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도 연금술이 있다면

뮌헨의 편지 72

by 뮌헨의 마리


오토 양아버지가 계신 요양원 정원 그네에서 본 풍경.



그리운 샘.


지난주 오토 아버지가 머물고 계신 뮌헨의 카리타스 요양원에 날이었어요. 팔월의 첫 주부터 뮌헨은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사흘 넘게 지속되었답니다. 아침 일찍 병원에서 정기검사를 받고 오후 1시에 요양원으로 갔지요. 요양원이 저희 집에서 멀지는 않지만 한번 집으로 가면 다시 나오기 싫을 것 같아 바로 갔는데 그날은 아무래도 타이밍을 잘못 잡았나 봅니다. 입원실을 들여다보니 점심 식사를 하시고 깊은 잠에 빠지셨더라고요. 저의 방문 목적은 고관절 수술 후 재활 중이신 카타리나 어머니와 두 분이 통화를 하시도록 도와드리는 건데 어머니도 왓쯔 앱에 답이 없으신 걸 보니 두 분 다 주무시는 것 같았어요.


그렇다면? 무더운 한낮에 집과 요양원을 오가다 더위까지 먹으면 곤란하니 최대한 안전을 도모하기로 했답니다. 요양원 안쪽의 정원에 2인용 그네가 있었어요. 흔들의자라고 해야 할까요. 큰 나무 아래 서늘한 그늘에 놓여 있는데 신기하게도 아무도 안 앉아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정원의 테이블에 주로 앉으시고요. 거기 앉아 쉬었답니다. 한낮의 햇살은 눈이 따갑도록 환하고, 꽃들은 눈부셨어요. 큰 나무들의 초록잎들도 햇볕에 반짝였고요. 나른하기도 하고 노곤하기도 하고 비몽사몽인 듯 몽롱하기도 했어요. 인생이 일장춘몽이란 말이 새삼 떠올랐어요. 삶이 터무니없이 짧은 것 같기도 하고 너무 긴 것 같기도 하고요. 검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침에 들고 간 샌드위치를 먹었더니 배는 하나도 고프지 않았답니다. 요즘 제가 입맛을 잃었거든요. 드문 일이지요. 이참에 불어난 체중을 조금 정리하나 고민 중이에요.


오랫동안 샘께 편지를 쓰지도,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도 못했네요. 칠월에는 제가 몸살을 두 번이나 했거든요. 카타리나 어머니가 수술을 하시고 재활원으로 가신 후였어요. 매주 일요일마다 앓아누웠는데 이것도 드문 일이었지요. 밥도 약도 먹고 열이 나면서 하루를 꼬박 앓았는데 한밤중에 문득 약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뭐예요. 자다가 약을 두 번이나 먹고 땀을 흘리며 잤답니다. 약은 독일 사람들이 상비하는 이부프로펜 Ibupropen 400을 먹었어요.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이 약을 먹는대요. 하나를 다 먹기에는 셀 것 같아서 반으로 잘라 두 번 먹었죠. 독일 약이 좋은 건지 약발을 잘 받은 건지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훨씬 가벼웠답니다. 두 번째 몸살 때는 열은 안 나고 피곤하기만 해서 약 대신 밥을 먹으며 쉬어주었어요.


몸살을 하던 일요일엔 매일 가던 오토 시아버지 방문도 취소했죠. 전날에는 시누이 바바라와 같이 요양원 옆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오토 시아버지를 모시고 저녁 식사를 했는데 그때도 조금 피곤했거든요. 시원한 독일 맥주를 두 모금 들이키자 정신이 들더군요. 요즘은 주중에만 방문하고 주말엔 쉬고 있어요. 요양원 바로 옆에 사는 바바라도 있고, 친딸인 미하엘라도 있으니까요.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고 무리는 하지 않기로 했답니다. 가끔은 저 대신 클레멘스나 알리시아를 보내기도 하고요. 때 독일어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계속 읽었는데 예전만큼의 감동은 아니지만 지금의 제 나이에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게 있었어요. 삶의 연금술이란 뭘까 하고요. 납이나 구리를 금으로 바꾸는 것만큼 혹은 그보다 중요한 것들에 관해서요. 몸과 마음의 건강, 성실한 일상, 가족과 친구, 적당한 인간관계 그리고 예술에 대한 열정 같은 것들요.



오토 양아버지가 계신 요양윈의 정원.



