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뮌헨의 마리

내 이름을 버리다

by 뮌헨의 마리


'성 안 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언제 다시 갈 수 있을까. 나의 금강암, 나의 범어사, 나의 부산.



2019. 8월. 아이와 부산을 방문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ktx 안에서 이렇게 인사했지. "Goodbye, everybody.."



부산에 가고 싶었다. 범어사에 가고 싶었다. 범어사 계곡을 지나 금강암에 오르고 싶었다. 그 맑은 경내에서 그림처럼 펼쳐지는 산자락을 굽어보고 싶었다. 힘은 좀 들겠지. 계곡이 보통 가팔라야 말이지. 땀을 줄줄 흘리며 경내에 도착했을 때. 그 너른 마당을 마주할 때. 대청마루에서 돌담 쪽으로 꺾어져 볕이 드는 쪽마루에 앉아 1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마실 때. 그때 그것은 한낱 커피가 아니라 감로수다. 법당 입구에 세로로 쓰인 글씨들. 딱딱한 한자가 아닌 곡선의 아름다운 한글 주련들. 대미는 암자를 나설 때 대문 밖의 글귀다. 테이프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경구가 가슴에 담겨 집까지 따라온다. 요즘도 테이프를 틀어놓는지는 모르겠지만. 볼 때마다 가슴에 담기던 글. 화내지 않는 낯빛과 부드러운 말 한마디. 그것만으로는 조금 약하지 않은가, 생각하던 젊은 날도 있었다. 인생에는 그보다 폼 나고 빛나는 일이 많을 줄 알았다.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십이 넘으니 알겠다. 이 쉬운 말들의 깊은 속뜻을.


온천천도 걷고 싶었다. 언제나 햇살이 눈부시던 그 개울가. 10년도 전에 만삭의 몸으로 한국에 와서 아이를 낳기 전에도 자주 걷던 길. 혼자서도 걸었고, 그리운 샘과 Y언니와도 자주 걷던 길. 동래에 살던 오랜 벗 Y와도 걸었다. 온천장 스페셜티 카페 모모스에도 자주 들렀지. 그곳에서 친언니와 커피를 배우던 날들이 있었다. 둘이 카페를 낼까 하다가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접은 건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 그때의 바리스타 자격증을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쌉쌀 달콤하던 스페셜티 커피의 맛. 다시 볼 날이 올까. 그 카페의 풍미 가득했던 식빵과 디저트들. 거기서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고, 독일에서 돌아온 M도 만났지. 언제 다시 갈 수 있을까. 온천장 역 반대편의 먹거리 골목. 칼국수가 맛있던 식당. 칼국수는 대학 친구들 K와 J와 지금은 개명한 Y와 먹었다. 조금 더 가면 옛날 추어탕집. 경상도 식으로 맑게 끓인. 내가 막 귀국해서 입맛을 잃었을 때 유일하게 목으로 넘어가던. Y언니가 직접 가서 바리바리 사서 택배로 보내주던 추억의 맛.



서울의 병실 복도의 액자 1



서울에도 있다. 잊을 수 없는 정동길. 얼마나 자주 그 거리를 걸었던가. 독일로 오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도 한겨울의 정동길이었다. 나뭇잎은 떨어지고 커피 향만 흩날리던 쓸쓸하던 그 거리. 덕수궁과 돌담길은 언젠가 Y언니와도 걸었지. 아이처럼 좋아하던 언니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고. 한겨울 그리운 샘과 J언니와 촛불을 들던 광화문 네 거리. 남편과 아이와 항아리 수제비를 먹던 삼청동길. 주말에 어슬렁거리던 북촌과 서촌길. 아이와 가던 인사동길. 스승을 모시고 불법을 공부하던 종로와 익선동 골목들. 문학 공부를 하던 경복궁 역. 한여름날 밤 아이와 자주 가던 예술의 전당. 춤추던 분수. 국악마당. 연지네와 유유자적 놀던 교대와 한살림 앞 놀이터. 아이들을 우르르 데리고 가서 점심을 먹어도 부담이 없던 교대 밥상. 틈만 나면 달려가던 꽃 카페. 지금은 이름이 바뀐 옛날 시다모. 그 카페의 맘씨 좋고 차분하던 여사장님. 아직도 계실까.


우리가 살던 오피스텔 2층의 알밥 집. 우리 아이가 꿈에서도 가고 싶어 하는 곳. 그곳의 착한 삼촌들. 아버지와 아들들이 좋은 쌀로 1년 365일 일하던 곳. 내겐 성실함의 대명사. 주말엔 쉬어도 될 텐데, 주말이면 텅 비어 마음 쨘하던 그 밥집. 한남동 오거리의 능소화. 가을이면 노란 은행잎이 창문 가득하던 파리 크로와상의 2층 창가. 그 자리에서 마시던 뜨거운 아메리카노. 그리운 샘과 걷던 한강의 샛강 산책길. 지금쯤 봄밤을 환하게 밝히고 있을 여의도 벚꽃길. 나도 벚꽃처럼 미련 없이 이름을 버리려 한다. 브런치라는 세상에서 이름 없이 살고 싶다. 독일에서 암 판정을 받고 암 환자라는 게 부끄러워 이름을 버렸다. 한국에서 재봉합 수술을 받고 성마저 버린다. 나는 이제 내 이름의 무게를 벗고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려 한다. 내 이름은 뮌헨의 마리. 내가 유일하게 돌아갈 곳도 살아갈 할 곳도 거기라서. 한국을 떠날 때 두고 간 미련과 언젠가 돌아오겠다는 기대도 내려놓는다. 부질없다. 뮌헨,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그곳이 내 집이다.



서울의 병실 복도의 액자 2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