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주운 글들
때로 생각 노니
당신이라고 왜 안 외롭겠나
싱가포르에서 지낸 시간은 2년 밖에 안 된다. 그럼에도 어느 장소보다 생각나는 것은 이곳에서 시를 썼기 때문이다. 매일 하던 산책과 혼자 있는 시간들. 그리고 아이가 찾아와준 곳. 거기서 공원의 나무와 바람 그리고 바다와 노을과 만났다. 내 인생이 그렇게 충만한 적은 없었다. 내가 나 자신과 정면으로 대면했던 시간. 그때의 시들을 기억하려 한다.
바람에게도 마음이 있나
바람에게도 마음이 있나 바람에게도 영혼이 있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 머릿결을 쓸고 가는 손길을 뭐라 부르나
바람에게도 얼굴이 있나 바람에게도 손발이 있나
그렇지 않다면야 내 어깨를 어루만지는 이 위로를 뭐라 부르나
이른 가을 생이여
때로 생각 노니
당신이라고 왜 안 외롭겠나
산사의 바람결로 머리 다듬고
저녁 풍경 소리로 옷깃 여미고
새벽 목탁으로 얼굴도 매만졌건만
해탈은커녕 선정의 발자국도 보지 못할 때
텃밭에 이슬 구르는 소리
마당가 씨앗 터지는 소리
대숲에 바람 들면 철 지난 마음들
술렁거리지 않던가 한밤중에 달그림자
몹시 기울면 가슴 일렁이지는 않고
때로 생각 노니
나만 이리 외롭나
아기가 있었으면
차라도 있었으면
정남향에 앞뒤뜰 오종종 둘러 앉은
이층 집이 있었으면
...
그러고도 외로우면 어쩐다
파에야 먹는 저녁
남편과 사흘을 연달아 저녁 먹으러 간 곳은 비보 시티의 마르셰 각 나라 음식들이 한 자리에 모인 곳 일본 라면이 좋을까 스시가 좋을까 오후 내내 고민하다 그 가격이면 스페인 요리 파에야 1인분을 나눠먹을 수 있겠네
비는 내리고 스위스풍 레스토랑에 앉아 따끈한 미니 바게트를 먹으며 기다리는 시간조차 지루한 줄 모르고 혼자 먹기 많은 듯한 파에야 냄비를 가운데 놓고 풍미 좋은 버섯이랑 치킨 두 조각 새우 세 마리까지 사이좋게 나눠먹는 동안 어둠이 창가에서 두 어깨 위로 슬그머니 내려앉던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