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간의 휴가는 잘 다녀왔고, 삐걱댈 뻔했던 바바라와의 관계도 잘 봉합되었다. 한바탕 수다로 화해의 제스처는 끝났다. 다행이었다. 긴장감은 오래 들고 갈 게 못 된다. 누구도 아닌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
호숫가 반대편에서 바라본 아헨제 휴양지 전경.
나는 왜 초대도 받지 않은 시어머니 휴양지에 가고 싶었을까.어머니의 호텔을 구경하고 싶다는 사심때문이었다. 멋지다고 소문난 호텔을 나도 보고 싶었다. 이번 호텔은 시아버지 오토의 둘째 딸이 검색해서 예약을 해주었다. (물론 계산은 어머니가 하심.) 검소하신 어머니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선뜻 고르기 힘드셨을 럭셔리한 호텔이었다. 바다 같은 호수가 바라다 보인다는 둥근 침실. 가격은 당연히 비싸서 어머니도 처음에는 망설이셨다는 후문이다. 그 돈이면 이웃집과 담장 역할을 하는 정원의 펜스를 고칠 수 있을 텐데 하시며. 왜 아니겠는가. 그 역시 내가 좋아하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그래서 봤냐고? 당근! 직접 보니 더 예뻤다. 금요일 점심 무렵 도착하자마자 우리 숙소 체크인을 마치고 어머니 호텔로 직행했다. 뮌헨에서 오스트리아 아헨제까지는 1시간 반이 걸렸다. 호수도 멋졌지만 어머니의 호텔도 안 봤으면 후회할 뻔했다. 북카페 같은 호텔 로비부터 로비에 있는 게스트 화장실까지 마음에 들었으니 말해 무엇하랴. 하이라이트는 어머니의 룸. 빨간 소파가 놓인 긴 거실, 창가의 둥근 침대를 둘러싼 하얀 침대 시트와 이불깃에도 푸른 호숫물이 배어날 것 같았다. 양쪽의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풍경도한 폭의 수채화. 하룻밤 묵고 싶지는 않았냐고?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구경만으로도 굿굿굿. 아름다운 호수도, 멋진 호텔 구경도 어머니 덕분이었다.내가 어머니 휴양지로휴가를 가고 싶어 하는 이유.
어머니가 머무신 럭셔리 호텔. 왼쪽부터 거실, 호수가 바라다 보이는 침실, 북카페를 연상시키는 호텔의 로비(위). 뮌헨으로 돌아오던 날의 아헨제 호수와 요트들(가운데/아래).
우리 숙소는 콘도식 아파트 호텔이었다. 어머니 호텔 바로 뒤편. 복도를 중심으로 왼편은 침실, 오른편은 거실 겸 부엌. 창가에는 식탁과 발코니로 나가는 문과 소파. 추워서 발코니에는 한 번도 못 앉아보았는데 거기서 바라보는 산 위 구름과 산 아래 초록 들판 풍경이발코니의 꽃들과 조화를 이뤄눈이 즐거웠다. 아늑한데다 아침 식사가 포함된 숙박비마저 착해서 언니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부엌에는 전자레인지와 커피 도구, 오븐, 식기 일체가 구비되어 있고, 깨끗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어만족도를 높였다. 거실과 침실에는 TV, 와이파이까지 완비! 그중에서도 아침 식사가 가장 좋았다. 작은 사이즈의 빵들이 얼마나 향긋하고 고소하던지! 주인아주머니의 시원시원한 성격까지 즐거운 휴가에 한몫을 했다.
어머니와는 우리가 도착하던 금요일 점심과 저녁을 같이 먹었다. (물론 언제나 어머니가 사 주심.) 그 지방에서만 난다는 스톤 오일 박물관도 구경시켜 주셨다. 오래전 그곳이 바다였음을 추측할 수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돌에서 기름이 나오겠나. 돌을 좋아하는 아이는 할머니를 모시고 파파 차가 출발하자마자 이모야의 손을 잡고 박물관 기념품 가게로 달려갔다. 어머니가 떠나시던 토요일 아침이었다. 어머니는 비와 안개 때문에 우리와 케이블카도 못 타고, 유람선도 못 탔다며 아쉬워하셨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 호텔 옆 카페에서 커피와 차를 마시고 보내드렸다. 어머니가 떠나시며 맛있는 저녁 사 먹으라고 주신 돈은 아직도 내 지갑 속에 고이잠들어있다. 그날 저녁 남편이 장을 봐와서 저녁을 차려 준 덕분에.
우리가 사흘간 묵었던 콘도식 아파트호텔(위/가운데)와 아침 식사를 했던 숙소 레스토랑(아래).
