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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내어 우는 법

<유명가수전> 2회

by 뮌헨의 마리


이승윤이 부른 <러브 포엠>이 가장 좋았다. 나 역시 '소리 내 우는 법'을 최근에야 배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노래 한 곡이 주는 위로라는 게 있다. 그것을 가장 아끼는 가수가 불러줄 때의 기쁨이란!



봄밤의 나무들.



두 번째 진료이자 마지막 외래 진료를 다녀왔다. 보통 외래 진료 때는 수술 부위를 덮어둔 가제를 떼고 소독을 하고 잘 말린 후 다시 깨끗한 가제를 갈아준다. 지난주 첫 외래 때처럼 담당의는 내 귀국 일자를 물었다. 4월 말에 귀국할 예정이라고 날짜를 알려주었다. 왜 묻는지는 나도 잘 안다. 내 항암이 시급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도 동의한다. 그런데 언니와 같이 들어가려니 정리할 일이 많아서 담당의가 권하는 사월 중순은 무리였다. 생각보다 느리게 회복되는 내 체력도 그렇고. 남편이 비행기표 변경을 도와주었다. 이번에는 프랑크푸르트 경유가 아니라 뮌헨까지 직항이 재개통되어 안심이 된다.


마지막 진료는 간단했다. 가제를 떼고 소독 한 번 없이 끝. 이제부터 샤워도 가능하지만 수술 부위를 문지르지는 말 것. 항생제 복용 끝났다. 기쁘다. 병원에 입원한 날로부터 만 4주가 지난 날이었다. 병실을 나서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나를 치료해 주신 두 의사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물결처럼 넘쳤다. 담당의는 다음 진료로 바쁘셔서 따로 인사를 드리지는 못했다. 첫 번째 외래 때 언니가 우리 온 가족을 대표해서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을 때 담당의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셨다. 이번에는 여의사 샘께 대신 인사를 전했다. 두 분께서 제 목숨을 구해주셨습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과장님께도 감사의 말씀 전해주세요. 흐르는 내 눈물을 보고 여의사 샘도 눈물을 글썽이며 그러겠다고 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요즘 나는 잘 운다. 어제는 아침 공원에서도 오후의 공원에서도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울었다. 예전의 나라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눈물이 메말랐다는 건 가슴이 메말랐다는 말과 같다는 걸 울어보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걸핏하면 맑고 따뜻한 눈물이 흐르는 내 눈과 내 눈물로 촉촉하게 젖는 두 뺨과 가슴을 사랑하게 되었다. 예전의 나는 물기가 없어도 너무 없는 사람이었구나. 나는 요즘처럼 잘 우는 내가 좋다. 우는 순간 나약한 한 인간에 불과한 나 자신을 보게 된다. 나약하다는 것은 얼마나 편안한가. 나약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인가. 강한 사람이 될 필요도, 강한 척 허세를 부릴 일도 없다. 힘을 빼고 살아도 좋다. 이걸 알게 되어서 좋다.


퇴원한 지 열흘. 이번 주는 많이 힘들었다. 입원한 시간이 길었던 만큼, 병원에서 오래도록 불면의 밤을 보낸 만큼, 하루 만 보 걷기로 나 자신을 극한까지 밀어붙였던 만큼 쌓인 피로도 컸다. 집으로 돌아와 잘 먹고 잘 자고 잘 걷고 있다고 해서 몸과 마음에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았다. 몸살이 날 것만 같은 몸의 무거움과 노곤함은 산책길의 동반자였다. 자주 많이 쉬어야 했다. 내가 이걸 잘 못하는구나. 밀어붙이고 힘주는 건 잘하면서. 그러니 내가 나약한 인간이어도 괜찮다는 몰랐던 시절에는 오죽했을까. 하루 네 번을 꽉 채워 걷지 않아도 좋다. 친구나 반가운 이가 찾아오면 공원 벤치에서, 카페에서 맘 놓고 쉬어도 좋다. 글을 매일 쓰고는 있지만 매일 쓰지 않아도 좋다. 나를 가둔 틀은 자신이 만들었으니 스스로 부수어야 한다. 알고 나면 부술 틀도 없게 되는 걸까.




금요일 밤의 즐거움은 뭐니 뭐니 해도 <유명가수전>이 아니겠는가. 세어 보니 총 네 번을 볼 수 있겠다. 독일에서는 어떻게 한국 TV를 보는 걸까. 언니는 TV를 사자고 했다. 이런 사차원! TV만 켜면 한국 방송이 나오나? TV 수신료도 안 내면서. 뮌헨에 가면 조카에게 물어봐야겠다. 우리 조카는 모르는 게 없으니까. 보는 회를 아쉬워하기보다는 볼 수 있는 4회를 만끽하는 게 낫겠다. 아이유라는 가수는 잘 몰랐기에 이번 회는 기대 없이 보았다. 독일에서 보던 드라마 <아저씨>에 나왔던 그 배우였다. 그때는 무척 어두운 캐릭터였는데. 신곡 <라일락>은 라일락꽃처럼 희고, 보랏빛처럼 맑고 가벼웠다.


나의 원픽은 변함 없이 이승윤이었다. 매회 정홍일의 발라드에 감탄하고, 이무진의 담백한 노래도 좋았지만 이번 이승윤의 선곡은 특히 가슴에 남았다. 아이유의 <러브 포엠>을 내가 알았을 리가 있나. 그럼에도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소리 내 우는 법'을 최근에야 배운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시 걸어갈 수 있도록/다시 사랑할 수 있도록' 이란 구절도 담담하게 마음에 담았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그럴 기회가 다시 올까. 그렇든 그렇지 않든 노래 한 곡이 주는 위로라는 게 있다. 그것을 가장 아끼는 가수가 불러줄 때의 기쁨이란. (옆에서 같이 보던 한 분은 이승윤이 아이유와 컬래버레이션을 못한 게 아쉽다고 계속 웅얼거리시고..)



매일 보아도 예쁜 꽃나무. 아침 햇살을 받자 꽃들이 얼굴을 붉히네.



P.S. 어제 아침에도 글을 올렸는데 많은 구독자님들이 모르시는 것 같았다. 전날 글을 쓰다가 실수로 발행을 눌렀다가 취소하고 재발행을 글이었다. 다음부터는 재발행 말고 새 글로 올리는 게 낫다는 걸 배웠다. 매번 따뜻한 댓글에도 감사하고 있다. 이름을 밝히기는 뭐하지만 몇몇 분들께는 특별한 감사를 전하고 싶다. 당신의 마음 내게로 전해지고 있다고. 늘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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