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카페 안에는 슈테판이 친구들을 위해 마련한 테이블이 있다. 그가 차를 끓여오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고요가 창가에 내려앉아 잠시 머물다 갔다. 삶에게 '네'라고 말하기 좋은 순간이었다.
동네 카페에 갔다. 헝가리 출신 할아버지 슈테판이 주인장인 카페다. 그는 우리 동네에서만 몇십 년째 살고 있다. 일명 정보통. 갈 때마다 따뜻한 차도 내주신다. 공짜로. 친구에게 돈을 받는 법은 없다며. (독일은 쿨하게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나이와는 상관없이. 차 값을 테이블에 두고 나올 때는 밖에까지 따라 나와 돌려주신다. 그러지 말라며. 절대로.) 어디 차뿐인가. 내가 암이라는 말을 듣고 여러 가지 정보도 알아봐 주신다. 이웃집 남자가 암에 걸렸다가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것도 슈테판에게 들었다. 항암과 함께 보조요법을 했는데 나 보고도 꼭 해보란다. 성의가 고마워서 요법의 스펠링을 폰에 적어왔다. 한국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용어였다.
코로나 시대의 카페는 낭만적이지 않다. 테이크 아웃 밖에 안 되는 카페가 어디 카페인가. 어딜 가도 앉을 데가 없다. 내가 즐겨 앉던 카페의 창쪽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켜켜이 쌓여있었다. 변하지 않은 건 창가에 놓인 색색의 화분들. 오후의 햇살이 비쳐들자 황금빛으로 빛나는 노란 벽. 벽에 바짝 몸을 붙이고 미동도 없이 서 있던 붉은 커튼. 슈테판이 차를 내오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고요가 창가에 내려앉아 잠시 머물다 갔다. 카페 안에는 슈테판이 친구들을 위해 마련해 둔 테이블도 하나.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깊은 산중의 암자 같은. 그곳에 앉아 할아버지 친구가 끓여온 민트차를 마시던 오월의 한나절. 삶에게 '네'라고 말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월요일엔 CT를 찍고 왔다. 오전의 병원 휴게실에는 햇살이 한가득이었다. 남편이 아침에 병원까지 차로 데려다주고 갔다. 바빠서 데리러 오지는 못했다. 병원 앞에 트람이 있어서 혼자 돌아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CT를 찍기 전에 우유 같은 액체 세 병을 마시는 게 힘들었을 뿐. 트람 역으로 가는 길에는 고주파 열치료를 예약한 자연요법 병원 팻말도 보였다.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트람 안에도 사람이 적었다. 본격적으로 항암을 시작하기 전에 항암과 병행할 자연요법 치료를 두 군데 예약했다. 열치료와 고용량 비타민 요법. 면역력을 높여주고 항암의 부작용을 줄여주리라 기대하며. (병원의 숄츠 교수와 주치의에게도 허락을 구했다.)
병은 소문부터 내고 보라는 말이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치료법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것저것 해보고 아니면 말면 되지. 몸에 나쁜 게 아니라면 손해 볼 건 없다. 사람마다 체질도 다르고 병증도 다르니 어떤 게 정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백방으로 노력하다 보면 운 좋게 하나가 맞을 수도 있고. 하고 싶은 건 다 해봐야 후회도 없고 미련도 안 남겠지. 슈테판이 말해준 '메타돈 Methadon 요법'에 대해서도 검색해 보았다. (일종의 마약 성분이라 한국에서 상용되기는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중독성을 뺐다고는 해도.)
저녁의 산책도 좋았다. 남편이 일찍 돌아와 집에서 일을 하는 날이었다. 조카가 와서 제육볶음과 닭죽을 해주고 갔다. 삼시 세 끼를 챙기는 언니도 자기가 차리는 밥상이 맛이 없다며 반가워했다. 잘 알지. 한국에 가기 전 나도 그랬으니까. 무리해서 한국에 간 것도 알고 보면 음식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일찍 저녁을 먹고, 힐더가드 어머니께도 저녁 8시 전에 안부 전화를 드렸다. 온 가족이 산책을 나간다 하니 좋아하시며 일찍 통화를 마치셨다. 나가기 싫다고 징징거리는 아이의 등짝에 스매싱을 날리며 다리 두 개 사이를 걸었다. 이자르 강변의 석양빛과 달콤한 아이스크림은 덤.
단골 미용실에서 머리도 잘랐다. 오랜만에 만나는 젊은 미용사 파비는 20대 젊은이다. 이번에 보니 오른팔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문신을 했더라. 목소리가 조용조용하고 말이 없는 친구다. 그래서 좋다. 이번에는 파비가 내게 말을 많이 걸었다. 나 역시 머리를 할 때는 집중하라고 말을 아끼는 편인데 물어보는 말에 대답을 안 하기는 어렵지. 곧 항암을 할 거란 말도 했다. 작년 말에 수술한 것도 알고 있기에. 새로 나는 머리가 흰머리면 어떡하냐고 하길래 제발 안 그러길 바란다며 함께 웃었다. 최근 독일은 마트나 약국이 아닌 일반 가게를 방문할 때는 코로나 음성 결과지를 들고 가야 한다. 잊었다 하니 괜찮다 했다. 알리시아 안부도 물었다. 한번 보내겠다 말하고 미용실 출입문을 열자 바람도 가볍고 공기도 가볍고 마음까지 가벼웠다. 생의 한가운데로 한 발을 성큼 내디딜 용기도 났다. 머리칼을 조금 잘랐을 뿐인데.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by 에크하르트 톨레)에서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