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우리가 빈에 다녀올때였다. 고작 사흘을 떠났다 왔을 뿐인데 그 이후로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빈에서 넘어지면서 휴대폰이 깨진 후 뮌헨에서 한 달간 휴대폰 없이 지냈다. 만약 손에 휴대폰을 들고 있지 않았더라면, 넘어지면서 휴대폰에 체중의 절반을 싣지 않았더라면 내 무릎 중 하나는 휴대폰 꼴이 났을지도 모른다고 남편은 지금도 말한다. 그러니까 최신폰인 새 휴대폰 값이 절대로 비싸다고 볼 수 없다는 뜻이다.맞는 말이다. 이런 경우 남편의 말은 언제나 옳다. 액땜하느라 돈이 좀 들었다고 생각하니 속이 덜 쓰렸다.
그 사이 카타리나 어머니께도 변화가 있었다. 빈에서 돌아오자마자 시누이 바바라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난 1주일 내내 설사를 하셨다고. 처음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날씨가 더워서 음식을 잘못 드셨나 생각했다. 약을드시면 금방 나으시겠지. 그런데 주치의가 휴가를 가는 바람에 생각보다 조금 지체된 모양이었다. 꼭 주치의가 올 때까지 기다리셔야 하나. 약국에서 약을 사다 드리면 될 텐데.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다. 원래도 신경을 많이 쓰시거나 스트레스를 받으시면 설사를 하신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빈에서 돌아온 후 주말에 어머니를 뵈러 갔을 때 깜짝 놀랐다. 그 짧은 시간에 살이 너무 빠지고 마르셔서. (그때 벌써 5킬로가 넘게 빠지셨다. 지금은 더..) 원래도 체구가 작고 날씬한 편이시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평생 테니스, 스키, 수영 등 운동을 즐기셨고, 만 85세 생신을 앞두신 올해도 5월부터 슈탄베르크 호숫가에 매일 아침마다 걸어서 수영을 다녀오시던 분이었다. 내가 충격을 받은 대목은 어머니의 지팡이였다. 어머니가 지팡이를 짚으시다니! 오십 대인 나보다 더 건강하시던 우리 어머니가. 오십 대인 내가 암에 걸린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시던 우리 어머니가.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더 이상 음식을 준비하지 못하셨다. 어머니 댁은 부엌과 식사를 하는 다이닝 룸이 떨어져 있다. 식사를 위해서는 무거운 접시와 음식을 부엌에서 다이닝 룸으로 날라야 한다. 그게 어려워지신 것이다. 한 손에는 지팡이, 한 손에는 접시? 한 손으로는 음식을 만들 수도 없고, 재료 손질도 어렵다. 문제는 하체에 근력이 빠지셔서 걸음걸이마저 위태로워 보였다. 할머니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본 아이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물을 흘렸다. 우리 할머니 어떡해..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우리 어머니가 어떤 분이신데. 철의 여인이신데. 그런데 아니었다. 강하면 부러지기도 쉬운 법. 어머니의 건강과 함께 멘탈도 급속도로 약해져 갔다. 요즘은 내 앞에서도 자주 우신다.
닭가슴살을 곁들인 시저 샐러드, 소고기 야채볶음, 소고기를 넣은 토마토 퓨레. 소고기 샤부샤부, 닭육수와 닭다리 살을 이용한 브로콜리 수프, 소꼬리와 육수를 이용한 감자 수프.
거기다 빈에서 돌아온 다음 주에 시누이가 휴가를 갔다. 우리 같으면 아픈 엄마를 두고 휴가 가기도 쉽지 않을 텐데. 원래 가기로 했던 휴가라 가는 것 같았다. 누구도 그것에 대해 언급하거나 불평하지 않는 독일 가족 문화가 내게는 신기하고 놀라울 뿐이었다. 그렇다고 어머니를 혼자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남편도 바쁘니 나 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한몫을 했다. 궁하니 통했다. 없던 용기도 생겼다. 집에서 점심을 준비해서 혼자 운전을 해서 어머니 댁을 갔다. 어머니가 놀라서 기절하시기 일보 직전이셨다. 내가 운전을 하는 걸 모르셨기 때문이다. 이런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싶어 작년 가을 항암이 끝나자마자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운전을 시작했고, 올초부터는 어머니 댁에 갈 때마다 내가 운전을 해서 길눈을 익혀놓은 게 도움이 되었다.어머니 덕분에 독일에서 꿈도 꾸지 않던 나 홀로 운전을 하게 된 셈이다.
