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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통증이 있다

왼쪽 날갯죽지 깊은 곳에

by 뮌헨의 마리


20대 때부터 등 통증이 있었다. 오래된 통증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낫기 위해서는 오래 기다려야 한다. 통증이 쌓여온 시간만큼.


아침마다 언니가 챙겨주는 건강 보충제. 먹으라니 먹는다. 가만히 받아먹는 것도 여간 일이 아니다.



20대 때부터 등 통증이 있었다. 무리하거나 과로하거나 특히 스트레스를 받으면 등이 아팠다. 어디가 뾰족하게 아팠냐고 물으면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냥 아팠다. 한국에 와서 복부 재봉합 수술을 받은 후 퇴원했을 때 등 통증이 재발했다. 환자가 되어 보니 몸의 통증에도 예민해져서 정확히 어느 부위가 아픈 지도 알게 되었다. 왼쪽 날갯죽지 안쪽 깊숙한 곳이 통증의 근원지였다. 언니가 손가락 끝을 대자 불에 덴 듯 뜨거웠다. 화산 혹은 용암 같은 뜨거움이라고 해야 하나.


날갯죽지 안쪽의 통증은 위로 올라가 어깨까지 연결되었다. 쇠심줄처럼 단단한 힘줄을 손가락 끝에 감지한 언니가 내린 결론이었다. 내가 대충 눌러봐도 그런 것 같았다. 언니는 며칠 째 내 등 통증에 집중하고 있다. 아침저녁은 물론이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왼쪽 날개 죽지를 누르기도 한다. 저녁마다 언니가 등을 눌러줄 때면 통증이 장난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견딜만하지 않았다. 시원하지는 더더욱 않았다. 오래된 통증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낫기 위해서는 오래 기다려야 한다. 통증이 쌓여온 시간만큼.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언니의 마사지를 받다가 잠이 드는 날도 있다. 통증에도 익숙해지는 순간은 오는 법이니까. 등을 맡긴다. 언니의 손끝이 등의 통증을 깨운다. 깊은 숨을 내쉰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드는 케이스다. 어제는 통증이 최악이었다.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어깻죽지를 두드려 맞은 것처럼 왼쪽 상체가 쑤시고 아팠다. 몸살이 날 것 같았다. 지난 사흘 동안 오래 잠자던 통증을 깨운 결과였다. 저녁 산책 때는 더 심했다. 산책을 포기해야 했다. 언니에게 이상 통증을 깨우지 말고 세로로 손의 날을 세워 뜨겁게 문지른 후 손바닥으로 쓸어 달라고 했다. 꼭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불이 날 것처럼 뜨겁고도 시원했다. 통증을 달래는 데도 강약의 조절이 필요했다. 내가 잠 후에도 언니의 손바닥은 오래도록 내 등에 머물렀던 것 같다.



건강 보충제보다 중요한 건 음식. 독일에서 생각나던 아삭이 고추와 선희 언니가 보내준 호박죽(위) 입맛을 돋우는 배추 겉절이, 돈나물(아래).



나는 평발이 아니다. 아치의 곡선도 괜찮다. 그런데 많이 걸으면 아프다. 왜 아플까. 너무 많이 걸어서? 궁금해서 언니와 기능성 신발을 파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 기능성 신발은 우연히 TV에서 보고 알았다. 신발이 발 건강에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회사 대표가 오랜 세월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고 했다. 특허 등록도 하고, 스위스에서 열리는 세계 특허품 대회에서 상도 받았다고.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언니도 나도 오래 신어도 편한 신발이 필요했다. 많이 걸으니 운동화도 피곤했다. 옛날 같으면 그런 신발은 할머니들이나 신는 거라고 돌아보지도 않았을 텐데. 디자인이 다양하지도 세련되지도 않지만 그것도 상관없었다. 발만 편하면 되었다. 나는 걸어야 사니까.


내 체력이 한참 떨어진다는 건 오후에 신발 가게를 찾아갈 때 알았다. 점심을 먹은 직후라 그럴 수도 있다. 언니가 지하철로 한 코스라며 산책 대신 걸어볼까 물어볼 때만 해도 자신 있었다. 정도는 충분히 걸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가게에 도착할 무렵 나는 지친 정도가 아니라 진이 빠져있었다. 이렇게 멀 줄 알았으면 버스라도 타지. 속으로 언니를 원망했다. 가게에 있는 신발을 다양하게 신어본 후 언니는 언니에게 맞는 신발을, 나는 밑창 가운데에 아치를 받쳐주는 부착물이 있는 최신 기능성 신발을 골랐다. 걸을 때마다 발바닥 중앙의 아치를 받쳐주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가격은 일반 신발보다 비쌌다. 가게에서 컴퓨터로 무료 발검사를 받아보니 언니도 나도 아치의 형태에는 문제가 없지만 평발처럼 피로를 많이 느끼는 타입이었다. 돌아올 땐 버스를 탔다.


오후에는 새 신발을 신고 공원을 돌아보았다.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탄력감, 쿠션감 그리고 아치를 누르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언니는 기능이 단순한 자기 신발에 만족하는 것 같았다. 발이 무척 편하다고 좋아했다. 무릎이 아프신 엄마를 위해서도 하나 사 드리고 싶어 했다. 나는 며칠 걸어봐야 알 것 같다. 새 신발에도 적응 기간이 필요하니까. 내 발이 이 신발에 꼭 맞는 상대였으면 좋겠다. 신발이 내 발의 아픔과 상처를 잘 보듬어 주면 좋겠다. 새 신발 덕분인지 등 마사시 덕분인지 오늘 아침에는 새벽 6시에 잠이 깼다. 평소보다 1시간이나 더 잤다. 7시간의 숙면! 밤새 화장실에도 한 번 밖에 가지 않았다. 아직 등 통증도 잠잠하다. 오늘 하루는 내 등의 감각을 깨우지 않을 생각이다.



새로 산 나와 언니의 기능성 신발. (후기는 다음에 올리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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