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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May 16. 2021

두 번째 항암을 기다리며 산책

5월의 로젠가르텐


TV 드라마와 삶의 드라마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 각자의 드라마를 찍고 있다. 딱 하루치의 대본만 받아 들고서. 결말을 아는 사람은 없다. 내일의 대본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누구도 모른다.  


로젠 가르텐에 핀 노란 목련(위)와 자목련(아래).



항암을 시작 지 째. 컨디션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두 번째 항암 때까지는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두 개의 항암제 중 다음 주에 맞을 약이 세기 때문이다. 첫 번째 항암에 부작용이 없었던 이유가 약한 항암이었기 때문이었나, 하는 생각은 며칠 후에 다. 매주 약한 항암과 센 항암을 번갈아가며 맞는 건가 하는 추측까지. 첫 번째는 약한 항암인 카보플라인, 두 번째는 센 항암인 파클리탁셀(탁솔). (따로따로 맞는다는 설명을 들은 기억은 없다. 들었다고 해도 기억을 못 했으려나. 내가 적은 메모에는 없었다. 나는 두 가지 약을 섞어서 맞는 줄 알았다. 왜 그랬지?) 확실한 건 항암 전에 의사가 말했다. 모든 부작용은  항암제와 함께 온다고. 가장 대표적인 건 손발 저림, 근육통을 동반한 피로감, 미각 상실, 피부 건조 그리고 탈모.


그러면 그렇지. 항암이 만만할 리가 있나. 그러면 안 되지. 그건 불공평하니까. 세상의 모든 암환자들이  힘들지 않나. 나만 예외일 수는 없고, 독일의 항암이라고 다를 리 없다. 독일의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아인 말 이스트 카인 말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뿐인 것은, 없는 것과 같다. 한 번은 카운트하지 않는다. 고도리를 칠 때 첫 끗발을 쳐주지 않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럼 두 번은? 우연 혹은 좋은 경우도 요행으다. 세 번은? 정석, 모범, 본보기! (아인 말 이스트 카인 말 Einmal ist keinmal. 츠바이 말 이스트 추팔 Zweimal ist Zufall. 드라이 말 이스트 아인 무스터 Dreimal ist ein Muster.) 가위바위보를 하더라도 삼세 번을 하는 이유가 있구나.


두 번째 항암을 기다리는 내 마음도 그렇다. 겸손한 자세로 대기해야지. 부작용이 없다고 기뻐날뛰지도 말고, 부작용이 있다고 절망하지도 말고. 그것이야말로 5월에 새로 시작한 드라마 제목처럼 '멸망'이 찾아오는 지름길일 테니까. 내가 진실로 고민하는 것은 무엇으로 이 시간을 견딜까 하는 것뿐이다. 항암 직전에는 조카의 추천으로 드라마 <나빌레라>를 보았다. 70세 노인에게도 꿈은 있다. 그것도 발레라는 꿈. 그러니까 드라마 아니냐고? TV 드라마와 삶의 드라마가 다른가. 내게는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 각자의 드라마를 찍고 있다. 딱 하루치의 대본만 받아 들고서. 결말을 아는 사람은 없다. 사랑을 얻을지 잃을지, 부귀영화를 누릴지 말지, 장수할지 단명할지, 내일의 대본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누구도 모른다.  



로젠 가르텐에는 오월의 라일락, 라일락, 라일락들..



항암과 동시에 자연요법도 시작했다. 항암 전에 비타민 C 요법부터 시작. 다음 주에는 비타민 C와 강황 요법을 같이 한다. (이건 개인 클리닉에서 한다. 건강보험은 적용되지 않는) 항암 전날에는 우리 병원과 연계된 자연요법센터도 방문했다. 병원 바로 옆이라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는다. 암병동 담당의가 자연요법센터에서 하는 고주파 온열치료에 긍정적이어서 자연요법센터 의사와 곧바로 상담을 했다. 매주 항암 직후에 자연요법센터에서 열치료를 받기로 했다. 치료 시간은 1시간. 앞으로 9주 동안 열치료 일정이 잡혔다. (이것도 건강보험이 안 된다. 다른 곳보다 싼  같다) 항암 후 첫 치료를 했는데 뜨겁지는 않고 따뜻한 정도였다. 독일 사람들은 그 정도 온도에도 덥다며 땀을 비 오듯 쏟는다고. 열치료 말고도 자연요법센터 의사가 강력하게 추천한 것은 미슬토 요법 Misteltherapie. 우리말로 겨우살이인 미슬토는 항암과 면역력 증진에 특히 좋다고. 문제는 집에서 직접 주사를 놓아야 한. (대박! 검색하니 미슬토차도 있다.)


항암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산의 Y언니가 며칠 전 샘과 함께 하루에 20km를 걸었다고 한다. 내 항암이 잘 되기를 기원하며. 사진 속의 언니는 몰라보게 몸이 가벼워 보였다. 그렇다고 얼굴까지 갸름해지는 건 반칙 아닌가. 50대 중반에. 그 얘기를 듣던 날 나도 기운을 내서 이자르 강변 숲 속 길을 9.4km 걷고 돌아왔다. 이번 주부터 뮌헨은 레스토랑과 카페의 노천 테이블이 오픈했다. 실내에는 앉을 수 없지만 밖에 앉을 수 있게 된 것. 코로나 음성 테스트를 받는 게 귀찮긴 하지만. 산책하다 보니 뮌헨 동물원도 문을 열었다. 매표소 앞에는 유모차를 끌고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힐더가드 어머니도 다음 주말에 뮌헨에 오신다. 날씨만 좋으면 어머니와 비어 가든에 갈 생각이다. 해가 꼭 나와주면 좋겠다. 올해 오월은 오월도 아니다. 독일은 오월과 유월이 정말 아름다운데. 어떡하나. 요즘 내 대본에는 매일 흐리거나 비라고 적혀 있다. 내일은 다를 수도 있고.



비 오는 날과 흐린 날의 산책길. 그리고 작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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