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할머니의 정원은 아름다운 장미

나의 시어머니 카타리나

by 뮌헨의 마리


시어머니가 사랑하는 장미는
아메리칸 뷰티



경이로운 것은 시어머니의 부엌과 욕실만이 아니다. 나의 시어머니 카타리나의 정원 얘기다. 어머니의 마법의 손은 정원에서도 쉬는 법이 없다. 집보다 몇 배로 큰 정원을 혼자 관리하시는데 올해는 어머니의 장미가 한 발 늦게 피었다. 지난 번 방문 때만 해도 봉오리조차 올라오지 않았는데.
어머니의 자랑인 아메리칸 뷰티는 해마다 기대를 저버리는 법이 없다. 언제 봐도 우아하고 아름답다. 젊은 날 어머니의 모습 같단다. 양아버지가 늘 하시는 말씀이다. 재혼하실 때 어머니 나이가 마흔이셨는데도. 해마다 여름이면 탄성 없이는 어머니의 장미를 향해 셔트를 누를 수가 없다.


올해는 시어머니의 생신날인 8.15에 맞춰 장미들이 피었다. 독일 바이에른 지방은 그날이 공휴일이었다. 일명 성모승천대축일. 작년에는 만 80세를 자축하시며 가족과 친구들을 호숫가의 멋진 호텔 정원으로 초대하셨다. 우리도 그때 어머니의 초대로 한국에서 왔다. 내가 놀라는 건 이런 행사 때다. 경비부터 시작해서 생신 파티 계획, 초청장 보내기, 장소 계약 등 무엇 하나 자식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이런 게 독일식이다. 독일의 며느리 역할은 너무 쉬워서 죄송할 정도. 그런데도 징징거리다니!

올해는 두 분의 다섯 자녀들만 호숫가 레스토랑으로 초대하셨다. 점심을 먹은 후 레스토랑 앞 잔디에 자리를 펴고 그 자리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한여름 호숫물이 얼마나 차갑던지. 그런데도 벌벌 떨며 따라들어간 건 나 뿐이었다. 용감한 독일 사람들. 시어머니는 새벽 6시면 호수로 가서 수영을 하신다. 뮌헨에서 남쪽으로 차로 30분 호숫가 휴양지이자 뮌헨 중앙역에서 S반으로도 갈 수 있는 이곳 슈탄베르크 Stanberg에 사신 지 30년째 즐기시는 취미다. 매년 6월부터 9월까지. 맨 몸으로 뛰어드신다고. 여기서는 놀랄 일도 아니다. 형네는 3주간 터키로 여름 휴가를 가느라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은 게 독일이다. 나는 이런 문화가 마음에 든다.

올해 초에는 시어머니와 같이 살고 계시는 양아버지의 만 90세 생신 파티도 있었다. 이것 역시 어머니가 모든 행사를 기획하셨다. 초대 인원은 40~50명 정도. 멀리서 온 손님들이 묵고 갈 수 있게 S반 역 가까운 이태리 레스토랑 겸 호텔이었다. 십년 전만 해도 이런 행사를 정원에서 직접 하셨다. 어머니는 그런 분이셨다. 며칠 동안 직접 구워내신 쿠헨 종류만 아홉 가지였다. 내가 직접 세어 봤으니 맞을 것이다. 그때 이후로 어머니는 내게 경이로움 자체다.



독일은 만 50세 생일을 크게 축하하는 분위기였다. 동갑인 형네 부부의 50세 파티는 3층 자택에서 어마어마하게 열렸다. 한국에서 여름과 겨울 두 차례씩 독일 부모님을 방문하던 우리는 가을에 또 올 수가 없어 참석하지 못했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연말에 찾아오는 누나의 50세 생일 파티 역시 독일 방문 일정과 맞지 않아 참석하지 못했다. 시끌벅적한 50세 생일 파티 이후부터는 5년 단위로 크게 한다. 5년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무슨 생일을 저리 요란하게 챙기는지 볼수록 신기하다.


동갑인 남편과 나의 만 50세 생일은 올해 봄이었다. 올해는 나의 음력 생일과 남편의 양력 생일날이 같았다. 남편을 만난 지 20년 동안 생일이 겹친 건 두 번째였다. 시부모님들은 내 음력 생일을 신기해 하셨다. 남편이 드린 팁은 간단했다. 중국 설날에서 열 네 번째. 독일에서 구정은 중국 새해로 통했다. 우리는 파티를 열지 않았다. 번거롭기도 했고, 비용도 부담이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아이 생일 파티 하나만 해도 얼마나 힘든데.


내가 좋아하는 어머니의 모습 하나. 재혼하신 후 양아버지의 딸 둘을 직접 키우셨는데 양딸들과도 허물이 없으시다. 부엌에서 간단한 간식을 준비하시던 그날도 그랬다. 양아버지의 큰 딸 미하엘라가 먼저 집으로 출발하겠다며 작별 인사차 부엌에 들렀다. 오후 5시 배가 살짝 고플 때였다. 그녀는 잘라 놓은 토마토와 수박 그리고 살라미까지 야금야금 집어먹고 갔다. 어머니는 웃기만 하셨다. 다음에는 친 딸 바바라 등장. 노래를 부르며 수박을 낼름 집어먹는다. 이번에도 어머니는 찡그리지 않으신다. 간식이 끝나자 수박이 남은 채 부엌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내가 접시를 한 손에 들고 손가락으로 집어 먹자 어머니가 하하 웃으시며 하시는 말씀. 그래, 먹을 수 있으면 좋지. 다 먹거라. 나는 이럴 때 어머니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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