그뿐인가. 어머니 덕분에 요리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내가 매일 준비해 가는 음식을 드시고 어머니가 맛있다 맛있다 하시니 요리에 재미가 붙은 것이다. 내가 하면 얼마나 잘하겠나. 그런데 요리라는 게 참 신기했다. 잘해야겠다, 잘하고 싶다, 이런 마음의 부담을 딱 내려놓으니 요리 자체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날씨에 맞춰 메뉴를 생각하고, 재료를 다듬고 익히고 내가 생각하는 맛이 나올 때의 경이로움이란! 하이라이트는 어머니가 수저를 드시는 순간이었다. 점점 입맛을 잃어가시는 어머니가 과연 맛있게 드실 것인가. 놀랍게도 어머니는 내가 어떤 음식을 준비해 가도 맛있게 드셨다. 우리 어머니가 어떤 분인가. 요리의 달인 아니신가. 그런 분이 칭찬하시는데 내 요리 솜씨에 날개가 달리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그래서 대체 뭘 준비해 가냐고? 별 거 없다. 어머니의 고관절 수술과 수술 후 회복까지 고려해서 체력을 비축하시는데 중점을 두었다. 매일 양질의 소고기와 닭고기를 번갈아가며 다양한 레시피로 준비하려 노력하고있다. 지금 어머니에겐 단백질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내가 항암을 할 때 우리 언니가 내게 해줬던 것처럼. 그때 키운 체력으로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기 때문에. 질 좋은 스테이크용 소고기는 얇게 저며서 버섯 등 야채 간장 볶음. 불고기용 소고기는 얇게 썰어 배추, 대파, 양파, 호박 등을 넣고 전골 같은 샤부샤부로, 고기가 맛있고 뼈는 튼튼한 다릿뼈살과 큼직한 소꼬리는 찬물에 피를 뺀 후 한소끔 끓여서 불순물이 많은 첫물을 버리고 뭉근하게 오래 고아 육수와 고기로 다양한 수프에 도전해 보았다. 감자와 당근과 대파를 넣은 감자수프는 소고기 육수에 오래 끓여 나무 주걱으로 으깬 후 잘 익힌 소고기를 찢어 넣었고,친구 E의 레시피대로 브로콜리와 당근 등을 삶은 물을 믹서에 갈아서 초록 베이스를 만든 후 여기에 닭육수를 더하고 다양한 야채를 넣고 닭고기를 올렸다. 어떤 날은 토마토를 갈아 붉은 베이스를 만들고 거기에 소고기 육수와 온갖 야채에 소고기를 찢어넣었다. 영혼의 치킨 수프는 기본!더운 날은 닭가슴살을 잘게 잘라 프라이팬에 구운 시저 샐러드로. 어머니 수술이 며칠 남지 않은 이번 주엔 달큼하면서도 치즈를 듬뿍 넣은 프렌치 어니언 수프에도 도전해 볼 생각이다.
지난 한 달 동안 어머니를 괴롭힌 건 고관절 염증으로 인한 통증이었다. 시누이가 휴가를 떠난 사이 지팡이에서 보조기로, 시누이가 돌아온 후 보조기에서 휠체어로 갈아타신 것도 통증 때문이었다. 이 모든 일이 지난 한 달 사이에 일어났다. 이제는 남편이나 시누이의 도움 없이는 침대에서 일어나시지도 못하고 혼자서는 화장실도 못 가신다. 요즘은 시누이가 밤에, 남편이 낮에 어머니 곁을 지킨다. 나는 점심과 때로는 저녁까지 준비해서 오간다. 어머니는 이것을 견디기 힘들어하신다. 혼자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신 것, 자식들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시는 것. 시아버지를 돌보시는 것도 불가능하시다. 어머니가 수술을 하시고 재활까지 마치고 돌아오시는 한 달 동안 오토 시아버지는 뮌헨의 바바라와 우리 집 사이 요양원에서 기다리셔야 한다. 3년 전 어머니가 첫 고관절 수술을 받으시던 그때처럼. 그때보다 어머니가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치고 약해지셨다는 게 걱정이긴 하지만 두 분이 다시 부헨벡 7번지에서 만나게 되실 것을 굳게 믿는다. 이것은 우리와의 약속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꼭 지키셔야 할. 어머니 정원의 수련들과 장미들도 기다릴 것이다.
어머니가 우리 아이에게 주신 선물. 혹시라도 당신이 수술 후 못 깨어나시면 할머니를 꼭 기억해 달라시며. 그 말을 듣고 아이는 또 울었다. 어머니 정원의 장미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