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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에서 자전거를 탔다

이자르강 자전거길

by 뮌헨의 마리


요즘 자전거를 타고 있다.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서. 나름 긴 겨울 준비인 셈이다. 지난겨울엔 매일 산책을 했다. 올 겨울엔 자전거. 내년 겨울은 모르겠고!


뮌헨 이자르 강변 자전거 길(위). 뮌헨 동물원 앞까지 동행한 내 자전거(아래).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지 1주일이 되었다. 뮌헨의 이자르 강변 자전거 전용길에서. 자전거를 타겠다고 마음먹은 건 순전히 날씨 탓이었다. 11월이 그렇다. 며칠 동안 안개가 끼고 날이 흐리자 기운도 의욕도 바닥을 쳤다. 그러면 안 되지. 변화가 필요했다. 산책을 시작한 지도 1년이 되었다. 최근에는 혼자서 잘하던 산책이 지루해졌다. 얼마 전 시작한 실내 운동 모임도 코로나 때문에 차츰 비대면으로 바뀌었다. 숲에서 하는 노르딕 워킹만 빼고. 독일은 얼마 전까지 3만 명이던 확진자 수가 이번 주에 들어서자 매일 5만넘어섰다. 이런 추세라면 매주 두 배씩 늘어날 수도 있겠다며 남편의 걱정 역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중이다. 이 무시무시한 숫자는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항암 후 피트니스를 시작한 지 한 달. 좋긴 한데, 주 1회는 부족했다. 주 2회를 하고 싶다 했더니 안 된단다. 특이한 피트니스 센터다. 왜 안 된다는 거지? 고객이 돈 내고 하고 싶다는데. 운동 시간도 고작 20분이면서. 근육이 다시 회복하는데 1주일이 필요하단다. 이게 무슨 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한국에서 그 따위 말을 했다면 회원 수 꽤나 줄었겠다. 운동보다는 건강식품이나 다이어트 보조제 판매에 주력하는 피트니스 체인점이 아닌가 의구심마저 들었지만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나는 처음부터 다이어트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오로지 근력을 키우고 싶다고. 쓸데없이 다이어트한다고 기력이 떨어지면 나만 손해. 항암을 안 한다고 해서 안의 암이 사라졌다는 은 아니다. 전이된 암도 그대로라 체력을 키우는 게 급선무. 피트니스 센터가 주 1회 이상 안 받아준다면 스스로 하는 수밖에.



자전거 출발지. 나는 화살표와 반대 방향으로 달린다.



모든 일에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피트니스 센터의 거절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믿을 건 나 자신 뿐이라는 자각이 그랬다. 혼자 하기 힘들어서 운동 동아리와 피트니스 센터에 기대 보려던 심사는 무너졌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쁘지만은 않았다. 오래전부터 자전거를 타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던 차였다. 실천이 어려웠을 뿐. 왼쪽 다리 림프 부종이 사라지지 않아서 림프 마사지를 받을 때마다 물리 치료사들이 공통적으로 권한 동작은 누워서 자전거 타기. 동작만 해도 좋다는데 실제로 자전거를 타면 당연히 더 좋지 않겠는가! 문제는 시작이 어렵다는 것. 뮌헨에 와서 남편과 아이와 셋이 자전거를 타러 적인 있다. 결과는 말해 무엇. 둘이서 총알 같이 내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몇 번의 경험 이후 집을 뛰쳐나간 내 의욕도 귀가하지 않았다.


쓰레기를 들고 내려갈 때마다 우리 건물 뒤뜰에 세워둔 내 자전거엔 눈비와 낙엽, 먼지와 녹이 나란히 쌓여만 갔다. 혼자서 끌고 나갈 엄두가 안 나서 간혹 아이에게 같이 타러 나가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볼 때마다 단칼에 정중한 거절이 돌아왔다. 싫다고. 이해했다. 11월에 누가 나가고 싶겠나. 억지로라도 운동을 해야 하는 몸만 아니라면 나도 싫은데. 침대에 따끈한 전기 매트 켜고 들어가면 딱 좋을 계절 아닌가. 그건 그렇고, 뮌헨에서는 어디서 자전거를 탈까? 답은 어디서나,다. 대부분의 도로에는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다. 쌩쌩 달리는 차들 못지않게 스피드 있게 달리는 자전거들을 보면 얼마나 경이로운지. 그 와중에 한 팔 번쩍 들어 좌회전과 우회전 수신호까지 척척. 헬맷은 꼭 쓴다. 자전거 앞뒤 전등도 필수. 어두운 시간뿐 아니라 흐린 날도 반드시 라이트를 켜고 달린다. 그러면 욕 먹는다.



나처럼 초보에겐 최고의 자전거 도로. 다른 자전거가 없는 게 아니고, 찍을 틈이 없다. 어찌나 빨리들 달려가시는지.



에라, 모르겠다! 자전거를 끌고 무조건 나간 건 이번 주부터.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 지 오래인 조카가 자전거 타기쯤 이젠 문제도 아니라는 자신감 충만한 발언을 했는데, 내 귀엔 그게 그렇게 멋지게 들였다. 조카들에게 배울 건 이런 도전의식. 두려움 없는. 그사이 운동과 다이어트를 열심히 해서 조카의 몸매도 날렵해졌다. 오호라, 연습만 한 스승이 없구나. 내 비록 지금은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한 번 해보리라. 날은 흐렸다. 바람도 불었다. 오래 안 타서 사뭇 불안한 감도 있었다. 그럼에도 수영과 자전거는 한번 배워두면 잊지 않는다는 미덕이 있다. 매일 가던 이자르강 산책로 아래 자전거 전용길이 내가 찜해둔 목적지였다. 11월이 되자 산책로에는 낙엽만이 쌓이고, 사람들의 발길은 뜸해졌다. 평일 오전이라 자전거 길 역시 한산할 것이라는 계산에 용기까지 장착한 후 드디어 출발!


첫날과 이튿날엔 다리 2개가 목표였다. 힘들었다. 평탄해 보이던 길에도 보이지 않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는 게 함정이었다. 숨도 가쁘고 다리도 아팠다. 내가 이래서 자전거를 안 타려고 했다. 그래도 작심삼일은 아니지. 사흘과 나흘 째는 다리 세 개를 지났다. 5일과 6일 째는 드디어 네 번째 다리, 목표로 삼던 뮌헨 동물원까지 진출했다. 나는 내가 잘한 줄 알았다. 이렇게 빨리 다리에 근력이 생겼다니! 물론 아니었다. 타이어에 바람이 없어서 힘든 거 같다 했더니, 그새 남편이 바람을 넣어 놓으셨다고. 남편이 물었다. 타보시고도 몰랐냐고.(그래, 몰랐다고!) 현재 스코어는 동물원까지 왕복 40분. 앞으로 스피드를 올려 왕복 30분이 목표다. 동물원 앞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파워 워킹 1시간을 더하는 것이 다음 목표. 최종 목표는 자전거 왕복 1시간. 자전거를 타 본 사람은 알겠지만, 자전거는 아이의 라틴어만큼, 우리의 인생만큼 정직한 운동이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아야 한다는. 멈추는 순간 넘어지니까. 물론 넘어지며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실수와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처럼. 얼마나 빠르고 느리냐는 그다음 문제. 그래서 나간다. 주말에도. 30분이 없어서 자전거를 못 탈 만큼 바쁜 인생은 아니라서.



인생은 자전거 길? 구비구비 아름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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