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의 푸른 샌들

나에게 주는 선물

by 뮌헨의 마리


유럽에서 내가 반한 색은 초록과 블루.


한여름 유럽의 색이 화이트와 블루라면 뮌헨에 와서 내가 사랑한 것은 초록과 블루였다. 초록은 봄, 블루는 여름. 가을부터 겨울 지나 봄까지는 따뜻한 호박색과 오렌지빛에 빠져들겠지. 마치 해에게 끌리듯. 추운 겨울날 나를 이끌던 카페 디바의 노란 샹들리에처럼.

샌들을 샀다. 보는 순간 첫 눈에 반한 건 컬러였다. 다른 색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이국적인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다. 평소 물건값이 착한 가게였다.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가격. 브런치에 40번째 글을 채운다는 조건으로 나 자신에게 선물했다.


내가 샌들을 산 곳은 한글학교에 가는 날이면 아이와 가끔 들르던 중고 가게였다. 꼭 들어가 볼 생각은 없었다. 창가에 어지럽게 쌓인 물건들 속에 내 눈길을 사로잡은 그 샌들을 본 순간 마법에라도 걸린 듯 가게 안으로 들어서고 말았다. 앞 코가 뾰족하고 끝이 살짝 들린 모로코풍 푸른 샌들.

물건에 특별한 의미를 붙여 사는 편은 아니었다. 샌들 가격이 높지는 않았지만 충동구매라 나 자신을 설득할 필요도 있었다. 주인 여자 말로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거란다. 그때 생각난 것이 브런치에 40번째 글쓰기였다.


괴테 플라츠의 한국 슈퍼에 장을 보고 오는 길이었다. 전날 M의 집에 초대를 받고 갔다가 그녀의 비빔국수에 반한 게 계기였다. 나는 국수를 좋아했다. 한번 따라 해보고 싶었다. M에게 세세한 레시피도 받아 적어두었다. 재료만 준비되면 흉내라도 낼 수 있을 지 아나.
감동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음식에 관한 한 내 소망은 소박했다. 내가 먹어본 맛있는 음식을 가족들에게 맛보게 하고 싶었다. 아이가 노래 부르는 알밥을 조카가 해주겠다 한 것도 나를 단숨에 달려 나가게 만든 이유였다.


뮌헨에는 고가의 앤티크 가게를 포함 세컨드 핸드 숍이 많다. 봄이 오자 꽃망울이 터지듯 사방에서 벼룩시장도 자주 열렸다. 독일은 벼룩시장이 흔했고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것도 일상이었다. 내가 자주 들른 곳은 등굣길에 NGO에서 운영하는 자선 가게였다.

독일 문학책이나 아이의 책과 장난감, 간혹 예쁜 그릇이나 주방 용품까지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다. 모든 게 기부 물품으로 판매가 되었고, 멋쟁이 할머니들이 태반인 자원 봉사자들은 무료로 일했다. 물건 상태가 깨끗하고 품질이 좋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뮌헨 시내에만 서너 개의 오프 가게가 운영 중이었다. 책만 따로 모아 파는 곳도 있고,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독일의 벼룩시장이 실생활에 잘 녹아든 예다.



봄에는 우리 동네에서도 벼룩시장이 열렸다 집 앞에서부터 사방 500미터 반경에는 집집마다 사람들이 물건들을 가지고 나왔다. 온 동네에 축제가 열린 것 같았다. 뮌헨 시에서 공식적으로 허락하는 벼룩시장이란다. 일명 뮌헨의 호프벼룩시장 Hofflumarkt München. 해마다 봄가을에 구역을 돌아가며 일년에 딱 두 번 안 쓰는 물건들을 파는 것이다.

동네 벼룩치고는 규모도 컸고 종류도 다양해서 볼 거리가 많았다. 보다가 지치면 금방 집으로 돌아와 쉴 수도 있었고, 군데군데서 따끈한 와플을 1유로에 팔았다. 무엇보다 즐거운 건 모든 건물이 오픈되는 날이라 평소에 궁금하기만 했던 이웃 건물들의 공동 정원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 거기서 새로운 이웃을 사귀기도 했다. 라다크에서 온 아빠 소남과 독일 엄마 알렉산드라. 그들의 어린 두 딸 파드마와 마리아와의 만남이 그랬다. 여름이면 라다크로 돌아가는 알렉산드라 가족이 11월에 돌아오면 함께 차를 마시기로 했다. 이렇게 뮌헨의 벼룩시장에는 뜻밖의 만남도 준비되어 있다.


그날 내가 알렉산드라에게 산 것은 그녀의 할머니가 쓰시던 티세트였다. 찻주전자와 잔들과 접시를 싸게 샀다. 문 앞의 장의자에 공짜로 가져가라며 쓸 만한 물건들도 올려놓았는데 그게 내 발길을 그녀 쪽으로 이끌었다. 사소한 행동 하나에 얼굴만큼이나 고운 그녀의 마음씨가 고스란히 비쳤다. 그런 친구를 한 명 갖고 싶었다.

그 후로도 알렉산드라와 소남과 여러 번 마주쳤다. 연꽃이라는 이름의 큰 딸 파드마는 알리시아 학교 유치원에 다녔다. 학교 앞에서는 소남을, 이자르 강변 자전거 길에서는 두 아이를 태운 트랄리를 자전거에 메고 달리는 알렉산드라를, 월드컵 때는 온 가족이 집 앞 소피아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도 했다. 남편들을 소개한 후 우리는 서로의 이름과 전화번호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길고 우울한 11월에 가까이 사는 친구가 돌아온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따듯해졌다.


결혼 직후 시부모님과 튜니지아에 간 적이 있다. 내가 만난 첫 이슬람 문화였다. 눈부신 태양과 남자들의 길고 하얀 옷. 흰 집들. 푸른 대문과 창들. 푸르고 푸르던 바닷빛. 이국적인 문양의 작고 길쭉하고 노란 열매처럼 생긴 그릇은 지금도 매일 우리 식탁을 오르내린다. 모로코는 아직이다. 고작 샌들 하나 산 것뿐인데 모로코에 한 발 가까워진 기분이 드는 건 뭐지. 수도 카사블랑카는 그 이름만으로도 얼마나 근사한가.

모로코의 빛으로 감싼 샌들을 신을 때마다 짙푸른 바닷물에 두 발을 담그는 착각이 들 지도 모르겠다. 내가 다가가기도 전에 모로코라는 희고 푸른 세계가 내게로 찾아온 느낌. 샌들을 백팩에 넣고 돌아오는 길에 이탈리 카페로 달려가 마흔 번째 글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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