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급식직원에서 코스코 시식 코너 직원으로
미국에 오래 살아도 한인사회에서 주로 한국인들과 어울리면 영어가 쉽게 늘지 않는다. 쇼핑이나 식당 방문 같은 일상은 단순하고 반복적이어서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다. 하지만 과도한 의료비 청구서를 받거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기면 상당한 불편을 느낀다. 억울한 상황에서 자신을 방어하려면 모국어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외국어로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건 더 어렵다. 특히 직장을 구하려는 순간, 그동안 영어 공부를 소홀히 한 자신을 원망하게 된다. 한인 회사에 지원하면 다소 수월할 수 있지만, 그러면 또 한인사회에 머물며 영어를 사용할 기회를 잃으니 제자리다. 그래서 나는 먼저 몸을 쓰는 직업에 도전했다. 사실 예전 유학 시절에도 영어 사용을 최소화하려고 컴퓨터를 전공으로 선택했던 경험이 있었다.
20년 넘게 주부로 지내다 첫 취업한 곳은 카운티에서 운영하는 학교 급식소의 푸드 워커였다. 집에서 늘 음식을 만들어왔기에 자신감이 있었고, 음식만 만들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매니저, 동료, 선생님, 학부모, 학생 모두 영어를 사용하니 다양한 답답한 상황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늘어난 건 영어가 아니라 눈치였다. 상황과 맥락을 파악해 눈치로 일을 처리하면 큰 탈 없이 해낼 수 있었다.
학교 급식 직원의 장점은 방학과 좋은 의료보험 혜택이었지만, 월급이 적다는 단점이 있어 1년쯤 지나 이직을 결심했다. 학교에서 일하며 꾸준히 구인구직 사이트를 검색하던 중 코스코의 음식 시식 코너 담당 직원 모집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했다. 며칠 뒤 서류 심사를 통과하고 영상 인터뷰 일정이 잡혔다.
영상 인터뷰는 대기 순서를 기다리며 남은 시간을 안내받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좋은 첫인상을 주는 것이다. 그 비결은 밝고 환한 미소다. 미소는 언어와 상관없이 통하는 최고의 소통법이다. 회사는 함께 일하는 곳이니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사람을 선호한다.
나는 예상 질문과 답변을 5장 분량으로 준비했다. 하지만 면접관은 밝게 웃는 나를 보고 처음부터 호감을 보였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마친 뒤, 면접관은 주변에 있는 아무 물건을 골라 자신에게 팔아보라고 했다. 예상치 못한 요청에 당황했지만,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그래야 실수하더라도 "원래는 더 잘할 수 있는데 당황해서 그런 거다"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시던 물컵을 들고 "이 잔으로 말할 것 같으면....어쩌고저쩌고"라며 떠들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호탕한 웃음과 살짝 애교를 곁들였다. 면접관도 웃으며 재밌게 듣더니 말했다. "한 가지가 빠졌네. 가격을 말해야지." 나는 "아하!"라며 자연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면접관은 그 자리에서 언제부터 일할 수 있는지 물었고, 그렇게 두 번째 직장이 정해졌다. 알고 보니 나는 코스코 정직원이 아니라 협력업체 직원이었지만, 코스코 매니저와 안면을 틀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2주 뒤, 나는 코스코로 출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