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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반한 오트밀 요거트

동네 카페와 골목길

by 뮌헨의 마리


처음으로 동네 카페에 간 날. 내가 나에게 허락한 게으름을 만끽했다. 게으름은 커피처럼 달콤하고 쌉싸름했다. 그 순간 내가 간절히 원한 건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모금!



동네 카페의 오트밀 요거트와 크로아상. 오트밀은 아래에 깔려 있다. 언니의 아침 식사 밤식빵과 믹스 커피(위에서 아래로 시계방향).



동네 카페에 갔다. 매일 산책하는 동네 공원 바로 앞의 카페였다. 이곳 오트밀 요거트가 얼마나 맛있던지! 지난주에는 언니가 사 와서 공원에서 함께 먹은 적이 있다. 그때는 카페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곳은 2년 전 여름 한국에 왔을 때 내가 매일 들렀던 카페였다. 내부가 넓고 특히 가죽 의자들이 편했던 기억이 난다. 어제는 언니가 오전에 나를 공원에 데려다주고 볼 일을 보았다. 엄마가 정기 건강검진을 받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30분을 걸었다. 산책로 다섯 바퀴. 갑자기 배가 출출해져서 오트밀 생각이 났다. 언니도 배가 고플 있으니 두 개를 샀다. 오후가 되면 다 팔리고 없는 도 있어서. 혼자 카페에 들어갔다. 걷는 건 언니가 오면 다시 하기로 했다.


처음엔 테이크 아웃으로 공원 벤치에 앉아 먹을 생각이었다. 오트밀 요거트 두 개와 언니가 좋아하는 크루아상을 샀다. 카페 안은 변함이 없었다. 따뜻한 색상의 조명도 발길을 잡았다. 내가 좋아했던 카키색 가죽 의자. 등 쪽이 날렵하고, 깊숙이 앉으면 허리와 등을 완벽하게 받쳐주는 의자. 오트밀을 기다리며 잠시 앉아보았다. 앉자마자 왜 몸의 긴장이 다 풀리던지. 얼마 만에 카페에 와 보는 것인가. 카페 안을 떠다니는 음악도, 커피 분쇄기의 소음도,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다 듣기 좋았다. 해가 드는 통유리창에 흰 커튼을 쳐놓아 햇살이 강렬하게 비쳐들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카페에서 오트밀을 먹었다. 다 먹고도 일어서지 않았다. 언니가 올 때까지 계속 머물고 싶었다. 내가 나에게 허락한 게으름을 만끽하고 싶었다. 게으름은 커피처럼 달콤하고 쌉싸름했다. 내가 간절히 원한 건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모금!(오후에 친구가 놀러 와서 소원을 이루었다. 친구가 내게는 오트밀을, 언니에게는 바나나 너트 음료를 사 주고 자기가 주문한 뜨거운 아메리카노도 나누어 주었다.)

전날 저녁에는 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언니와 밤식빵을 다. 언니가 그 동네에서 밤식빵이 가장 맛있는 집을 안다고 했다. 엄마가 밤식빵을 좋아하셔서 사드리고 싶어서. 얼마 전까지 엄마는 아침을 빵과 믹스커피 한 잔으로 때우셨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려고 다시 밥으로 돌아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엄마는 밤식빵 반을 언니에게 주었다. 어제 언니의 아침은 수순대로 밤식빵과 믹스 커피 한 잔. 아삭아삭 사과를 먹고 있는 나에게도 먹고 싶냐고 물었다. (그걸 말이라고!) 고소한 밤식빵은 냄새만 맡아도 행복했다. 저런 평범한 아침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던 날들이 있었는데. 그래도 흔들리지 않았다. 흔들리면 끝이니까. 흔들릴 일이 얼마나 많은데. 봄밤에 부는 바람에도 흔들리는 게 어디 머리칼뿐이랴. 한 번 빵의 단맛을 맛보면 멈추기가 어렵다. 흰쌀밥과 밀가루와 설탕은 절대 안 된다. 내가 지켜야 할 나의 마지막 보루.



넓고 정갈한 동네 카페(가죽 의자를 못 찍었네..).



오후에 그 친구가 다녀갔다. 중 2, 초등 4학년 두 아이의 육아로 바쁜 친구는 오후 산책 시간에 잠깐 와서 언니와 나랑 함께 걸었고, 카페에서 차를 사 주고 돌아갔다. 내가 병원에서 잠 못 자고 힘들어할 때 한 마디로 내 고민을 날려준 친구이기도 했다. 우리 나이가 원래 그럴 때 아이가! 아, 맞구나. 그래서 나도 친구가 불면 비슷한 밤을 보내고 계시는 줄 알았다. 친구 왈, 하루에 여섯 시간밖에 잔다고. 새벽에 너무 일찍 잠이 깨 게 힘들다고. 친구야, 미안하지만 그런 건 불면증이 아니야. 진정한 불면증이란 밤을 꼬박 새울 정도는 되어야지.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거의 매일. 나 역시 최선을 다해도 여섯 시간을 자고 이른 새벽에 잠이 깨는 편이다. 그래도 잠을 못 자던 병원 생활을 생각하면 고맙기만 하다. 시간이 차고 넘치는 새벽에는 글을 쓰면 되니까. 친구는 다시 오겠다고 하며 떠났다. 또 와서 내가 좋아하는 오트밀을 사주겠다고. 약속은 꼭 지키는 친구다.


며칠 전 오후에는 J언니도 다녀갔다. 언니가 도착했을 때 나는 산책 중이었다. 언니는 걷고 있는 나를 보더니 한달음에 달려와 나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걸을 수 있으니 됐다고. 너는 이겨낼 수 있다고. 나와 언니 자신에게 주문처럼 말하면서. 그날은 카페에 오트밀이 다 팔리고 없는 바람에 카페를 나와 우리 언니 집으로 갔다. 매사에 열정적인 J언니의 폭포수처럼 넘치는 말을 들으며 몇 번 졸던 기억도 난다. 나 역시 한 때는 언니처럼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언젠가 불꽃같은 그 열정을 되찾을 날도 올 것이다. (간혹 그 열정이 옆 사람을 태워버릴 수도 있으니 그것만 조심할 것!)


우리 언니가 사는 동네의 오래된 골목길을 걷다 보면 한 골목에서 수십 년은 건재했을 듯한 낡은 집들과 상점들을 만난다. 어떤 가게들은 낡은 간판을 이고 아직도 문을 열고 있고, 어떤 가게들은 먼지 소복한 지붕을 이고 문을 닫았다. 공원의 산책로를 걸을 때마다 눈에 띄는 철물점도 있다. 윈진철물. 간판도 건물도 낡을 대로 낡고 쇠락해서 언제 문을 닫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세련된 카페와 음식점 사이에서 여전히 문을 열고, 주인 할머니가 손님도 없는 가게를 지키고 계신 풍경이 생경하고 낯설다. 그럼에도 눈길이 간다. 한때는 깊은 바닷물처럼 짙푸렀을 간판의 페인트가 파스텔 톤으로 바뀌어가도 쇠락하는 것들은 그들만이 지닌 아름다움이 있다. 애잔하기는 해도. 언젠가는 저곳도 사라지고 높은 건물이 들어서겠지. 원진철물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겠지. 그래서 사진을 찍어두려 한다. 가슴 속에 기억하려 한다.



오래된 건물들이 쇠락해가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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