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시어머니에게 용돈을 받았다

록다운은 진행 중

by 뮌헨의 마리


현관 밖에서 바바라와 나에게 용돈을 쥐어 주시며 목소리를 낮춰하시는 말씀. 먼 길 오가느라 고맙다, 얘들아. 계속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라시는 바람도 손 안 가득 전해졌다.


시어머니댁 골목길의 붉은 단풍잎들.



독일 시어머니에게 용돈을 받았다.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자주 받는다. 어떨 땐 20유로. 어떨 땐 50유로. 이번처럼 100유로는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나 받는 금액이다. '선물보다 현금'은 한국식인 줄 알았는데 어머니가 연로해지시고 시아버지가 편찮으시면서 자연스럽게 변했다. 나는 이 방식이 꽤 마음에 든다. 독일에서는 부모님께 봉투를 드릴 일이 없으니 주로 받는 게 일이다. 어머니를 보면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자연의 이치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든다. 어머니의 팔 안쪽에서 혜택을 누리는 한국 며느리는 . 친딸 바바라와 어머니의 손녀인 우리 아이까지 쓰리 세트로. 이번 주말에도 어머니를 뵈러 갔다가 용돈을 받았다. 죄송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용돈은 어머니의 사랑이고 마음이니까.


어머니를 찾아뵌 건 11월부터 시작될 록다운을 코 앞에 둔 주말이었다. 가을의 록다운은 지난봄 외출 금지령과는 달랐다. 록다운 중에도 외출은 자유롭기 때문이었다.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 시행되는 저녁 통금은 독일에는 없었다. 호텔 투숙은 금지. 레스토랑, 카페, 바 등은 실내에만 앉을 수 없고, 테이크 아웃은 가능. 그 외 다른 가게들은 모두 문을 열었다. 가게 면적에 따라 실내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에만 제한을 두었다. 록다운 직전에 어머니를 방문한 건 혹시라도 봄처럼 조부모 방문을 삼가라는 발표가 있을까 봐서였다.


그 전 주말에도 어머니를 방문하고 왔기에 한 주는 건너뛰나 고민하던 차였다. 자기는 언제 쉬냐고 아이가 안티를 걸었기 때문이다. 11월 첫 번째 주가 가을 방학이라 아이는 한 주간 집에서 쉴 수 있는데도 말이다. 한글학교는 두 주를 쉬니까 주말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방문하면 딱 좋겠다는 건 엄마만의 생각이었다. 김나지움에 들어가자 머리가 컸는지 잘 따라오려고 다. 이번 록다운은 가을 방학과 함께 시작되었다. 방콕이 최선임에도 어머니를 방문한 건 감기로 지난 주말에 동행을 못한 바바라의 제안이었다. 바바라도, 감기가 심했던 그녀의 동료도 코로나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기에 가능했다.



바바라와 먹던 화해의 수프(위) 시어머니 댁에서의 티타임(아래)



바바라의 연락을 받은 건 지난 금요일이었다. 그날 나는 카페에서 마지막 근무를 했다. 사람 일이란 게 원래도 예측 불가능이지만 코로나라는 불청객으로 일상마저 혼돈과 혼란의 연속이다. 11월을 쉰다는 카페 결정에 마음이 뒤숭숭했다. 정각 12시에 일을 마치자 바바라가 왓츠앱을 보냈다. 너희 카페도 11월에 문 닫니? 나랑 차라도 마실래? 사실 나는 바바라에게 화가 나 있었다. 전날 새벽 2시에 집 열쇠가 없다고 우리 현관 벨을 누른 사람이 바바라였기 때문이다. 남편도 나도 깊이 잠들었다가 깜짝 놀라 잠이 깼다. 남편이 비몽사몽간에 허둥대며 바바라의 스페어 열쇠를 찾아주었다. 다 다시 잠드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음날이 록다운 전 마지막 근무였는데.


전날 밤 나는 바바라를 만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싫은 소리가 나올까 봐. 바바라는 친구 집에서 밤늦게 놀다가 귀가하던 중에 아침 출근 때 집 열쇠를 안 들고 나왔다는 걸 깨달았단다. 독일은 현관문에 도어록이 없다. 어디나 열쇠다. 열쇠 수리공을 부를 수도 없다. 무시무시하게 비싸다. 금요일도 아니고 목요일 밤에 친구 집에는 왜 놀러 갔는지. 열쇠가 없음 조용히 전화라도 할 일이지 사람 놀라게 초인종을 마구 누르다니. 평소라면 금요일마다 내가 먼저 연락해서 점심 먹자 했을 텐데 그러지 않은 이유였다. 다행히 먼저 사과부터 하고 차를 마시자 해서 화가 반은 풀렸다.