사흘 내내 아헨제의 날씨는 춥고 흐렸다. 비가 오다 말다를 반복했고, 안개가 자주 등장했으며, 잠시 푸른 하늘이 보이다가 잠깐 해가 나오기도 했다.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늦여름 날씨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일요일 오전에는 케이블카로 산 중턱까지 올라갔지만 산행과 트레킹은커녕 산책도 못했다. 너무 추워서. 비 내리는 산 위의 기온은 2도. 산장에서 기념으로뜨거운 수프와 차만 마시고 서둘러 하산했다. 뮌헨으로 출발 후 호수 반대편 도로를 달릴 때는 차를 잠시 멈추고 우리가 묵었던 마을의 사진을 찍었다. 어머니가 묵으셨던 호텔의 지붕과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비둘기처럼 흰 성당과 고요한 호수를 반대쪽에서 바라보니 며칠 전 들끓던 감정들이 아무 것도 아닌 일처럼 느껴졌다.
이번 일로 깨달은 건 안 하던 짓이 제일 어렵더라는 것이다. 힘들게 나를 바꿀 필요도 없었다. 그게 더 스트레스였다. 조금 참더라도 편한 게 좋다면 그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관계가 불편해지거나 미움이 생기는 상황 자체가 못 견디게 힘들고 괴로운사람도 있으니까. 다만 상대가 도를 넘는다 싶을 때는 이번처럼 화가 났음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먼저 내 속이 후련해야 양보도 타협도 있는 법이니까. 거기서 한 발 더 앞으로 나갈지 물러설지는 상대방의 태도에 달렸다. 암에 걸린 이후로 가장 많이 듣는 충고는 너무 참고 살지 말라는 것. 그래서 하나씩 배워 가고 있다. 그걸로 충분하다. 사람이 갑자기 바뀔 수는 없으니까. 그럴 필요도 없는것 같고.
숙소의 조식(위). 아헨제의 카페(가운데). 다른 호텔에서 저녁 식사. 샐러드가 큰 접시 가득 나왔다. 가격 저렴, 양도 많고, 맛있어서 어머니와 우리 모두를 만족시킴(아래).
휴가에서 돌아온 후 바바라와도 화해했다. 화해랄 것도 없었다. 어머니가 바바라를 위해 스톤 오일 박물관에서 사주신 선물을 받으러 온 것. 화해의 매개는 이번에도 어머니였다. 화요일 저녁에 전화를 하고 우리집에 와서 언니가 끓인 소고기뭇국과 밥을 맛있게 먹었다. 남편이 사 온 오븐구이 통닭도 나눠먹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언니와 내가 산책을 나가려 하자 바바라가 같이 가고 싶다고 했다. 대놓고 싸운 적이 없기에 어색한 사과의 말은 필요없었다. 좋은 얼굴로 인사를 나누고, 함께 대화를 하고, 밥을 먹고, 우리 남편을 포함한 삼남매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를 들으며 박장대소를 하기도 했다. 그게 다였다. 마지막엔 볼키스를 나누고 웃는 얼굴로 헤어졌다. 겉으로만 화해한 게 무슨 소용이냐고? 해보시라. 안 하는 것보다 백 배 낫다! 진심은 서로 모르는 게 나을 때도 있는 법이라서.
시아버지 오토 이야기도 빠지면 서운하다. 오토 아버지는 요양원에 열흘 이상 계시다 댁으로 무사히 귀가하셨다. 우리가 요양원에 들를 때마다 칭송의 말을 잊지 않으셨는데, 천국에 가는 날 우리 이름을 가장 먼저 호명한 뒤 명부에 올려 놓겠노라 하셨다. 착한 아이들 명단 쪽에다 말이다. 퇴원 1주일을 남겨두고 나 혼자 간 날엔 내 앞에서 어린 아이처럼 울기도 하셨다. 카타리나 어머니가 그립다시며. 다시는 집으로 못 가고 하늘로 갈 것 같다시며. 티슈를 건네며 내가 말했다. 걱정 마시라고. 하루는 길어도 1주일은 금방이라고. 그래도 울고 싶으시면 자주 우시라고. 정신 건강에 아주 좋으실 거라고. 그러자 놀란 눈으로 내게 물으셨다. 너도 자주 우냐? 그럼요, 울고 나면 얼마나 개운한대요. 카타르시스 안 느껴지세요? 요즘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픈 말을 던지는 며느리로 변신 중이다.
산 중턱 산장에서 뜨거운 수프와 차만 마시고 내려왔다(위/가운데). 어머니가 떠나시던 토요일 아침의 산책. 왼쪽부터 우리 언니, 어머니, 알리시아 그리고 나(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