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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May 23. 2021

항암을 해도 주말은 좋다

힐더가드 어머니도 뮌헨에 다녀가시고


레겐스부르크의 힐더가드 어머니가 뮌헨에 다녀가셨다. 내가 힘들까봐 당일로 왔다 가셨다. 얼마나 오고 싶으셨겠는가. 두 번의 수술과 항암을 시작한 내 모습은 또 얼마나 궁금하셨을 것인가.


뮌헨의 마리엔 플라츠와 뮌헨 시청(위) 빅투알리엔 마켓 옆 프쇼르 맥주집 Der Pschorr(아래).



요즘 내 생활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안정'이다. 한국에서 두 달 가까이 폭풍 같은 시간을 지내고 온 후라서 더욱 그렇다. 한국에 가기 전과 비교해도 마찬가지. 그때는 몸만 좋아졌지 마음은 여러모로 복잡했다. 한국이 그리워서 독일이 성에 차지 않았다. 한국 밥상이 그리워서 부엌에만 가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독일의 남편과 아이에게 짜증도 다. 한국에 안 갔더라면 복부에 화상을 입거나 재입원을 하거나 재수술을 하는 난리는 없었겠지. 가슴뼈로 전이도 없었겠지. 그것도 모자라 독일에 오니 갑상선 쪽으로도 암이 퍼졌다. 이래도 후회하지 않느냐고? 아니. 후회하지 않는다.


미친 짓이었다는 건 인정. 수술하고 두 달 만에 체력이 100% 오르지도 않았는데 한국을 가다니. 그 먼 거리를 날아갈 엄두를 내다니. 직항도 없이. 시차나 2주 격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엄마의 집밥만이 자나 깨나 눈에 아른거렸다. 그 밥을 먹어야 살 것 같았다. 그래서 안 한다, 후회. 실컷 먹고 왔다, 그 밥.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던 팔순을 앞둔 노모의 집밥을. 친구들과 만난 시간들도 별미였다. 그 공원. 그 봄꽃들. 그 카페. 그 오트밀. 그 뜨겁던 아메리카노의 맛. 뮌헨에서는 아무리 흉내를 내도 그 맛이 안 난다. 그들과 함께 마시던 커피가 아니라서. 뮌헨으로 돌아온 후로는 더 이상 후회도 미련도 없다. 남편과 아이와 세 마리 애니메이션 라따뚜이를 꼭 닮은 쥐들과 함께 하는 일상의 평온함.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항암과 보조 요법으로 바쁘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일정이 없어 텅 비어 편안한. 그래서 주말이 좋다. 주말에만 누리는 약간의 게으름도.



골디 머리 위엔 하양이(위) 하양이 위엔 까망이(아래). 셋 다 숙녀임.



두 번째 항암을 하고 온 날 라따뚜이  중 하나가 아팠다. 저녁이 되자 아이가 눈물을 흘렸다. 엄마, 까망이가 아픈 거 같아. 어떡해. 아까는 힘이 하나도 없고 물도 제대로 못 마셨어. 저러다 까망이 으면 어떡해! 집에서 동물을 키워도 좋다고 허락할 때 생각 못 한 건 아니다. 아이에게는 힘들겠지만 좋은 경험이 것이다. 엄마 아빠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가 생긴다는 것. 아이에게 라따뚜이 세 마리는 그런 의미였다. 엄마, 난 쥐들이 있어서 너무 행복해. 말을 할 때 아이는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사랑을 하면 이별도 있어야지. 사랑에는 괴로움이 따른다는 것도 배워야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은 없다는 것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애들은 아프면서 크는 거야, 너처럼. 그 말에 아이 들은 척도 안 했다. 자고 나면 괜찮을 거야, 너도 그랬잖아. 그 말에안심하는 눈치였다. 대신 내 속이 탔다. 설마, 진짜로, 내일 아침에,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 까망아?


