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고통과 30대의 인내와 40대의 노력. 내가 그들의 세월을 지켜본 장본인이다. 그들이 내 친구라는 게 자랑스럽다. 내가 그들의 벗이라는 것도!
J의 선물은 봄 스카프!
오랜 벗들이다녀갔다. 부산에서 Y와 S가 비행기를 타고 왔고, 서울에서는 J가 합류했다. 중고등학교 동창들이었다. 초등 동창들이 없어서 내겐 가장 오래된 벗들이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벗이라는 말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말인가. 내가 벗이라 부를 때는 이 친구들을 가리킬 때다. 사정이 그러하니 서로의 가정사만꿰고 있는 사이가 아니다. 서로의 약점과 치기와 실수투성이였던 젊은 날들까지 속속들이 안다. 내가 10년 가까이 외국으로 돌아다녀서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적도 많았지만우정에 변함이 없는건 친구들의 마음이 넓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친구들과는 점심도 먹지 않았다. 도착 시간으로 봐서는 분명 점심을 먹어야 할 텐데 당일까지 말이 없었다. 오면 공원 근처 어디라도 가면 되겠지. 두부전골을 하는 집이 있어 속으로 찜만 해 두고 있었다. 서울에 사는 J가 홍대 앞의 맛집을 소개해 주고 거기서 셋이 만나 함께 오겠다고 했다. 나 보고는 걱정 말고 엄마 집에서 점심을 먹고 쉬고 있으라 했다. 나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오전 산책을 빈틈없이 해두었고, 친구들과 만나서도 1시간 남짓 같이 산책을 했다. 혼자서 걸을 때는 눈에 띄지 않던 꽃과 나무와 식물들의 이름을 다같이 연구하고 검색해 보기도 했다. Y가 꽃 해설사처럼 대부분의 이름을 알고 있어서 우리에게 꽃이름과 꽃말을 알려주었다.
날씨는 완연한 봄이었다. 봄날 오후 벗들과의 산책은 즐거웠다. 넓지 않은 산책로를 둘씩 짝지어 걷다가 공원에서 수령이 가장 오래된 나무 앞에서 기념샷도 찍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벗들의 환한 웃음을 가릴 수는 없었다. 공원 앞 카페에도 갔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셨고, 케이크는 먹지 않았다. 내년에 다시 와서 케이크를 같이 먹겠노라 말했다. J가 우리에게 줄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봄이라고 승무원들이 맬 법한 얇은 스카프와 연희동의 유명한 가게에서 직접 볶은 수제 견과류도 한 통씩 사 왔다. 나한테는 흑마늘 엑기스도 주었다. 매일 한 숟갈씩 먹으란다.(오늘 아침에 먹어봤는데 달큰한 게 입 안에 착착 감겼다.)
달착지근한 흑마늘 혹은 흙마늘.
친구들에게 따끈한 정보도 들었다. 낙지 문어와 함께 간장게장도 보양식이라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J가 알려주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간장게장을 먹고 나면 30분 안에 눈이 번쩍 뜨인다고. (참고하시기 바란다.) 시간상 나는 이번에 실험해 보지는 못할 것 같아 아쉽다. 우리 언니가 익히지 않은 해산물 먹는 걸 아직 허락하지 않아서다. 대신 버킷리스트에 한 줄을 추가했다. 내년에 와서 벗들과 맛있는 간장게장을 먹고, 집 앞 공원을 산책하고, 같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와 케이크를 먹는 일. 장어 대신에 추어탕도 몸을 보해준다고. J의 알뜰 정보다. 친구들의 팁은 귀중하다. 가슴에 새겨두고 잊지 말아야지.
내 친구들은 자칭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나 역시 그렇다. 우리는 각자가 좋은 운을 타고났다고 믿는다. 인생이 순탄해서만은 아니다. 삶에 역경과 고난이 없었다는 뜻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숱한 어려움과 고비를 넘고 넘어 여기까지 왔다. 그 순간들을 용케도 잘 이겨왔다. 내가 친구들을 사랑하는 이유다. 그들이 이룬 성취와 안정은 저절로 주어진 게 아니다. 밤을 새워 방송 대본을 쓰고, 오십을 코 앞에 두고 정규직 전환 시험에 만점을 받고,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공부의 원리를 알려주려고 고군분투한 결과다. 20대의 고통과 30대의 인내와 40대의 노력, 내가 그들의 세월을 지켜본 장본인이다. 그들이 내 친구라는 게 자랑스럽다. 내가 그들의 벗이라는 것도!
공원을 걸을 때마다 주문을 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나는 걷는다 나는 낫는다'. 걷기라는 노력이라도 하고 있으니 설득력이 없지는 않다. 나 자신에게 체면이 선다는 뜻이다. '나는 쉰다 나는 낫는다. 나는 눕는다 나는 낫는다'. 그 외에도 많다. 나는 콩나물을 먹는다. 나는 사과를, 참외를, 오트밀 요거트를 먹는다 나는 낫는다. 나열해보니 무궁무진하다. 내가 나아야 할 이유가. 내가 믿는 건 또 있다. 내 벗들이 자신들의 운을 나에게 반씩 뚝 떼어주겠다고 했다. 그러니 다시 건강해지라고. 내년에도 다시 오라고.이번에 못 간 여행도 같이 가자고. 나는 내 운을, 내 벗들의 운을 믿는다. 출국을 앞두고 내 버킷리스트가 다시 촘촘하게 채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