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을 보내며

by 마리안

드디어 무지하게 바쁜 Thanksgiving Season이 지나갔다. 얼마나 많은 물건이 입고될지 걱정이 앞서 잠을 설칠 지경이었다. 6일 동안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해서 그날 들어올 물건들을 저장하기 위해 냉장고를 비우고 준비했다. Thanksgiving 직전에 냉장고에 들어가야 하는 모든 종류의 야채, 샐러드, 과일 총괄책임자가 되었다. 일 년 중 가장 매출이 크고 바쁜 시기인 Thanksgiving은 스토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간이다. 원래 이런 때는 책임자를 바꾸지 않지만,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맡게 되었다. 내 집 냉장고 정리도 힘들어 미루다가 상해 버리는 음식이 다반사인데 매장의 대형 냉장고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하면 안 된다. 판매될 물건의 수량을 예측하고 적당하게 주문한다. 물건의 종류만 130종 가량되고 수백 개의 상자가 새벽에 배달되면 종류별로 다시 정리해서 냉장고에 쌓아야 한다. 냉장고는 물건양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다. 모든 물건이 다 들어가고, 또 찾아 꺼내기 쉬우려면 정리의 기술을 발휘해야 한다. 마치 도서관 책장처럼 말이다.


나는 원래 정리를 못하는 사람이다. 집에서는 물건을 그냥 바닥에 놓아두고 며칠도 지낼 수 있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그런 장면을 보고 기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다. 그런 내가 회사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돌변한다. 물건을 실어 보관하는 바퀴 달린 이층 선반대에 상자 크기별, 종류별로 각을 세워 쌓는다. 상자와 상자 사이에 한치의 구멍도 허락하지 않고, 상자에 붙은 라벨도 모두 앞면을 향하도록 한다. 그 이유는 다른 직원들이 물건을 보고 쉽고 편하게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완벽하게 정리를 하려고 하니, 일을 할 때는 훨씬 고되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섹션리더에게는 도울 다른 직원들을 팀으로 붙여주는데, 내가 대충 하는 걸 싫어하다 보니 나와 일하기를 꺼려하는 게 느껴진다. 몇몇은 나에게 지나가는 말로 충고하기도 한다. 너무 까다롭게 하지 말라고. 너무 완벽하게 하려 하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완벽주의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에 있어서 완벽주의자가 된 이유는 타인에 대한 배려이고, 내 나름의 직업윤리 때문이다. 나는 회사에서 공짜로 일해주는 게 아니다. 일하는 나의 시간은 회사 입장에서는 돈이다. 내 시간과 노동을 돈과 맞바꾼 것이다. 또 내가 퇴근한 이후, 다른 직원들이 정리된 물건을 찾아 손님들에게 빠른 시간에 전달하는 것을 돕기 위한 배려이다. 이런 배려정신은 내 인생을 참 피곤하게 만든다. 미국은 길이 어둡다. 가로등이 거의 없어서 새벽에는 아주 캄캄하고 좁은 길을 운전하는 경우가 많아서 대다수 사람들은 상향등을 켜고 운전한다. 나는 상향등을 켜고 운전하다가도 앞에 멀리서 차가 오는 것을 보면 상향등을 끈다. 그러면 상대방 차의 밝은 불빛에 나는 눈을 뜰 수 없는 지경이 되지만, 상대방은 상향등을 켠 채로 내 곁을 지나간다. 나는 다시 상향등을 켠다. 사실 상대방을 위해 상향등을 끄는 것은 기본이고 상식인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운전을 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놀라게 되었다. 때때로 너도 한번 당해봐라 했다가 이내 후회하고 마음이 불편해진다.


TV 드라마를 보다가 이런 대사를 들었다. "나는 이제부터 막 살 거야!" 너무 공감되고 가슴이 상쾌해지는 대사였다. 그래서 같이 다짐한다. 나도 막 살거야. 하지만 그때뿐. 나는 다시 나로 돌아가 고되고 힘든 매일을 이어간다. 그냥 나로. 불편한 나로. 온몸에 파스를 붙이고 다리를 질질 끌고 자면서 끙끙거리면서도 말이다. 나도 이런 내가 답답하고 어리석게 느껴진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산 삶은 비록 성공한 삶은 아닐 수 있어도, 후회한 삶은 되지 않을 것임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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