다음 날 까망이는 기운을 차렸다. 내가 진통제 한 알로 다시 일어났듯이. 아침에 남편이 아이 방에 들어가자 놀고 있던 까망이가 코코넛 방으로 부리나케 숨더란다. 나는 아침에 몇 번이나 들어가 봐도 못 봤는데. 하양이와 골디만 열심히 놀고 있던데. 자고 있는 아이 귀에다 속삭였다. 파피가 까망이 노는 거 봤대. 봐, 엄마 말이 맞잖아! 아이가 눈을 번쩍 다. 쥐들 집으로 달려가 코코넛 지붕을 번쩍 들어 까망이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새 눈까지 맞췄는지 까망이 눈이 반짝거리더라고. 그러니 됐다고. 사랑하면 저런 법이다. 눈빛만 봐도 아는 거지. 전날 밤에는 쥐 때문에 울던 아이가 나를 바라보며 정색하고 말했다. 엄마, 미워. 왜..? 아파서! 그 소리에 아무 말도 못 했다. 다음 날 아침 아이가 말했다. 쥐들이 없었다면 자기가 많이 힘들었을 거라고. 온라수업이 없는 날 아침이었다. 내 침대건너온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빅투알리엔 마켓에서 파는 물건들(위) 힐더가드 어머니와 만났을 때 마신 레드와인 1/3 잔(아래). 너무나 맛있었다! 어머니가 놀라심. 마셔도 되냐고. 예외도 있는 거죠!



항암 일정이 나오자 가장 안심하는 사람이 남편과 독일 시부모님들이시다. 차근차근 계획하고 실천하는 게 독일 스타일이라서 일탈이나 무작정 뭐뭐 하기 같은 건 안 통한다. 항암을 중심으로 일상이 세팅되자 나 역시 심리적인 안정감이 크다. 투병 규칙을 착실하게 지켜나가는 동시에 집에서는 언니가 혼신의 힘을 다해 집밥 투혼. 나는 매일 산책 가는 것을 빼먹지 않으려 애쓴다. 두 번째 항암을 받던 날은 진통제도 먹었다. 항암 받기 며칠 전부터 어깨와 목 뒤가 아파서. 그날은 새벽 두 시에 깨서 네 시까지 못 잤다. 진통제 한 알의 힘! 왜 몰랐을까.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미련하기는! 아침에 일어나자 언제 아팠냐는 듯 통증이 사라졌다. (진통제는 비타민 C 요법 클리닉의 여의사에게 선물받았다. 약효는 6~8시간이라 했다. 나는 이틀에 한 알씩 먹고 있다.)


레겐스부르크의 힐더가드 어머니도 뮌헨에 다녀가셨다. 얼마나 오고 싶으셨겠는가. 내 모습도 궁금하셨을 거고. 토요일 오전에 오셔서 뮌헨 시내에서 만났다. 상점들은 코로나 테스트 없이 들어갈 수 있지만 레스토랑과 카페는 테스트를 받아야 했다. 빅투알리엔 마켓의 맥주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날씨가 쌀쌀했다. 그날은 해가 나왔다. 핑스턴 2주 방학을 앞둔 주말이라 뮌헨 시내에는 사람들로 차고 넘쳤다. 왜 아니겠는가.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인데. 해가 나와서 노천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일상을. 언니와 나를 만나신 어머니는 또 얼마나 반가워하시던지. 나 역시 항암을 시작했지만 아직 체력과 머리카락이 남아 있어 다행이었다. 핑스턴 방학이 끝나기 전에 레겐스부르크 어머니 댁도 다녀올 생각이다. 언니와 꼭 같이 와서 하루 자고 가라 하셨다. 어머니는 오후 6시 40분 기차로 레겐스부르크로 돌아가셨다. 오후에는 우리 집에서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게임도 하고 이자르 강변 산책도 했다. 일요일 아침에는 어머니가 보내신 왓츠앱도 받았다. 전날 만남의 기쁨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힐더가드 어머니와 산책하던 이자르 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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