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교로 가는 먼 길

카프카 기행 4

by 뮌헨의 마리
내가 반한 건 그 거리,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던 그 거리.

프라하의 오후 7시는 대낮 같았다. 독일의 일몰 시간은 저녁 9시. 프라하도 다르지 않아 보였다. 지도를 보며 대로를 중심으로 시내 방향 쪽으로 걸었다. 숙소가 있는 하벨 시장 부근에서 베들레헴 성당을 향해 왼쪽으로 꺾어 유일스카 Jilská 골목으로 접어들 때였다.
골목 안 가게들 사이로 직사각형의 손바닥만 한 광장이 나타났다. 아이스크림 가게. 레스토랑. 빛바랜 앤티크 숍. 기념품 가게들. 앞쪽엔 우람한 성당 벽까지. 강렬했던 햇살마저 허물을 벗듯 날카로움을 내려놓던 시간.
이쪽과 저쪽 끝에 놓인 작은 벤치 두 개. 그 사이에 거리를 두고 서 있던 나무 두 그루. 마치 아내와 남편처럼 혹은 연인처럼. 내가 반한 건 그 거리. 가깝지도 멀지도 않던 그 거리.


내가 만나러 온 건 카프카인가 나무들인가. 나무로 환생한 카프카? 나를 매혹시키는 나무들의 향연은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나는 예의를 갖추어 그들의 환대에 도취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다. 자석에라도 끌린 듯 오른쪽 벤치에 앉았다. 벤치마저 예뻐 보였다.

나무들의 생김새는 달랐다. 무슨 나무인지 이름은 몰랐다. 궁금하지 않았다. 무슨 상관이랴. 내 마음은 이미 기울었는데. 숭숭 뚫린 삼각형 가지 사이로 하늘이 드나들던 직선의 나무 A. 몸집은 빈약했어도 단단해 보이던 A와는 정반대로 여린 몸매에 가지에 낭창하도록 풍성한 잎들 달고 서 있던 곡선의 나무 B.


그들이 거느린 완벽한 조화. 팔을 뻗듯 가지를 뻗쳐도 서로의 잎새 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 그들이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뿌리? 등불의 불빛이 새어 나가듯 숨길 수 없이 배어나던 나무들의 당당함. 그 여유로움. 그들이 부럽지는 않았다. 부러우면 지는 거래서.
그래서 쓰리라. 나는 쓰리라. 저 나무들을. 카프카를. 카프카의 나무들을. 나무가 된 카프카를. 벤치에 자석처럼 붙어 앉아 <변신> 2장을 읽은 후에도 좀처럼 일어서지 못했다. 카를교를 잊게 만든 나무들의 발칙함. 처음으로 혼자 온 여행이 후회되지 않았다.


keyword
이전 03화프라하엔 숙소가 차고 넘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