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을 위한 밑거름
나는 개그맨들을 존경한다. 그들은 일반인이라면 상상도 못 할 망가진 자기 모습을 과감히 드러낸다. 얼마나 용기 있는 사람들인가! 그들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라, 지나친 자기 인식과 검열을 내려놓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만약 그들이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한다면, 영어를 못한다 할지라도 사랑받을 것임에 분명하다. 무엇이든 될 수 있도록 자신을 내려놓는 그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며 진심으로 배우고 싶다.
한국 사람들은 미모와 고학력을 겸비한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미국에 살면서 유창한 영어실력을 갖춘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학력이나 외모가 평범해도 당당히 영어로 소통하는 소수민족들은 자주 본다. 그들은 발음도 어색하고 문법도 엉성하지만 직장도 잘 구하고 자신감도 넘친다. 그 비밀은 간단하다. 쪽팔림을 느끼지 않거나, 느껴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런 이상한 영어가 부끄럽지 않냐고 물어본 적은 없다. 그런 걸 묻기에는 내 영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나는 말도 안 통하는 미국에서 -한국에서는 거의 퇴직당할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으니 그 어려움은 날마다 좌절과 비참함의 연속이었다. 남들이 나를 함부로 대해서라기보다는, 내 서툰 영어와 행동이 비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말 나는 날마다 '쪽팔림'을 느끼며 산다. 이 값싼 단어밖에는 설명할 다른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그런데 놀랍게도 '쪽팔림'을 적이 아닌 친구로 삼으니 비로소 성장이 시작되었다.
가끔 직장에서 "미국에서 산 지 얼마나 됐냐?"라고 물으면 "20년 넘었다"라고 답한다. 그러면 그들은 당황스러워하고 나는 부끄러워한다. "아니, 20년을 넘게 살았는데 어떻게 영어가 그 모양이냐?"라는 말 없는 질문이 느껴져서다. (20년 넘게 미국에 살아도 영어 안 쓰고 살 수 있는 곳이 미국이라고 아무리 말해봤자 그걸 누가 이해하겠냐고요!)
학교에서 배운 영어와 현실의 영어는 차이가 너무 크다. 발음도 한 단어 한 단어 정확히 해주지 않고, 생략하는 문장도 너무 많다. 관용어도 많고, 사회 문화적으로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다. 거기에 남부와 북부, 서부와 동부의 차이도 존재한다. 실수할까 혹은 나를 우습게 볼까 봐 말을 하지 않으면, 영어는 늘지 않는다. 그들이 알아듣든지 못 알아듣든지 나는 입을 떼야한다. 입을 떼는 게 소통의 문이고, 쪽팔림은 소통의 고속도로다. 이 길을 따라 계속 달리다 보면 결국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이렇듯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 언어소통의 문제뿐이겠는가. 나는 많은 영역에서 '낮아짐'을 인정하는 것이 주는 유익을 깨닫는다. '낮아짐'을 인정하는 것이 존재의 비천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겠다. 내가 '꿈꾸는 내 모습'이 아니라 '현실의 내 모습'을 마주하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다. 내가 꿈꾸는 모습이 나라고 믿고 싶을 뿐, 거기에는 거품이 끼어있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거품을 들키는 순간, 나는 낮아졌다고 인식할 수 있지만 실은 진짜 나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나로부터 새로운 내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