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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도 힘이 필요하다

<유명가수전> 3회

by 뮌헨의 마리


저녁을 먹고 Y언니, K언니와 여의샛강에서 선유도 방향으로 산책을 갔다. 밤 날씨는 온화했다. 강바람도 없었다. 서울의 야경도, 한강에 비친 양화대교의 불빛도, 금빛으로 빛나던 초승달마저 예뻤다.



부산에서 온 Y언니, 서울에 사는 K언니와 걷던 저녁 산책길. 그날 보았던 양화대교와 도심의 불빚들.



솔직히 말하자. 컨디션이 별로다. 어제는 많이 안 좋았다. 압박 스타킹을 신을 힘도 없었고, 산책을 하지도 못했다. 아침에는 흐리다 비가 오고 기력이 없어서 그랬다 치자. 점심을 먹은 후에는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1시간을 잤다. 자고 나서도 피곤했다. 저녁에는 날씨가 찼다. 처음으로 밖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는 대신 <유명가수전>을 보고 싶은 마음도 컸겠지. 어제가 그날이라서 이승윤의 <사월>이 아팠고, 정홍일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는 쓸쓸했다. 그렇게 하루를 공치고 노래로 채웠다. 그 와중에도 <유명가수전> 다음 주는 정말 기대된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김범수가 나온다나.


늦은 오후에는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너무 힘이 없어서 마사지를 받는 동안 끙끙 않는 소리만 냈다. 마사지를 해주시던 시각장애인 선생님이 내 상태를 파악하셨는지 말 한마디 걸지 않았다. 지난번에는 마사지를 받는 내내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었는데. 마사지가 끝나자 물었다. 오늘은 왜 이렇게 피곤하신가요? 부산에서 사람들이 다녀가는데 사람 만나는 것도 힘이 드네요.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잘 쉬세요. 마사지를 받고 기력을 회복했다.



실반지처럼 금빛으로 빛나던 초승달.



이틀 전만 해도 최상의 컨디션이었다. 부산에서 기다리던 Y언니가 왔기 때문이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내 모습을 보기가 겁이 났었다고 언니가 고백했다. 나를 만나러 오던 그날 ktx 안에서도 울었단다. 그러던 언니가 안심을 하고 감동까지 하자 나도 모르게 오버를 했는지도 모른다. 같이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그날 언니와 내가 묵을 숙소 앞에서 K언니도 합류해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은 후 여의샛강에서 선유도 방향으로 산책을 갔다. 밤 날씨는 온화했다. 강바람도 없었다. 서울의 야경도, 한강에 비친 양화대교의 불빛도, 금빛으로 빛나던 초승달마저 예뻤다. K언니가 준비해온 뜨거운 차를 마시느라 벤치에 머물렀는데 조금 추웠던 것만 빼면. 이승윤의 노래 <달이 참 예쁘다고>가 생각났다.


Y언니와 숙소에서 자고 이튿날 아침 우리 언니 집으로 함께 돌아왔다. 아침 일찍 숙소를 비워줘야 했기 때문이다. 아침 공기는 상쾌했다. 지하철을 타면 1코스라 힘든 줄 모르고 이동했다. 그 모든 동선이 무리가 됐던 것 같다. 평소라면 아침 시간에는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글만 쓰고, 주는 대로 받아먹고, 푹 쉬는 게 일이라서. 오전의 그 평화로운 시간이 하루 네 번의 산책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한 선택을 할 있을 것 같다. 잠자리를 바꾸는 일에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도 힘이 들었다. 사랑에는 힘이 필요하다.


Y언니는 내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언니다. 내가 마사지를 받고 좋았다고 하자 출국 전에 매일 받으라며 큰돈을 우리 언니에게 주고 갔다. 말려서 될 언니가 아니다. 언니 또한 건강을 위해서 많이 걷고 체중도 줄여야 했는데. 오랜 세월 미루고 미루던 일을 내가 병원 복도를 걷던 그 시간에 떨쳐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하루 2만 보. 너도 걷는데 내가 안 걸으면 되겠냐고. 아무리 힘들어도 너보다 힘들겠냐고. 언니는 내가 언니를 알고 지낸 25년 동안 가장 슬림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얼굴은 빛이 나고, 몸은 보기 좋게 다듬어지고, 걸음걸이는 가벼웠다. 사람들은 이런 걸 기적이라고 부를 것이다. 두 달 만에 이룬 마음의 기적. 몸의 기적.



공원의 바위 위엔 민들레(위). 골목길 화단에 찾아온 봄(아래)!



이번 주말에도 대기하고 있다. 꼭 만나야 할 사람들. 얼굴이라도 보기를 간절히 바라는.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 먼 길을 달려오는 사람들을. 다만 적당히 같이 시간을 보내고 산책은 칼 같이 지키려 한다. 점심을 먹고 나면 산책을 가고, 컨디션이 따라 주면 차도 한 잔 할 수 있겠지. 이틀을 오시는 분들께는 양해를 구해 숙소를 따로 잡아드렸다. 긴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다음 주는 누군가를 만나기 힘들 것이다. 출국일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체력이 쌓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한번 사람을 만나면 이틀이 힘들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기분이다. 다들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오래 기다려준 세 친구들과 못 만날 가능성도 크다.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된 벗들인데. 그중 어제는 S의 전화도 못 받았다. Y는 퇴원하자마자 인삼과 녹용이 든 환을 보내주었다. 회복기 환자용으로. 선물 박스가 친구의 우정처럼 크고 튼튼했다. 서울에 사는 J에게도 연락을 못했다. 그래도 이해해줄 것이다. 그것만이 내가 믿는 다. 며칠 전에는 반가운 톡을 받았다. 내 브런치를 보고 근황을 알고 있던 옛 직장 동료 J언니였다. 내가 힘들까 봐 섣부른 위로의 말도 삼갔다고. 지금은 명퇴하고 시골에 정착했단다. 다음에 건강하게 돌아와서 자기 시골집에서 밥이나 먹자고. 이런 말이 정말 고맙다. 이런 마음도. 주는 사랑을 다 받기 위해서도 힘이 필요하다. 오늘은 컨디션이 조금 나아졌다. 산책을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니지, 꼭 나가야 한다. 지금 바로!



Y언니가 선물한 수국과 언니와 마신 아메리카노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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