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 어머니에게 초대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시어머니 휴가지에 다녀온 이야기

by 뮌헨의 마리


지난주는 항암을 못했다. 백혈구 수치가 낮아 한 주 쉬었다. 그렇다면?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도 있잖은가! 주말여행을 갔다. 카타리나 어머니가 휴가차 가신 오스트리아의 호수 아헨제 Achensee로.


안 왔으면 어쩔 뻔했나! 저 호수를 못 봤다면 억울하지 않았을까? (이번에 깨달은 건 성질은 죽이고 볼 일이란 것.)



광복절인 일요일 오후. 카타리나 어머니 생신 식사에 초대를 받고 어머니 댁을 방문했다. 날이 더워서 오후에 남편과 아이가 슈탄베르크 호숫가로 수영을 가고, 독일어를 모르는 우리 언니와 나와 시누이 바바라와 어머니 총 네 명이 어머니의 정원 테이블에 앉아있을 때였다. 어머니가 당신의 여름휴가 열흘 중 5일간 우리 아이만 '초대'하겠다고 하셨다. 그냥 데려가시면 되지, '초대'라니. 평소에 알던 어머니가 아닌 것 같았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해마다 우리는 어머니의 호숫가 휴가지를 방문했다. 우리 가족의 연례행사나 마찬가지인 일을 두고, 대체 뭐지 싶었다.


"바바라, 넌?"


"난, 토욜 갈 건데..."


바바라의 대답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럼 난? 카타리나 어머니에게도 휴가가 필요하다며 휴가 동안 오토 아버지를 가까운 요양원에 모시는 게 어떻겠냐고 을 때 좋은 생각이라며 가장 먼저 반긴 사람은 나였는데. 주말에 함께 어머니를 방문하자고 약속까지 놓고. 내가 그날을 얼마나 기다리는 줄도 잘 알면서. 그럼에도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뮌헨에 도착해서도 바바라는 같이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내가 어머니에게 '초대'받지 못했다는 것을. 그게 나 들으라고 하신 말씀이었다는 것을.


남편은 어머니를 모셔다 드리며, 아이를 데려다주며 번 오갈 것이고, 바바라는 주말이고 평일이고 원하는 대로 다니러 갈 거고. 둘은 어머니의 자식이니 '초대'가 왜 필요한가. 나는 처지가 달랐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며느리 아닌가. 이번 휴가를 손녀와 둘이서만 보내시겠다는 선언은 아이 엄마인 나는 빠져달란 소리로 들렸다. 어머니에게는 서운했고 바바라에겐 화가 났다. 나는 가족도 아니란 말인가. 어머니를 좋아했기에 충격이 더했다. 항암 중인데 이렇게까지? 다음날 아침 비문증이 찾아왔다. 항암 부작용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스트레스도 한 몫했다.



아헨제에 있는 호텔과 성당과 레스토랑.



이유는 짐작이 갔다. 카타리나 어머니 생신 전에 남편의 새어머니인 힐더가드 어머니를 방문한 게 화근이었다. 카타리나 어머니는 우리가 힐더가드 어머니를 방문한 걸 어떻게 아셨을까. 힐더가드 어머니 댁으로 출발하며 내가 바바라에게 왓츠앱을 보낸 게 실수였다. 바바라를 통해 카타리나 어머니 귀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솔직한 게 언제나 좋은 건 아니었다. 바바라는 힐더가드 어머니와 사이가 안 좋았다. 내가 힐더가드 어머니와 매일 통화하는 것도 싫어했다. 그렇다고 해서 안 할 이유는 없다.


카타리나 어머니도 힐더가드 어머니를 싫어하셨다. 작년에 힐더가드 어머니와 스페인으로 여름휴가를 떠났다가 카타리나 어머니 생신날에 못 갔던 것 때문에. 원래는 생신 전날 돌아와서 당일에 가려던 계획이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어 공항에서 코로나 테스트를 받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휴가를 떠나기 전까지는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매년 형네와 바바라와 우리 가족 모두를 휴가에 초대하시다가 그해는 우리만 '초대'하신 것도 문제가 되었다.


힐더가드 어머니는 올해도 바바라만 빼고, 우리와 형네를 스페인 여름휴가에 초대하셨다. (나와 언니는 내 항암 일정 때문에, 아이는 자가격리 때문에 개학날 학교에 못 갈 위험이 있기에 포기했다.) 바바라는? 처음에는 초대하셨다가 몇 가지 이유로 취소하셨다. 대표적인 건 바바라의 백신 거부였다. 백신도 맞고 가족 여행도 함께 가면 좋으련만! 어머니도, 형네도, 우리 가족도 백신 2차 접종을 완료했다. 우리 아이만 만 12세 미만이라 내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거기다 비행기만 같이 타고 가서 휴양지 바깥에서 나 홀로 여행을 하겠다는 제안은 어머니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카타리나 어머니가 머무셨던 호수 앞 럭셔리한 호텔과 부대 시설.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민 건 카타리나 어머니셨다. 아이를 데려다주러 간 남편이 어머니께 내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보고를 했겠지. 어머니는 아이를 통해 다음날 바바라가 올 때 같이 오면 좋겠다는 의사를 내비치셨다. 내가 안 가고 싶다고 선을 긋자 깜짝 놀라신 듯했다. 아이가 전했다. 할머니가 엄마 선물까지 사놓고 기다리고 계셔! 그런다고 굽힐 것 같으면 시작도 안 했다. 번 정도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 걸 보여드려야지. 참는 게 다는 아니었다.


같은 날 오후 바바라도 왓츠앱을 보냈다. 우리가 가고 싶으면 다음날 같이 가자고. 한 마디로 잘랐다. 안 가고 싶다고. 싸움도 화해도 사랑도 미움도 세상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 타이밍이 중요하다. 진작 했어야지. 너무 늦었다. 전날에는 요양원에 계신 오토 아버지 병문안을 같이 가자고 하는 것도 거절했다. 네가 못 가는 날만 알려줘. 그럼 내가 갈게. 자기가 총대 메고 벌인 일은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 어머니한테 놀러는 혼자 가고 병문안은 같이 가자고? 자기가 없으면 당연히 내가 가고? 이런 경우가 있나.


이틀 후 남편이 다시 어머니 방문. 귀가 때 어머니가 날 위해 사셨다는 가방을 들고 왔다. (일단 접수. 물건에는 죄가 없다. 나중에 우리 언니에게도 똑같은 가방을 사 주심.) 다음날 아침 어머니로부터 왓츠앱 도착. 아이와 찍은 사진도 함께. 어른이 정도로 나오시면 숙이고 들어가는 게 다. 왓츠앱을 보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선물 잘 받았습니다. 남편에게는 또 다른 계획도 있었다. 어머니가 머무시는 마지막 주말에 그곳으로 여행을 가잔다. 어머니 호텔 근처 숙소도 예약했다며. 처음에는 싫다 했다가 다음날은 좋다로 돌아섰다. 성질을 부리다 멋진 호수를 못 보면 나만 손해. 어머니와도 화해하고. 화해가 별건가. 아무 일 없었던 듯 반갑게 인사드리고, 맛있는 것 사주시면 맛있게 먹고!



우리가 머문 사흘 내내 흐린 날씨에도 아름다웠던 호수 아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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