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에서 쓴 시
보살 셋은 누구인가
이자르 강 다리 위를 걸으며 사랑의 열쇠들을 보다가 생각한다. 저런 시절을 건너온 적이 있지. 지금은 중년이 되어 담담해졌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견디나. 평생을 불꽃처럼 사랑하며 산다고 생각하면 피곤하지 않은가. 무덤덤한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래서 일종의 편안한 해결책.
오래전에 썼던 시가 생각나 이자르 강 위에서 짓궂은 상상을 한다. 이런 생각을 시로 옮겨본 들 무해한 나이가 되었다는 것은 또한 얼마나 즐거운가. 누가 얼굴을 찡그리건 불순한 상상을 보태건 얼굴을 붉히건 상관할 바 아니다. 그런들 또 어떤가. 받아들이는 건 각자의 몫.
이자르 강의 약속
아이와 함께 동물원에 가고 싶다고 조카가 말했죠
표만 사 주고 함께 들어가도 되지만 안 따라가고
다리 건너 베이커리 야외 카페에 앉아 글을 썼죠
이모 동물원 후문에서 만날까요 두 시간 후 조카의 톡에
다리를 건너다 보았어요 열 개의 손가락 눈부시게 걸고
자물쇠도 꼭 채우고 열쇠를 강물 속에 던져 버린 약속들
강물처럼 푸른 약속 노을처럼 붉은 약속 강물에 반짝이는
모래빛 금은빛 약속 몇몇 약속들은 은밀하게 강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죠 그들의 뒷모습이 하도나 완강해서
저도 고개를 돌렸어요 어떤 속사정들은 캐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게 좋을 때도 있지요 그러다 뜬금없이 궁금한 거예요
저 약속들이 다 뭔가요 다시 태어나도 같은 배우자를
선택하겠노라 답한 여자가 열에 셋이라면서요 나머지
일곱의 기분은 이해하죠 살다 보면 거기서 거기잖아요
첫눈에 반했다 쳐요 가슴도 두근거렸겠죠 그리고는요?
알콩달콩 아이 낳고 티격태격 권태기 오고 그게 다예요
일곱의 선택은 알죠 어차피 안 되니 꿈이나 꾸자는 거죠
셋의 선택은 뭘까요 의리거나 포기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귀차니즘이라면 이해할 수 있어요 살아 보면 별 거 있나요
별 여자 없고 별 남자 없지요 이자르 강변의 무수한 약속을
우리말로 해석하다 생각하죠 그럼 나는? 우리끼리 얘긴데
서운해 하진 않을 거예요 나보다 멋진 여자와 두 손 맞잡고
걸어오는 낯익은 얼굴을 보더라도요 그 다리 위에서 말이죠
다시 결혼한다면
다시 결혼한다면
다른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여자가 열에 일곱
놀랍지 않은가,
보살 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