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 한 달

양희언니에게

by 뮌헨의 마리


핸드폰에 초고추장이 들어갔어!




언니가 치앙마이에 간 것은 7월의 넷째 월요일. 하도 소식이 없어 월요일에 톡을 보냈더니 금요일에 답이 왔다. 언니가 떠난 지 11일째였다.


"안녕. 여기는 한국보다 안 덥다. 스콜도 자주 오고 어제는 비 맞고 걸어서 호텔로 왔다. 여기는 길 건너는 게 제일 무섭더라. 신호등도 없이 건너려고 하니 목숨 걸고 건넌다. 이제는 현지인이나 관광객이 보이면 옆에 있다가 같이 건너고. 핸폰에 초고추장이 들어가서 문제가 있었어. 이제는 괜찮은 거 같네.(...)"


과연 언니다웠다. 폰에 초고추장이 들어가는 경우가 흔한가. 아무리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고 해도. 평소에도 언니에게 즉문즉답은 기대할 수 없었다. 폰을 차에 두거나 집에 두거나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두고 다녀서 답을 못 듣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것이 언니의 매력이기도 했다.

언니와 알고 지낸 얼마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우리는 둘 다 기억력이 젬병인 사람들. 이십 때의 어느 순간 등장한 언니는 아직도 내 무대에 종종 찬조 출연한다. 자주 따뜻한 밥상을 들고서. 빈 그릇을 채워가는 법도 없이. 내가 언니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서른이 오기 직전에 한국을 떠나 마흔에 돌아왔을 때에도 언니는 어제 헤어진 사람 같았다. 10년 동안 한국을 오가며 언니를 만났다. 그때 들은 언니의 말 한마디가 나를 한국으로 돌아오게 했는 지도 모른다.


"부산에 오면 우리 집에 와서 먹고 자고 가. 언니 집을 니 집이라 생각하고. 나중에 어머니 안 계시더라도."


헤어지자는 배우자를 원망하지 않았다. 평소의 언니 성격대로라면 화도 많이 냈을 텐데. 함께 있을 때 잘해 주지 못한 것만 생각나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몇 년 동안 따로 살다가 마지막으로 도장을 찍고 나올 때 그가 불쌍해 울었다. 마음 같아서는 언니가 가진 전부인 작은 빌라라도 팔아서 절반을 뚝 떼어주고 싶다고 말했다가 언니를 아끼는 사람들에게 혼나기도 했다.

얼마 전 언니는 20년 가까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전적으로 언니의 잘못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으나 시시비비 가리기 전에 사표부터 던졌다. 아무리 선한 의도라도 상대방에게는 다른 의미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인생 공부를 다시 하는 기분이었다. 매일 아침 경전의 한 구절을 읽으며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생각보다 빨리 쉽게 마무리되었다.


오십 중반의 나이가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다. 변변하게 모아놓은 돈도 없이, 내 편도 없이, 세상에 한 발 들여놓기가 만만하리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나. 먹고사는 일의 무게를 새삼 절감했다. 기왕 벌어진 일이니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으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그것도 언니다웠다.

가장 좋아하는 요리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버킷리스트도 다시 챙겼다. 낯선 곳에서 한 달 살아보기.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에게 한 달을 선물하면 안 되나? 왜 안 되겠나. 선택은 각자의 몫인데. 그것이 모여 우리의 삶이 되는데.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가 적기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아니다.




다음날 언니가 장문의 톡을 보냈다. 처음이다. 그토록 긴 톡을 언니에게서 받은 건.


"카페에 관한 글 재미나게 보고 있다. 그리고 뮌헨의 풍경도 재미있게 읽었어. 여기 치앙마이는 오전 4시 36분을 가리키고 있어. 치앙마이에서는 주로 먹방 투어와 카페 투어를 하고 있어. 저번에 올 때는 몰랐는데 타이 음식이 참 맛있더라. 물론 먹는 거에 비례해 살도 찌고 있지만 돌아서면 배가 고파서. 옆에 있는 조카가 나보다 먹성이 안 좋아서 자제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야. 사실 치앙마이에 있는 동안 쿠킹스쿨에 다니려고 기대했건만 주로 여행객을 대상으로 원데이나 하프데이 코스밖에 없어. 긴 코스로 배울 수 있는 곳을 찾고 있는데 없는 거 같아. 방콕에는 호텔에서 하는 곳이 있어. 다시 방콕에 가야 되나 생각 중이야. 호텔비를 다 지불해서 아까워 망설이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길게 타이 요리를 배워보고 싶기도 해. 한번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하려고. 오늘 아침에는 조카가 가고 싶다는 카페에 가서 아침을 먹으려고 해. 오늘도 해브 나이스데이!"


언니의 도전을 응원한다. 언니의 새 삶을 응원한다. 아직 끝이 아니다. 우리는 60도 되지 않았다. 60부터라도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최소한 고전을 읽고 글쓰기를 시작할 있다. 부동산만이 노후의 관심사가 아닌 삶 말이다. 남들 다르게 살 수도 있다. 포기하지 않고 한발 내디딜 용기만 있다면. 나의 Y언니처럼. 오늘 아침 언니의 힘찬 새소식.


"언제나 고마워. 지금 조카랑 볼링장에 왔어. 소소한 일상의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어. 오늘도 해브 나이스데이. 아참 클레멘스 사촌에 관한 글 읽고 가슴이 찡했어.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 건 항상 가슴 한 곳에 아픔을 차지하게 하지. 그 분하고는 면식은 없지만 슬픔과 아픔을 잘 다스리길 바랄게. 이런 말을 들었어. 60이 지나면 가지고 있는 힘으로 사는 게 아니라 새로운 힘으로 사는 거래. 새로운 힘을 창조하기 위해 오늘도 화이팅!!!"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다니엘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