그날 점심은 바바라가 샀다. 미안한 얼굴로 나타난 그녀에게 오늘 수프는 니가 사, 했더니 응, 원래도 내가 살 차례야, 했다. 그 말에 남은 화가 다 풀렸다. 얼굴을 보고 마음을 풀지 않기도 어렵다. 진짜, 또 그럴 거야? 아니 아니, 다시는 안 그럴게, 정말 미안해! 그리고 화기애애하게 화해의 수프를 먹었다. 우리가 즐겨 가는 카페에서 늘 먹는 수프였다. 언제 먹어도 맛있지만 얻어 먹는 수프 맛이 더 좋았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집에 오니 남편의 눈 밑에 다크 서클이 짙었다. 아침에는 제대로 묻지도 못하고 출근을 했는데 나보다 더 잠을 설쳤다는 말에 당장 바바라에게 왓츠앱을 보냈다. 클레멘스는 한숨도 못 잤대, 저녁에 피자 사들고 와!!! 두 판이면 되냐고 묻더니 결국 세 판을 사들고 왔다. 그날 저녁은 그렇게 해결되었다.



10.9일의 골목길과 어머니의 정원(위) 10. 24일의 골목길과 정원(아래)



어머니는 바바라를 잘 아신다. 누군들 자기 딸을 모르랴. 그날 저녁 바바라가 사 온 피자를 먹고 어머니에게 냉큼 전화를 했다. 카타리나! 글쎄, 어제 바바라가 말이에요... 남편과 아이가 더 목소리를 높여서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바바라의 자신 없는 변명이 사이를 메웠다. 어머니는 소리 높여 웃으시며 즐거움을 표현했다. 내일모레면 육십을 바라보는 싱글 딸이 독일로 돌아온 남동생네와 잘 지낸다는 말이 어머니께는 가장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가족들이 아는 바바라의 절친은 딱 두 명. 어머니께는 우리가 그녀의 넘버 쓰리나 마찬가지였다. 주말 방문은 즉석에서 이루어졌다. 아이는 '할머니표 애플 쿠헨'을 주문했다. 할머니의 쿨한 콜로 전화 마무리.


요즘은 어머니를 방문해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하루 종일 휠체어에 앉아계시는 시아버지가 부쩍 피곤해 하셔서다. 오후 세 시쯤 도착해서 쿠헨과 커피로 티타임을 하고 저녁 6시쯤 출발한다. 한달에 한번쯤 남편이 동행할 때만 저녁을 먹고 온다. 지난번 남편과 아이는 어머니께 비엔나 슈니츨, 돈가스를 주문했다. 나는 돈가스를 좋아하지 않지만 어머니 돈가스는 꼭 한 조각을 먹는다. 어머니의 음식은 정성이다. 동서양이 따로 없다. 이런 음식을 나는 얼마나 더 먹게 될까. 이번에는 저녁은 먹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다. 그것이 내가 어머니께 드릴 수 있는 최대치의 배려였다. 어머니는 바바라와 아이가 사이가 좋은 것도 언제나 눈여겨 보셨다.


짧은 방문이라도 자주 찾아뵙는 게 최선이라는 걸 갈 때마다 느낀다. 시아버지 오토는 우리와의 만남에 얼굴색이 환해지셨다가도 작별 인사를 드릴 때면 슬픈 기색이 한가득이다. 누가 보면 영원한 이별이라도 고하는 사이 같다. 구십이 넘은 분의 감정은 남다른가 보다. 휠체어에 앉아계신 아버지를 두고 어머니는 현관 밖 포치 쪽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바바라와 나에게 차례로 용돈을 쥐어 주시며 목소리를 낮춰하시는 말씀. 먼 길 오가느라 고맙다, 얘들아. 계속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라시는 바람이 손안에 가득 전해져왔다. 아버지의 마음을 배려하는 어머니의 마음도 짐작이 갔다. 오지 않는 오토의 친딸에게 용돈을 주실 방법을 어머니인들 아시겠는가. 캄캄해진 늦가을 저녁이었다. 골목길에 울려 퍼지는 고모와 아이의 장난치는 소리가 현관문을 닫는 어머니의 귀에도 가닿았을 것이다.



11월 첫날의 골목길 풍경과 어머니댁에 핀 장미(위) 다정한 고모와 조카(아래)



P.S. 록다운에도 독일의 확진자 수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10/31 (19,000명)

11/1 (14,000명)

11/2 (12,000명)

11/3 (15,000명)

11/4 (17,0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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