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아직도 치앙마이

양희언니의 꿈

by 뮌헨의 마리


우리들의 10년 전 꿈은
어디쯤 당도해 있을까


"새로운 창조란 없다. 새로운 발견이 있을 뿐. 인생의 새로운 발견을 위하여 한번 더 화이팅!"


내 글 속의 주인공이 본인이라서 쪼매 거시기 하다며, 자기 글은 아니지만 한 카피 더하고 싶다고 치앙마이에서 언니가 추가로 전한 말이다. 짧은 문장 속에 '새로움'이란 표현이 세 번이나 나온다. 치앙마이가 언니에게 안겨 준 선물인가 보다.
언니가 떠난 지 이번 주면 한 달째. 치앙마이에서 보낸 한 달이 언니에게 준 성과는 저 단어 속에 있겠다. 언니가 어떤 새로움으로 중무장해서 돌아올 지 기대되는 월요일 아침. 언니에게 귀동냥 할 타이 요리 레시피가 자꾸만 궁금하다.


10년 전쯤 한국으로 돌아와 내 친구 영희와 양희언니와 함께 보낸 어느 봄날도 생각한다. 지금이 바로 그때 우리가 범어사 아래 간이 국숫집에서 국수를 먹고 커피를 마시며 궁금해하던 10년 후의 그날이었다. 십 년 세월이 한 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얼 했나.

아이를 낳고 키웠으니 아무 것도 안 했다고 볼 순 없겠지. 그때 큰소리쳤던 시집은 손에 없지만. 그 후로도 한동안 시를 썼지만 서울로 온 이후 더 이상 시가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 고전문학 강의를 들었고, 글쓰기 강좌를 수강했다. 그리고 독일로 왔다.


20대도 30대도 심지어 40대까지도 너무 많은 길을 기웃대며 살아왔다. 단전호흡과 요가와 서예와 손이 따라주지 않던 풍물까지. 그래도 불교 공부를 꾸준히 한 건 다행이었다. 한국어 강사 수료증와 바리스타 자격증은 귀여운 편에 속했다.

오십을 앞두자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들은 20대부터 한 우물을 판 일을 거둬들이고 수확할 때였다. 오십부터라도 닥치고 한 길을 가야지. 그것이 내게는 글쓰기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납득시킬 무언가가 필요했다. 인생 헛되이 살지는 않았다는 증명서 같은 것이.


그래서 쓴다. 딴 생각 할 시간이 없다. 자다가도 쓴다. 요행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성실함을 무기 삼아 다시 10년 후를 꿈꾼다. 시집 대신 몇 권의 책을 손에 드는 꿈. 지구가 몇 그루의 나무를 허락해 준다면 고맙겠다.


다시 언니 이야기. 언니는 에너자이저였다. 새로움에 마음을 열어두고 살았다. 새로운 곳과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고 귀를 기울이던 언니에게 새로운 세계의 문이 활짝 열리기를 바란다. 그러면 언니는 엘리스처럼 그 이상한 나라로 용감하게 뛰어들겠지. 오십 대에도 그게 가능하다는 걸 온 몸으로 증명하면서.



다음은 지난 시절 우리들의 꿈.




백구의 꿈


햇살 좋은 봄날 영희 차 타고 양희언니랑 셋이서 드라이브 가던 날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오륜대 양지바른 잔디에 쪼그리고 앉아 쑥도 한 움큼 캐고 저수지 한 바퀴 돌아 범어사 아래 모과나무집에서 잔치국수나 먹을까 들렀던 것인데 한 눈에도 귀티 나는 백구의 어린 새끼 세 마리가 우리 아기처럼 오동통 젖살 오른 얼굴로 나타나 제 어미 밥그릇으로 고개 들이미는 모습 핑크빛으로 물든 젖 늘어뜨린 채 제 새끼들 얼굴 핣아주느라 정신없는 어미 모습 바라보다 괜히 가슴 뭉클하다가


차라도 마실까 멀리는 못 가고 비닐로 얼기설기 바람 겨우 막은 국숫집 바로 옆집 이모의 아늑한 보금자리에 둘러앉아 우리 만난 지 얼마나 됐나 벌써 십 년이네 어쩌네 하다가 그럼 십 년 후에는 뭐 하고 있을까 서로의 얼굴 바라보다가 영희는 시골 내려가서 아이들에게 글짓기나 가르칠까 하고 언니는 국제적인 호텔 매니저로 바쁘게 하늘을 날고 있을 거야 그때쯤이면 벌써 시집 몇 권 낸 나는 아마 계속 시를 쓰고 있겠지


백구야, 그럼 네 꿈은 뭐니?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보내고 있는 Y언니가 보내 온 사진 한 장


p.s. 치앙마이에서 방콕으로 돌아와 쿠킹 클래스에 간 언니에게 사진을 몇 장 더 보내 달라 해서 받은 몇 장을 추가로 올려놓는다. 딤섬 레스토랑 벽 윗쪽에 걸린 초록 여자 그림에 한 눈에 반해서 언니에게 다시 주문했다. 그 그림만 크게 찍어서 보내 달라고. 언니의 초록빛 꿈을 표현한 것 같은 그림.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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