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 카를교를 건너는 법

카프카 기행 5

by 뮌헨의 마리
밤에 카를교를 혼자 걷는 일은 추천하지 않겠다. 뼛속까지 사무치는 외로움을 경험하길
원하지 않는다면.


석양빛은 달달한 오렌지빛으로 변한 지 오래. 카를교 입구 석조 건축물과 만남의 장소로 바뀐 광장의 성당 지붕과 블타바 Vltava 강물까지 붉게 물들인 후에야 저녁 노을은 사람들 얼굴 위로 내려앉았다. 이른바 홍조의 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소에 도착한 것이다. 그것도 제 시간에. 그것도 혼자서.


내 외로움에도 한번쯤 발언할 기회를 주겠다. 카를교가 한없이 멀어 보인다. 북적이는 인파를 헤치고 나갈 기운이 안 난다. 여자의 긴 머리나 치맛자락 나부끼는 허리께를 한 손 혹은 두 손으로 감싸 안고 다리 난간에 기대 선 연인들. 뿐만 아니라 로맨틱과 거리가 먼 시끌벅적 단체 관광객들까지 자꾸 돌아보는 나. 당연하지 않나. 그런 풍경을 나눌 수 없다는 것. 그런 시간을 공유할 사람이 지금, 당장, 내 곁에 없다는 것. 때로 외로움이란 그토록 구체적인 실체다.


다리 끝 언덕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프라하 성. 성을 배경으로 돌아서서 팔을 치켜들거나 보조 스틱을 허공에 올린 채 둘이서 셋이서 때로는 다 같이 찍고 찍고 또 찍는 사람들. 그 속에서 홀로 셀카를 찍어 본들 똑같은 결론으로 귀결된다. 찍고 확인하고 지우고, 찍고 지우고 또 지우고. 원하는 표정이 담길 리가 있나. 결국 풍경만 남는다.


속을 헤집어 놓는 것이 그뿐이라면 차라리 다행. 단 하나 희망을 말하라면 다리 끝에 다다르기도 전에, 숙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서운했던 사람들이 거의 용서된다는 것. 가까운 사람들의 소중함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는 것. 그러나 불운은 다리 위에 머무는 한 계속 된다. 삶이 계속 되듯이. 5미터나 10미터 간격을 두고 약속이나 한 듯 포진한 다리 위의 악사들. 그들이 사시사철 공들인 음악의 소절과 소절 사이, 음악과 나 사이의 틈새를 비집고 종횡무진 들고 나던 바람의 횡포는 막을 길이 만무했다.


아, 나는 항복했다. 길지도 않은 카를교의 피니스 라인을 밟아보기도 전에. 나는 졌노라, 카를교여. 네가 이겼노라, 노을이여. 나는 다리 아래로 숨어 들어가 밤늦도록 캄파 섬을 걸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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