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기행 6
카프카 박물관의 나무 아래서
마음을 쉬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기분이 찜찜했다. 카프카 박물관을 찾아가던 다리 위에서부터. 아침을 든든히 먹고 숙소를 나설 때까지만 해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평범한 하루였건만.
호텔 식당은 오전 8시에 문을 열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출발 준비를 마치고 밥 먹을 시간만 기다렸다. 식당에는 나 혼자였다. 기분이 이상했다. 큰 레스토랑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혼자 밥을 먹기에 적당한 곳이란 뜻은 아니니까.
삶은 계란을 두 개나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작은 크로와상을 세 개째 들고 올 무렵에야 위층 숙소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반갑던지. 독일 할아버지였다.
"굿모닝!"
먼저 인사를 건넨 건 나였다. 접시까지 손에 들고서. 다행이야, 혼자는 아니었어. 무거운 기분을 털어버리고 숙소를 나서기 전에 다시 한번 그에게 인사를 던졌다.
"좋은 하루 되시길요!"
다리 위에는 오가는 사람이 드물었다. 아무리 카를교가 아니라 해도 그렇지. 그날 아침 나는 카프카 박물관과 가까운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어젯밤 내가 보았던 왼쪽의 카를교는 말끔하게 몸단장을 끝낸 후였다.
오전에 최대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카프카 박물관과 프라하 성. 오후의 바츨라프 광장과 프라하 묘지까지. 오전 9시의 태양은 벌써 뜨거웠다. 백팩을 메고, 작은 가방을 들고, 한 손에 지도를 들고 부지런히 걷고 있을 때였다.
나와 같은 관광객 차림의 한 남자가 지도를 보며 길을 물었다. 동양인인 나에게 길을? 잠깐 이상하긴 했다. 그러나 인적이 없고 급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결론만 말하자. 벌건 대낮에 두 눈 뜨고 사기를 당했다.
남자는 환전소를 찾고 있었다. 곧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체코 화폐가 너무 많이 남았다고. 파리에서 왔는데 영어가 짧아 미안하다며 '쏘리'를 연발했다. 분명 사기꾼의 냄새는 어디에도 없었다.
원래 그렇다. 사기를 당하려면 당할 사람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법. 나에게는 액수가 제법 되는 지폐가 있었다. 입장료를 내고, 밥이나 차를 마시고, 작은 기념품을 사거나 급할 때 택시라도 타려면 미리 소액권으로 바꾸어 놓는 게 낫지 않을까. 숙소를 나서며 든 생각이었다.
남자가 물었다. 자기가 가진 소액권을 한 장짜리로 바꿔줄 수 없냐고. 이상해서 물어보기는 했다. 너한테 그게 무슨 차이냐. 자신의 지갑을 보여주며 소액짜리가 많아도 너무 많다고.
그가 바꿔준 것이 체코 화폐보다 환율이 낮은 어느 나라의 돈이라는 것은 박물관의 기념품 가게에서 알았다. 설마 가짜 돈은 아니겠지, 촉감은 진짜 같았는데. 돌아서며 내가 걱정한 것은 그 정도. 가짜인가 아닌가만 생각하다가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금액을 밝히진 않겠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지만, 나 대신 속상할 이들도 있을 지 모르니까.
카프카 박물관에는 마당 한가운데서 볼일을 보는 두 남자 조형물을 보러 오는 단체 관광객들로 내내 북적거렸다. 그들 모두가 박물관 내부를 관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카프카 박물관은 좁고 어둡다고. 그래서 단체 관람이 쉽지 않다고 말한 건 나이 지긋한 단체를 이끌고 온 독일 가이드였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어둡다 못해 음울하기까지 했던 박물관 내부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온 내가 그늘진 마당 한 편의 담장에 앉아 <변신> 3장을 펼치던 참이었다. 그녀의 말에 장단을 맞추듯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던 내가 번쩍 머리를 든 것은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다음과 같은 한 마디 때문이었다.
"이 나무는 '린덴바움'입니다."
그때서야 나는 그녀의 단체 손님들과 함께 내 뒤에 엄중하게 서 있던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았다. 나무가 거느린 그늘은 생각보다 반경이 넓었다. 비로소 나무의 이름과 함께 번개처럼 깨닫게 된 사실이 있었다. 나무가 마련해 준 묵직하고 서늘한 그늘 밑에서 꼼짝도 않고 마당을 오가는 사람들만 바라본 지 벌써 두 시간째라는 것.
나이가 몇인가. 외국에서 안 살아본 것도 아니고. 평소에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하면서 그토록 형편없는 사기꾼에게 보기 좋게 넘어가다니.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만약 지폐 한 장으로 지불되지 않는 일이었다면 어떡할 뻔했나.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하고 진땀이 흘렀다. 전의는 상실되었고 일정은 포기되었다. 프라하 기행은 참패였다.
그 자리에 앉기 전 내 마음속에서 각축을 벌이던 풍경이 그랬다는 말이다. 그런데 보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음은 어느 새 멀쩡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고작 2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말없이 그늘에 앉아 마음을 쉬었을 뿐인데.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드는 게 아닌가. 그 나라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환전까지 마친 기분? 똑같은 화살만 맞지 않으면 최악은 아닌 것이다. 그날 내가 나무 아래서 배운 한 수.
그 나무의 이름은 보리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