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누이 바바라도

by 뮌헨의 마리


어떤 이야기는 불편하다. 수많은 진실이 그러하듯. 그러나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건 아니다. 속에 담아두는 것보다 글로 푸는 게 정신 건강에 낫겠다고 생각한 시월의 마지막 날.


시월에 다시 피어난 카타리나 어머니 정원의 장미.



항암이 끝났다고, 다시 항암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톡을 보내자마자 전화를 걸어 울어준 사람이 있다. E가 그랬다. 자기도 아프면서, 나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는지 모른다며, 이제야 한시름 놓았다는 듯 참았던 울음을 쏟았다. 내 이명 얘기를 듣고는 도리도리와 몸통 돌리기 동작도 알려주었다. 자기도 청력이 크게 나빠졌다가 이비인후과에서 처방한 약과 그 동작들로 많이 좋아졌다며. Y언니도 그랬다. 너무 기쁜 나머지 조카들에게 얼마나 통 크게 쏘았는지 이번 달은 가계가 휘청거리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 아니, 쏘아도 당사자인 내가 쏘아야지, 왜 자기가 쏘는가 말이다. 언니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올봄에 한국에서 예정에도 없던 재수술을 받고 병원 복도를 걸을 때 나를 위해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하루에 10킬로를 걸어주던 사람. 어떤 일이 있어도 철통 같은 지지를 보내시는 그리운 샘과 함께 언니는 이 가을에도 걷고 또 걸을 게 틀림없다.


내가 암이라는 말을 듣고 내 앞에서는 못 울고 우리 언니에게 전화해서 펑펑 울었다던 J언니도 있다. 항암 때는 짧게 민 내 머리가 예쁘다고 자꾸자꾸 말해주던 사람. 내 머리가 다 빠졌어도 똑같이 말해줬을 사람. 항암 끝난 기념으로 선물을 보내고 싶다고 했는데 뭐가 좋을지 생각이 안 나서 아직까지 대답을 미루고 있다. 그뿐인가. 언니는 우리 언니가 독일에 있을 때 형부 병원에도 같이 가주었다. 영어도 잘하고 운전도 잘하는 조카까지 불러서. 얘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그런 일은 한국에서나 있는 일. 한국 사람들이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또 있다. 우리 자매에게 친언니나 다름없는 선희언니. 매주 항암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한국에서 전화를 걸어주던 언니. 내 목소리를 들어야 안심이 된다고 다섯 달 동안 한 주도 빠짐없이. 날 위해 더 해 줄 게 없어서 안타깝다고 듣는 내가 안쓰러울 정도로 속을 태우던. 쓰자니 끝이 없다. 친구들과 가족들과 지인들. 한 사람 한 사람, 한 분 한 분. 그 고마움을 어떻게 말과 글로 옮기랴.



2021. 10. 24. 어머니의 정원. 10월에 저런 장미를 볼 줄이야.



그런데 이상하게도 카타리나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시누이 바바라도. 항암 끝나고 미리 결과까지 알려드리고 찾아뵜건만. 어머니를 방문하고 돌아온 지 1주일. 아무리 생각해도 짧은 내 머리로는 영문을 모르겠다. 바바라는 내가 항암을 끝내고 검사 결과를 받은 다음날에 휴가를 갔다. 휴가를 갔다는 말은 남편을 통해 나중에 들었다. 나한테는 항암 중인 줄 알고 미안해서 말을 못 했나? 그럴 리가. 자기 돈 주고 자기가 가는 여행인데. 1주일 후 돌아오던 날 왓츠앱을 받았다. 휴가지에서 찍은 사진 몇 장과 함께. 그날 저녁에는 묻지도 않고 우리 집에 들렀다. 돌아갈 때까지 항암이나 검사 결과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자기 여행에 대해서만 말하다 갔다. 관심이 없거나 순수하게 몰랐거나 둘 중 하나 같다. 아는데 모른 척할 정도로 영악하진 않기에. 어느 쪽이라도 상관은 없는데 기분은 별로였다. 카타리나 어머니를 같이 방문할 때 외에는 따로 안 만나고 싶을 만큼. 그리고 그날이 왔다.


