는 칼에 엄지 손가락 밑의 두툼한 살을 같이 깎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살이 까인 정도가 아니라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2주 넘게 볼 수 없다가 손에 커다란 반창고를 붙인 채 다시 나타났다. 손으로 일하는 직업인데 손을 쓸 수 없으니 당연히 내가 할 일이 많아졌다. 그 많은 설거지도 나의 몫, 무거운 물건을 나르는 일도 나의 몫. 모든 돈도 나의 몫이면 좋으련만.
힘든 건 나의 몫,
좋은 건 너의 몫.
인생에 이런 일은 참 많다.
그가 일을 못하고 자리만 차지하는 대신 나는 정신없이 바빴다.
"여기서 일해보니 어때? 재밌지? 재밌지?" 그가 웃으며 물었다.
나는 눈치 좀 채라는 듯 허무하게 웃어 보였다. 내 메시지가 너무 약했는지, 그는 계속 말했다.
"아이들이 너무 귀엽잖아. 내가 손주들을 다 키웠는데, 아들이 이사 가는 바람에 요즘엔 볼 수가 없어. 아이들 보면 손주 생각나고 너무 좋아." 해맑은 그를 보고, 나는 한숨을 쉬며 속으로 말했다. '제발 눈치 좀 챙겨주셔요'
그래서인지 첫 이미지가 그리 좋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게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그는 느긋하지만 게으르지 않았고, 긍정맨이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동료가 너무 바쁠 땐 슬며시 나타나 도와주고, 직장 분위기가 안 좋을 땐, 싱거운 농담으로 모두의 긴장을 녹이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어깨통증이 있을 때, 그는 내 대신 무거운 우유상자 옮기는 일을 도맡아주었다. 혼자 냉동실 물품을 정리할 때면 그가 함께 해주기도 했다.
반면 매니저는 처음에는 좋았는데 함께 일할수록 쉽지 않은 스타일이었다. 그중 하나가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어제는 이렇게 일해라 하고, 오늘은 왜 그렇게 했냐며 짜증을 내곤 했다. 하루하루 기준이 달라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다.
어느 날, 그녀는 내게 또 짜증을 냈고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크리스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You win. You know... I don't listen to her" 그러며 하는 말이, 물어봐야 할 일이 있으면 물어보기는 하는데, 영 아니면 그냥 자기 맘대로 한다고 했다. 사실 그는 언제나 "Yes! Ma'am"이라고 깍듯하게 답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 말이 너무 웃겼다. 처음에는 웃겼지만,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많은 생각이 오갔다. '아니, 듣지도 않을 거면서 왜 물어보지? Yes면 Yes고 No면 No라고 그 자리에서 말해야 정직한 게 아닐까?'
집에 돌아와 남편과 식사하며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남편 하는 말이 "크리스가 지혜로울 수도 있어." 하는 거였다. 아무리 자기 의견이 옳아도 그 자리에서 반박하면 상대방의 감정이 상하기 쉽고,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기에 시간차를 두는 것이 지혜롭다는 거였다. 실제로 크리스는 누군가와 싸우는 법이 없어서 적도 없었다. 또 'I don't listen'이라는 조금 웃기는 철학(?)이 있기에 그는 항상 밝고 건강하다.
나는 어떤 말이 마음에 걸리면 계속 곱씹는 안 좋은 습관이 있다. 그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내가 뭐 잘못했나? 아, 그때 그렇게 되받아 말해줬어야 했는데... 늦었다. 분하다. 한 3일 정도 생각하고 나면 지쳐서 내 마음을 놓아준다. 생각하고 괴로워하며 스스로 벌을 주고받은 후, 평안함에 이른다. 3일이라는 시간은 이렇게 고민해 봤자 아무 소용없음을 깨닫는 기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일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고, 해결되어 있음을 발견할 때가 많다.
"Listen"과 "Don't listen"을 잘 선택할 때, 성장하기도 하고 자신을 지키기도 하는 것 같다. 듣지 말아야 할 것을 안 들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다른 것을 집중해서 듣는 것이다. 다른 것을 듣는 동안, 듣지 말아야 할 것은 잊힌다. 생각의 초점을 좋은 것에 맞추는 연습을 날마다 하다 보면, 언젠가 좋은 어른이 되어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