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면 죽고 만나면 헤어지고

이태리 절 무상암

by 뮌헨의 마리


이태리 사람이라고 법명도 태리 스님.
우리와 동갑에 쌍둥이시다.


강원도에서 (2018. 8)


이태리 한국 절 무상암에 계시던 작은 스님인 태리 스님이 이번 여름 한국에 다녀가셨다. 대만의 절친 스님과 함께. 하필이면 혹성 탈출이라도 시도할 판인 이런 혹서에. 2년에 한 번씩 한국을 다녀가실 때마다 언니가 수행을 했다. 이태리 사람이라고 태리 스님이 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덤.

2년 전에는 노스님도 같이 오셨다. 나도 서울에 있을 때라 같이 모시다가 도중에 내가 독일로 시댁 방문을 가는 바람에 언제나처럼 언니가 스님 두 분을 도맡았다. 나는 두 분께 우리 집을 내드리는 걸로 아쉬움을 대신했다.


당시 스님들은 서울의 어느 도반 스님의 선원에 숙소를 정하고 계셨다. 그 암자 살림을 도맡고 있던 스님의 속가 여동생 비구니 스님이 눈치를 주신 것도 아니실 텐데 두 스님이 미안해하셨다고. 스님들을 모시러 오가던 언니가 짠했던 대목이다. 우리 집으로 옮기신 후에는 편안해하셨다고. 우리가 떠난 그 집에 지금은 언니와 형부가 들어와 살고 있다.


스님들께서 한국에 오가신 지 10년째. 언제 어디서고 달려와 스님들을 수행하던 우리 언니는 보살이 맞다. 올해엔 원리 원칙에서 한 치도 타협이 없으신 노스님은 못 오시고 우리와 동갑에 우리처럼 쌍둥이이신 태리 스님만 오셔서 한결 마음 가벼웠을 것이다.

노스님 수행은 내가 적격이다. 이건 자랑이 아니고 팩트다. 나는 노스님도 태리 스님도 다 카바 가능한 전천후형. 내년이든 내후년이든 두 분 스님이 같이 오시면 나도 출격할 생각인데 앞으로 여름이 계속 이리 덥다면 노스님의 건강이 염려되기는 한다. 폭염 속의 강행군을 견디기 힘드신 체질에다 더위에도 익숙지 않은 핀란드 분이시라.


오래전 이태리에서 스님들을 모시고 와서 수행했던 언니의 방문기를 쓴 글을 다시 읽어 보았다. 내가 놀란 건 그때나 지금이나 한 치도 달라지지 않는 언니의 마음. 내생까지 갈 것도 없이 저게 수행자의 모습과 다를 게 뭔가.






태어난 것은 죽고 만난 것은 헤어지고


송광사에서 출가하신 이태리 스님들을 모시고 와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열 사흘을 모시고 다니던 언니가

스님들 출국하시자 집에 돌아와 꼬박 일주일을 밤이고 낮이고 먹고 자고 일어나면 또 자고 하던 언니가

이러면 안 되지 꼭 찾아뵙기로 한 스님들이 계신데 그 약속 지켜야 하는데 잠꼬대하던 언니가

떠나기 이틀 전에야 훌훌 털고 일어나 가자, 광주 가자, 진주 가자, 주섬주섬 옷부터 챙겨 입던 언니가

이태리 암자에 살고 계시는 핀란드 노스님 마음속에 사시사철 그리움으로 피었다 지는 도반 스님들 만나 뵈러 총총총 달려가던 언니가


스님들 만나고 돌아오던 시외버스 안에서 해질 무렵 서쪽 하늘 같이 눈시울 붉히며 이태리에서 내가 왜 그토록 갑갑했었나 이제야 알겠어, 하던 언니가

남알프스의 찌를 듯한 산들이 왜 내겐 아름답지 않았는지도 거긴 산만 있잖아 절이 없잖아 수행하시는 스님들이 없잖아 하던 언니가

내생엔 사람 몸 받아 한국에 다시 나서 수행자가 될래 하던 언니가
부산에서 우등버스 타고 인천공항으로 떠날 때 터미널에서 시집 한아름 사들고 웃으며 손 흔들던 언니가
금강 휴게소 어디쯤이라고 했나 Y언니와 내가 터미널을 쉽게 뜨지 못하고 우동집에 앉아 있을 때

지금은 절판된 어느 출판사의 <석가모니>라는 책을 읽다가

뜨거운 눈물 방울방울 떨구며 공항까지 갔다던 언니가

부처님 말씀 강이 되어 바다 되어 가슴으로 흐르더라던 언니가

마침내 이태리로 돌아가 강물에 씻긴 조약돌처럼 맑은 바람처럼 내게 전하네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고 만난 것은 언젠가 또 헤어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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