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얘기하면 들어줄게

독일의 이웃들

by 뮌헨의 마리


외국에서 다정한 이웃을 만나는 것보다
반가운 일은 없다


아침에 출근하던 남편이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톡을 보냈다.


"오스카네가 내일 4주간 휴가를 간대. 자기네 화분에 물 좀 줄 수 있냐고 묻는데?"


운이 좋았다. 외국에서 친절한 이웃을 만나는 것보다 반가운 일은 없다. 아쉽다. 10년만 젊었더라도 나 역시 그들에게 멋진 이웃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이웃들과 요리를 하고, 주말에는 공원 피크닉을 계획하고, 이자르 강변에서 바비큐를 즐겼을 것이다. 한국 음식이 궁금해? 수시로 라면 파티를 열고 김치 강좌도 기획했을 것이다. 처음 독일에 살 때 그랬다는 말이다.

그렇지 못해 아쉽냐고? 절대 그렇지 않다. 나는 이 시간이 좋다. 번잡할 것 없는 지금의 내 생활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 외롭지는 않냐고? 천만에! 외로울 틈이 없다. 읽어야 할 책, 써야 할 글이 쌓여 있고 밀려 있기에.


나이 오십이 되니 체력도 조절해야 했다. 나를 위한 글쓰기. 내게는 중차대한 중년 계획이다. 친절한 이웃들을 만나기도 전의 복안이라 실은 미안할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미안해질 때가 있다. 윗집 오스카네가 한국 음식에 지대한 관심을 보일 때면. 그 관심의 불을 한 번은 닭죽으로 다음번엔 라면 하나로 대충 때운 후에도.

같은 층에 사는 사무엘네도 아빠가 아프리카 출신이라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다. 소위 같은 국제커플 아닌가. 맘만 먹으면 나이는 문제없다. 다만 그 마음이 딴 데 가 있다는 게 문제다. 사무엘네 젊은 엄마 토나가 주말 잔디공원에서 열리는 이웃들의 모임을 알릴 때 내키지도 않는데 거절하지 못한 건 그런 이유였다.


내가 아는 가족이라고는 오스카네와 사무엘네 뿐이었다. 밝은 성격에 마당발인 독일 여자 사무엘 엄마 토나가 친구와 동료들을 불렀는지 멀리서 자전거를 타고 온 커플들을 합쳐 스무 명도 넘었다. 안 와도 될 뻔한 자리. 후회는 언제 해도 늦다. 음식과 와인과 물과 아이들 간식까지 챙겨 잔디밭에 깔개를 깔고 삼삼오오 얘기꽃을 피었다. 열띤 토론, 특정한 화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거나 소곤소곤 사적인 얘기가 오가기도 했다. 남자들과 아이들은 드러누워 잠이 들기도 하고, 몇몇은 둥근 볼 던지기 게임을 하기도 했다.

결론은 재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처지까지는 아니었다. 그런 독일어가 안 되어서. 몇 군데 대화에 끼어보려다 실패한 후 가만히 있기로 했다. 내가 흥미롭게 지켜본 것은 학교만 그런 게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라는 것. 가만히 있는 사람은 끝까지 내버려 둔다.



우리 같으면 오스카네나 토나가 다른 사람들도 소개해 주고 그럴 것 같은데 독일의 방식은 달랐다. 본인이 직접 가서 인사도 나누고 대화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불러주었으니 살 길은 직접 찾아라. 한 마디로 쿨한 방식. 그런데 지루하고 피곤했다. 그렇다고 들고 온 책을 펼 수도 없고.
오스카네와 토나를 탓하는 게 아니다. 독일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내 스타일을 확인해 가는 의미도 컸다. 더 이상 젊지 않구나. 내가 사람들로 북적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 것도 소득이었다. 안 맞으면 안 가면 되지. 오후 내내 손대지 못한 책과 쓰지 못한 글을 아까워하지 말고.


내 경우 오십이 된다는 건 이래서 좋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안다는 것. 내키지 않는 자리를 거절해도 죽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지금이 좋다. 누군가는 걱정한다. 사람도 좀 만나고 활동도 해야 쓸 거리가 생기지 않나. 글쎄다.

운전을 잘 하기 위해 자동차 정비부터 배울 이유는 없다. 건축가가 얼마나 유능한 지는 주춧돌 하나 놓는 것만 봐도 안다고 한 건 이태리 친구였나. 글 쓸 거리는 천지에 널려 있다. 내가 관심 있게 지켜보기만 하면. 지난 오십 년간 많이도 해봤고.


저녁에 아이와 오스카집에 올라갔다. 열쇠도 받고 화분들도 보려고. 아이는 신이 났다. 단조로운 방학 생활에 뭔가 즐거운 일이 보태진 것이다. 오스카집은 나보다 아이가 더 많이 방문했을 것이다.
캐나다에서 4주간 캠핑카로 일주를 한단다. 독일 아빠 로비도 독일 엄마 안도 오스카처럼 들떠서 얼굴이 환했다. 나 역시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다. 한국에 못 가게 된 우리에게 위로를 건네는 안의 미안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러면 된 것이다. 다정한 이웃이 있다는 것은 언제나 든든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치앙마이에서 한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