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어느 추운 겨울밤. 오스트리아와 가까운 이태리 북부 도시 볼자노. 회색 승복의 두 분 스님을 만나다. 말씀 아끼시는 핀란드 출신 노스님. 마른기침 끊이질 않던 이태리 젊은 스님. 오래전 송광사에서 출가하신 노스님이 유일하게 기억하고 건네시던 한국말. 커피 한 잔 하실래요. 커피 한 잔을 마시고도 선뜻 일어서지 못하고 망설이고 망설이다 여쭙기를 스님들, 저녁은 드셨나요. 피자라도 드실래요. 반색하며 얼굴의 주름살 환하게 펴지던 밤. 외투도 없이 홑 가사 하나로 얼마나 추우셨을까. 이 시각까지 배는 얼마나 고프셨을 것이며. 늦은 밤 돌아서는 발걸음 떨어지지 않아 양손에 차비 쥐어 드리며 아시잖아요, 한국에선 멀리 가시는 분들께 차비드리는 거. 이건 돈 아니고 마음인 거요.
그해 칠월의 남부 인도 마에솔. 요가 배우러 떠난 그곳에서 만난 주황색 가사 두른 라다크 출신 티베트 스님 두 분. 가까운 도시에서 공부하다 오랜만에 하루 휴가 받고 바람 쇠러 나오셨다는. 말 없는 미소로 할 말 대신하시는 노스님과 천진한 어린 스님. 오후 늦게 버스로 당도하셨다니 점심도 거르셨겠지. 괜찮으시면 제가 점심 공양이라도 대접하고 싶은데요. 마른 얼굴에서 당장 피어나던 두 송이 꽃웃음. 어젯밤 스와미 비베카난다 책을 보다가 감동받아서 스님들 뵈면 꼭 공양을 올리겠노라 다짐했더니 기도 효과가 금방 나타나네요. 평소라면 어림도 없을 서투른 너스레에 큰소리로 해맑게 웃으시던. 돌아가실 때 차비라도 하세요. 놀란 표정 숨김없이 드러나던 스님들의 맑은 눈동자.
결혼한 지 3년 만에 한국 한번 다녀가고, 다시 3년 지나 한국 온 날. 귀국하자마자 치매로 집에서 모시던 이태리 시어머니 병원에서 돌아가셨다는 전보. 가족 얼굴 잠깐 보고 줄줄이 기다리던 친구들 얼굴 한번 못 보고 이태리로 귀국하던 하늘 길. 무정도 하신 어머니. 정신 또록또록하신 아흔 살 시아버지가 딸처럼 예뻐해 주니 걱정 말라며 장례식 마치고 전화기 속에서 목소리 한결 밝던. 한 해 전 추석 무렵 오래도록 벼르던 거실 바닥 공사를 했다고. 어린 시절 대청마루 같은 청록색 무늬로 바꾼 후 한국말도 모르는 이태리 형부를 붙들고 몇 날 며칠을 예쁘제, 예쁘제 노래했다는. 밤새 거실에 작은 등 하나 밝혀 두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문 열고 나와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서 있더라는 우리 언니, 유리 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