항암 전에도 항암을 할 때도 2주마다 남편의 친어머니 카타리나를 방문했다. (독일에서는 시어머니도 이름으로 부른다. '어머니'라는 호칭은 쓰지 않는다. 우리는 아이에게 맞춰서 할머니라는 뜻의 '오마 Oma'로 통일했다.) 어머니가 사시는 슈탄베르크가 뮌헨에서 차로 30분밖에 걸리지 않고, 시아버지 오토가 기력이 쇠하셔서 어머니가 혼자 돌보시느라 힘드실 거라는 생각에. 누가 가라고 등 떠민 건 아니다. 어머니가 오라고 하신 것도 아니고. 순전히 내 오지랖이 내린 결정이었다. 바바라 휴가 때문에 그 주만 평소보다 한 주가 늦어졌다. 3주 만에 온다고 불평하실 때는 그럴 수도 있지 싶었다. 얼마나 기다리셨으면 그러시겠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시아버지 오토의 딸 미하엘라가 5주째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는 말씀에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그렇다면 2주든 3주든 꼬박꼬박 찾아오는 우리는 고마운 거 아닌가. 항암 도 걱정하실까 봐 줄기차게 왔던 나는 더더욱. 20년 간 내가 알던 어머니는 그런 분이셔야 맞는데.



그날 어머니는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주문하셨다. 커피와 함께 나온 후식은 감.



항암 결과가 나오고 두 분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릴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괜찮았다. 남편의 새어머니 힐더가더는 알츠하이머 증세로 어머니를 방문했을 때 우리가 전날 전화로 나눈 대화를 기억하지 못하셨다. 약간의 우울증 기미도 엿보였다. 우리가 어머니댁을 다녀온 이후에도 같은 증세가 반복되었다. 1주일 후에 있을 아이의 라틴어 시험에 대해 말씀을 드렸는데 사흘 내내 같은 질문을 하셨다. 라틴어 시험 잘 봤냐고. 그때마다 아니라고 말씀드렸다. 그후에는 기억하시는 걸로 보아 증세가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는 것 같았다. 요즘 어머니는 세금 관련 서류 정리를 하는 중이신데 매일 저녁 통화 때마다 엄두가 안 난다고 하소연을 하신다. 독일은 지금이 세금 정산을 위해 서류를 챙길 때다. 지금까지 잘해 오신 일을 이리도 힘들어하시는 것 자체가 알츠하이머 진행을 알리는 증거다. 한번은 우리에게 너무 징징댄 거 같다고 미안해하셔서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누군가와는 나눠야 할 스트레스라면 우리에게 할 말 못 할 말 다 하시라고. 서로 그러자고. 통화가 끝나고 남편에게 말했다. 어머니의 세금 서류 정리를 남편이 도와드리는 게 낫겠다고. 조만간 어머니를 방문해서 알츠하이머 검사를 같이 가 드리고 싶은데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그러나 솔직하게 여쭤볼 생각이다.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남편의 친어머니 카타리나처럼 기억력이 좋으신 분을 나는 살면서 딱 한 사람 보았다. 우리 고모. 나와 언니가 어릴 때 있었던 일부터 옛날 일을 눈앞에 보이는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시는 고모를 나는 늘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시대를 잘 만나 여자도 대학에서 공부하는 요즘 같은 세상에 태어나셨더라면,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가지셨더라면 뭐라도 큰 일을 하셨을 분인데. 그리고 우리 카타리나 어머니가 있다. 수십 년 동안 매일 일기를 쓰시는 분. 그러나 지금까지 일기장을 펼칠 일은 없었다. 무슨 얘기만 나오면 날짜와 연도와 그날의 날씨까지 줄줄 읊으시는 분. 나? 나는 시간이 지나면 유럽의 어느 유명한 도시에 갔는지 안 갔는지조차 확실치 않은 기억력의 소유자다. 카타리나 어머니? 앞서 말했듯이 수십 년이 지난 일을 모조리 기억하신다. 심지어 시아버지 오토가 어릴 적 부모님과 여행한 것까지. 언제 어디로 몇 살 때 번을 갔는지까지. 이 정도면 인간의 기억력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이런 분이 전화로 항암 결과까지 알려 드렸는데 한 말씀도 없으시다? 믿기 어려웠다. 1주일이 지난 지금도.



