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와 산책 때 마신 '아메리카노'라 적힌 쓰디쓴 커피 때문인지 새벽에 깨어나 잠들지 못했다. 부엌으로 건너오니 새벽 4시 반. 오늘은 네 번째 항암을 맞는 날이다. 잘 맞고 오려고 한다.
이자르 강변 산책로.
유월의 첫날은항암 포터로 뼈 약물을 주입했다.앞으로 4주에 한 번씩 1년 동안 맞을 것이다. 뼈 전이 때문에. 세 번의 항암 후 부작용은 없었다. 이번 주부터 항암약의 용량을 늘린다고 마리오 글루 샘이 말했다. 지금까지는 시범이었던 것. 항암이 만만할 리가 있나.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는 이유다.대응책은 없다. 주면 주는 대로, 오면 오는 대로 받는거지. 입맛을 잃지 않는 게 관건이겠다. 산책도 열심히!
림프 테라피도 다시 받고 있다. 예전에 다니던 곳은 예약이 어려워 시누이 바바라가 새로운 곳을 알려주었다. 안데르스-구덴이라는 중년의 여자분이 혼자 운영하는 곳인데 같은 자리에서 26년을 했다고. 그 소리를 듣고는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달랐구나. 파도처럼 부드러우면서 찰떡처럼 강약이 있던손길. 시범적으로 1시간을 받자마자 마음에 들었다. 예전에 다니던 곳과도 멀지 않다. 버스로는 세 코스. 지하철은 1코스. 걸으면 20분. 가능하면 걸어서 오간다. 1주일에 한 번 테라피를 받는 날엔 왕복 3킬로의 산책을 그렇게채운다.
비판텐 나르벤젤 Bepanthen Narben-Gel 도 이 새로운 테라피스트에게 들었다.내 복부 수술 자국이 심하게 뭉쳐있다고. 수술 자국을 완화해주는 연고다. 특히 한국에서 재수술을 받은 곳이. 당연하다. 같은 곳을 두 번이나 수술했으니. 비판텐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연고 아닌가. 애들 키우는 집에는 꼭 있다. 신기한 건 한쪽은 공 모양으로 롤러가 달려있어 연고를 바르기 전에 마사지를 하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해야지. 신뢰가 가는 사람이 알려준 거라면 더더욱. 한 주를 바르고 갔더니 수술 자국이 훨씬 부드러워졌단다. 이런 테라피스트와 함께라면 잘 될 것 같은 예감. 천하의 림프 부종이라고 해도.암센터 의사가 말한 비판텐 크림도 같이 주문했다. 건조한 피부에 좋다고 한다.
강변 오솔길 산책로에는 초록이 촘촘하다.
요즘 독일의 일출은 05:20 일몰은 21:00. 오월 말부터 화창한 날씨의 연속이다. 날씨가 좋으니 기분도 좋다. 무엇이든 잘 될 것 같은 느낌도. 사람들의 표정도 부드럽다. 왜 안 그렇겠는가. 거리마다 노천카페에 노천 레스토랑에 빈자리 없이 사람들로 꽉 찬 모습을 도대체 얼마 만에 보는 것인지. 그래서 우리도 앉아보았다. 오후 늦게 언니와 시내로 산책을 나갔을때. 열쇠도 복사하고 (아직도 모든 집들이 열쇠를 사용한다. 건물 입구/현관문/우편함 세 개가보통 한 세트다), 언니를 위해 새 앞치마도 사려고 했는데 앞치마는 못 사고 열쇠만 카피했다. 세 개에 31.50유로. 이 정도면 싼 편이다.
언니와 아이의 도움으로 주말에는 미니멀 라이프에도 도전했다. 가족들의 옷과 신발부터 정리했다.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아이 방. 오래된 장난감과 물건들이 서랍 속과 책장 위에 빼곡했다. 아이 방에 쥐들까지 키우는데 깔끔할 필요가 있지. 친구들도 놀러 오고 자고 갈 때도 많은데. 아이에게는 '친구'와 '쥐'라는 당근이 먹혔다. 방바닥에서랍 속을 하나씩 쏟아놓고 좋아하는 것을 고르게 했다. 나머지는 버스 정류장 옆 재활용 장소에 내놓았더니 누가 금방 들고 갔다. 소득도 있었다. 오래된 내가방을 정리하다가 지난 크리스마스 때 카타리나 어머니께 받은 용돈 봉투를 발견!보물섬이 따로 없다.
또 있다. 비타민 C 용법에 쓰려고 약국에 주삿바늘을 주문했는데 주치의가 보험 처리를 안 해줘서 남편이 직접 계산하고 구입한 모양이었다. 동네 약국에 다른 일로 들렀더니 돈을 환불해 주는 게 아닌가. 그것도 123유로나. 당신 남편이 얼마 전에 사 간 건데 보험에서 처리가 된다고 연락이 왔다나. 신기한 건 내가 그 고객의 아내인 줄 어떻게 아셨냐고. 하긴우리 동네 약국에 정기적으로 들르는 동양 여자가 나 말고 누가 있을까마는. 약국 입장에서는 금방 눈에 띄는 고객일 수 있겠다. 주말 동안 공돈을 챙기는 재미가 쏠쏠했다. 무리를 하지 않으려고 거실과 부엌 정리는 다음으로 미루었다. 첫 소득은 깔끔한 아이 방하나로 충분. 투덜거리던 아이도 놀라며 반기는 분위기다. 예전에 비해 뭔가 허전하고 심심하다는 파파만 빼고.간밤에는 언니와 산책 때 마신 '아메리카노'라 적힌 쓰디쓴 커피 때문인지 새벽에 깨어나 잠들지 못했다. 부엌으로 건너오니 새벽 4시 반. 오늘은 네 번째 항암을 맞는 날이다. 잘 맞고 오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