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에 한 번 저녁을 먹고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프로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즐거웠다. 그 프로 하나 건진 것만으로 한국에 들어온 보람을 느낀다고 하면 지나친가.
매일 먹는 밥상.
월요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산병원으로 갔다. 림프 부종 치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병원과 공원에서 열심히 걸어서 거의 낫기는 했지만 예방 차원에서 마사지라도 받고 싶었다. 국립의료원에서 준비해 간 영상 CD와 온갖 서류들을 지참하고, 아침 시간의 여유로운 휴식과 맞바꾼 선택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45분. 잠실나루 역에서 아산병원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10분. 진료 40분 전에 도착해서 모든 수속을 마쳤다. 몸무게까지 재라고 하길래 이게 웬 떡이냐 (언니 집에는 체중계가 없다) 싶어서 쟀다. 엄마의 밥상으로 양볼에 살이 조금 오른다 싶더니 기대대로 2킬로가 올라 55킬로를 회복했다. 이 몸무게가 이상적이긴 한데, 집밥 덕분에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할지 오를지는 두고 봐야겠다.
림프 부종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았다. 사실 그의 눈에도 내 다리에서 부종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거나 림프 부종 마사지를 한번 받아보고 싶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포기했다. 전문의는 마사지 전에 두 가지 검사가 필수라고 했다. CT도다시 찍어야 했다. 그 소리에 마음을 접었다. 지난 병원에서 내가 CT를 얼마나 찍고 또 찍었는데. CT를 찍으려면 굵은 정맥 주사도 꽂아야 한다. 정맥이 잘 드러나지 않는 두 팔과 손등에 아직도 퍼런 멍들이 남아 있다. 그때의 흔적이다. 퇴원하던 날 아침 조영술 CT 촬영을 위해 마지막 정맥 주사를 꽂을 때는 울고 싶었다. 너무 아파서. 더 이상 꽂을 곳이 없어서 전날에는 팔 안쪽 연약한 부분까지 꽂았다. 당연히 오래가지 못했다. 다시는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검사 일정은 4월 16일(취소할 생각이다). 림프 마사지는 대기자가 밀려 1~2주 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큰 병원에서 림프 마사지 한번 받기가 이토록 어렵구나.
덕분에 오전을통으로 날렸다. 치료를 예상하고 압박 스타킹도 안 신고 나갔는데. 지하철을 타고 돌아와 공원에 도착하자 12시. 조금이라도 걸어야 했다. 세 바퀴를 돌고 나자 기진맥진했다. 오전에 기운을 너무 방전한 탓이었다. 충전을 위해 벤치에 앉아 30분을 쉬고 엄마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자 이번에는 피로가 몰려왔다.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 정도였다. 이럴 때 보호자의 단호한 태도는 힘이 된다. 언니가 걸어야 한다며 먼저 일어섰다. 언니를따라 오징어처럼 흐느적거리는 몸을 추슬렀다. 공원을 세 바퀴 돌고 쉬다가 언니 집으로 왔다. 참외처럼 달달한 오후의 휴식.집에서 나를기다린 건 당연히 상큼한 참외!참외에 엄청한 영양소가 들어있다는 건 아는 사람만 안다. 나도 어제 처음 알았다. 언니가 링크해 준 인터넷 기사를 읽고서. (궁금하신 분은 직접 찾아보시라!)
부종 치료차 갔다가 힘만 빼고 돌아온 날의 점심 식사.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팔순 노모의 밥상.
퇴원하고 엄마 집에 돌아오자 보고 싶은 TV 프로가 없었다. 보고 싶은 드라마도, 예능도 없었다. 딱히 좋아하는 배우도 가수도 기억나지 않았다. 한 때 좋아했던 몇몇도 있었으나 병원 신세를 3주 지는 혹독한 귀국 신고식을 치른 후라 모든 게 시들했다. TV를 시청하는 것에도 체력이 필요하다는걸 알았다. 열정과 체력은 동전의 양면이라는것도.병원에 있을 때 딱 한 가지 기대되는 프로가 있긴 했다. 저 날짜에 맞추어 퇴원하고 싶을 만큼. <유명가수전>. <싱어게인> 3인방을 직접 볼 수 있는 프로그램. 4월 2일 금요일 저녁 9시. 그래서 내 목표도 그날까지 퇴원하기가 되었고 실제로 이틀이나 앞당겨 퇴원을 했다.
기대했던 <싱어게인> 돌려보기는 하지 않았다. 한 번 보면 끝까지 봐야 할 텐데 분량도 엄두가 안 나고, 독일에서 유튜브로많이 봤기 때문에. 내가 좋아했던 이들이 3인방에 들자 그들의 노래도 자주 들었다. 한국에 가면TV에서 직접 그들의 노래를 들어보면좋겠다는 바람은 있었다. 그들 말고도 보고 싶은 팀이 딱 하나 더 있었다. 너도나도너드. 그들이 부른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같은 노래는 명품이었다. 언제 어디서 몇 번을 들어도 좋았다.그런 이유로 <유명가수전> 첫 방송에서 이승윤이 자기 집으로 너도나도너드 팀을 초대했을 때의 감동이란. 그의 고운 마음에도, 그가 스물아홉 두 친구를 위해 부른 <서른 즈음에>의첫 소절에도, 그들 셋이 만들어낸 화음에도 반할 만큼.
정홍일의 밴드 편도 좋았다. 투박한 경상도 사나이들로 이루어진 20년 록 밴드의 꾸밈없는 모습이 찡했다. 정통 록 가수가 발라드를 제대로 소화할 때 얼마나 매력적일 수 있는 지도 정홍일을 통해 알았다. <When we disco>. <유명가수전> 첫 방송에서 가장 좋았던 노래다. 에너자이저 이무진과의 케미도 굿! 그날은 퇴원하고 첫 외래 진료를 받는 날이었다. 다음 진료도 1주일 뒤 같은 날로 잡혔다. 지하철을 타고 을지로까지 나갔다 오는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안성맞춤이었다. 딱딱한 경연 형식이 아니어서 부담도 적었다.3인방과 주니어 심사위원들과의 시너지도 흥겨움을 더했다.1주일에 단 한 번 저녁을 먹고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프로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즐거웠다. 그 프로 하나건진 것만으로 한국에 들어온 보람을 느낀다고 하면 지나친가.사실이 그런데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