어머니 정원의 연못은 그럼에도 아름다웠다.



항암을 한 게 자랑이라는 말이 아니다. 무슨 대단한 일을 했노라고 요란한 축하를 바란 것도 아니다. 다만 가족 아닌가. 시어머니도 부모님 아닌가. 따뜻한 한마디를 기대했을 뿐이다. 평소라면 어머니가 양 손으로 내 뺨을 감싼 채 어머니 이마를 내 이마에 대고 눈물을 글썽이며 하셨을 그 말. 수고했다. 걱정 많았는데 잘 끝나서 다행이다.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앞으로도 잘 해내길 바란다. 그 말이 왜 그렇게 어려우셨을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잊으실 분이 아니라서 더더욱 어머니의 행동이 미스터리다. 마지막까지 한 말씀도 없길래 날이 좋아 어머니와 다 같이 산책이라도 할까 하던 마음도 접고 일찍 돌아왔다. 헤어질 때는 볼키스도 없이 현관문 밖에서 남편과 아이와 바바라와 다정하게 작별을 나누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낮은 대문 바깥에서 손만 흔들고 돌아섰다. 며칠 동안 감정의 쓰나미로 피해를 본 건 아이와 남편이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내가 진실로 지켜야 하는 건 내 가족인데. 독일식 가족에는 남편과 아이 뿐 조부모는 포함되지 않는다.


시누이와 시어머니는 왜 그랬을까. 지난여름 카타리나 어머니가 어머니 휴가지에 나와 우리 언니만 쏙 빼고 초대를 안 하셔서 내가 세게 나간 일로 아직도 언짢으신 걸까. 시어머니로서 자존심이 상하셨나? 내가 당신보다 새어머니 힐더가드를 더 챙긴다는 생각에 여전히 불쾌하신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스토리가 바바라와 어머니 사이에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무심했을 뿐인데 매사에 예민한 내가 혼자 곡해하고 소설을 쓰고 있나? 사흘 만에 마음을 정리하고 얻은 결론은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것. 다음 검사까지 내게 남은 시간은 석 달. 가슴뼈 전이는 그대로지만, 다시는 새로운 암과 만나고 싶지 않다. 놀라운 건 몸이 그대로 느끼더라는 것. 5일 만에 가슴뼈 위로 미세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유 불문 속수무책으로 흩어진 마음을 수습했다. 어머니를 미워하진 않는다. 어머니께도 사정이 있으셨겠지. 다만 어머니 방문은 당분간 남편과 아이에게 맡기기로 했다. 독일 최대의 명절 크리스마스 때는 찾아뵈야지. 무슨 철천지 원수도 아니고. 고백하건대, 나 혼자 서운해서 그 난리를 쳤다. 타인이 내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법이 어디 있다고. 내가 마음대로 만들어놓은 이미지를 어머니라고 우긴 대가는 다. 사방에서 무자비하게 날아오던 파편에 몹시 아팠다는 것도 인정. 타인을 왜곡 없이 바라보는 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폭력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상대에게도 자신에게도. 그래서 멈추려 한다. 나는 누구도 파괴하고 싶지 않기에.



2021. 10. 2. 어머니를 방문했을 때도 만발하던 장미들. 그날은 티타임에 방문했고 어머니가 직접 구우신 애플 쿠헨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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