예전에 제가 좋아하던 어떤 사람이 그런 말을 했거든요. 살면서 사람 말고 기댈 데가 하나는 있어야 다고요. 책이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어떤 것이든 말이에요. 돌아보면 칠월 한 달 내내 피로하고 힘들었는데 그때 저를 일으킨 건 놀랍게도 클래식 음악이었어요. 책도 글도 아니고요. 몸이 아프니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좋아하던 밥도 생각이 없고요. 어쩐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어요. 무엇으로든 삶의 의욕과 생기를 되찾아야 했으니까요. 한국 슈퍼에서 2회 반나절씩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그게 도움이 됐어요. 일하러 가야 한다 생각하면 억지로라도 기운을 내고 몸을 일으키게 되잖아요. 독일어 책 읽기 공부도요. 몸은 아파도 홀가와 책 읽기를 계속했죠. 그렇게 <연금술사>라는 사막을 절반 넘게 건너왔어요. 양치기였던 우리의 주인공은 자신의 보물이 있는 피라미드를 향해 계속 전진하고 있고요.


그런데 이번에 일과 책보다 저에게 힘이 되어준 건 말씀드린대로 음악이었답니다. 음악이 이토록 큰 힘을 가졌을 줄 저도 몰랐어요. 6월에 미국의 클라이븐 콩쿠르에서 한국의 18세 피아니스트가 1등을 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만 해도 대단하다는 생각 이상은 없었어요. 약간 궁금하긴 했죠. 피아노도 모르고 클래식 마니아도 아니지만 라디오를 들을 때 제일 먼저 돌리는 채널은 클래식이니까요. 클래식 음악 애호가이신 오토 아버지께 자랑이라도 하려는 아주 사적인 호기심에서 유튜브에서 젊은 피아스니스트 임윤찬의 음악을 검색했죠. 어땠냐고요? 깜짝 놀랐어요! 전기에 감전된 기분이랄까요, 마술 피리에라도 홀린 기분? 음악에도 연금술사가 있다면 바로 이 청년을 두고 말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답니다. 외양은 어린 왕자인데요.


그 후로 자주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있답니다. 산책할 기운도 없던 어느 날은 그의 음악 속에서 이른 아침 서늘한 이자르 강가를, 녹음이 우거진 오후의 산책길을, 태풍이 휘몰아치는 여름날의 바닷가를, 세상 만물이 달빛에 잠긴 겨울날의 호숫가를, 인생이라는 예측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멀고 먼 여행길을, 봄비처럼 스며들다 가을바람처럼 스쳐가버린 지난 시간들을 생각했지요. 그렇게 저는 음악이라는 숲길로 한 발을 들여놓았답니다. 그러자 조금씩 의욕도 살아났어요. 그가 연주하는 모차르트와 베토벤과 라흐마니노프와 바흐와 쇼팽과 리스트를 들으며 책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거든요. 산책도 다시 하고요.



저것은 독일의 무궁화!



샘.

카타리나 어머니는 수술 경과도 좋으시고 재활도 열심히 하고 계시나 봐요. 전화 목소리만 들어도 힘이 가득하시거든요. 반면 오토 시아버지는 날마다 기운을 잃어가는 중이세요. 요양원이 싫으신 거죠.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으신 거예요. 그 마음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자꾸 징징거리시니까 좀 보기가 그렇더라고요. 그 연세에요. 우리 나이로 95세시거든요. 아내를 사랑하시지 않나. 지금 카타리나께는 이 시간이 너무나 중요하다. 2주만 참으시라. 2달도 아니고 2년도 아니고 단 2주를 못 참으시나. 제가 따끔하게 잔소리를 합니다. 처음엔 놀라시더군요. 그러다 2주 후면 진짜로 집에 돌아갈 수 있냐 물으시길래 저도 그러길 바라요, 했죠.


저요? 저는 카타리나 어머니 수술 전에 어머니 점심을 공수하며 좀 무리를 했는지 정기검사 결과 갑상선 저하 판정을 받고 약을 먹고 있어요. 올초에 방사선 치료를 했던 림프 결절도 커지긴 했는데 당장 조치할 정도는 아니어서 두 달 후에 다시 검사를 해보자고 하시네요. 다행인 건 두 분이 집으로 돌아가시면 입주 도우미 겸 요양 보호사를 구하실 거 같아요. 어머니가 원하시는 건 두 분이 함께 시설 좋은 요양원으로 들어가시는 건데 대기자 명단이 길대요. 저도 적극 찬성인데 말이에요. 다행인 건 저희가 곧 휴가를 떠난다는 거예요. 힐더가드 새어머니와 함께요. 새어머니가 초대하시는 크루즈 여행이에요. 북독일을 출발 2주간 영국을 한 바퀴 돈대요. 크루즈는 처음이라 상상이 안 되지만 즐겁게 다녀올게요. 여행을 가서도 시간이 되면 소식 전하도록 노력하고요. 혹시 소식이 없더라도 너무 걱정은 마세요. 다음부터는 이렇게 오래 기다리시게 하지 않겠습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하고요. 한국의 팔월은 무더위에 물난리까지 여러 가지로 힘들어 보이네요. 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고요. 건강하시고 저 역시 다시 건강에 매진하겠습니다.


이것은 독일의 능소화. 그리운 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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