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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Oct 07. 2022

나는 나를 믿는다

2차 방사선 치료

비가 쏟아지던 9월 말의 산책길.



가을이다. 뮌헨에 비가 내렸. 그것도 자주. 비도 좋아하고 가을도 좋아하는 내가 가을비 속을 산책할 때의 기분은 어떨까. 매번 그런 건 아니지만 너무 좋았. 9월 마지막 주 정기 검사 때가 그랬다. 산책을 시작할 땐 해가 나왔는데 산책길에 접어들자 비가 쏟아졌다. 순식간에 눈앞이 뿌옇게 흐려질 만큼. 단풍 생각도 없이 초록만 무성하던 나뭇잎들 위에서부터 소란이 시작되었다. 빗줄기는 또 얼마요란하던지! 그런데 그 듣기 싫지가 않더라는 것. 오케스트라 있잖나. 수십 대의 악기가 제각 다른 소리를 내지만 귀에 거슬리지 않듯이. K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앞에 심심하면 나타나고래가 눈앞에서 소리없이 떠다닌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고요의 바다, 적막의 바다. 발길을 멈추고 우영우처럼  환희로운 표정으로 박수라도 쳐주고 다. 너무 멋지잖아! 함성과 함께.


그런 날은 발걸음을 서두를 수도 다. 시간 속에 오래 머물고 싶어서. 그럴 땐 한 발 한 발 아껴가며 걸어야 한다. 부츠를 신지 않은 발이 비에 어도 차갑지 않도록. 검은빛에 가까운 블루 코트 자락 새하얀 빗방울들이 파도처럼 날아와 부딪히 부서지고 떨어지고 사라질 . 집중의 시간. 그들의 협주곡을 들어야 해서. 1악장은 베토벤. 박력 그 자체. 너를 위해 준비했어, 그런 느낌. 2악장은 쇼팽. 귀를 기울이고 오래 기다려야 들릴 듯 말 듯 들려오. 빗방울이 우산 위를 구르고 구르는 감미로운 소요. 발걸음은 가볍고. 두 손은 가슴에. 눈도 몇 번 감았 . 3악장은 경쾌하게 마무리. 모차르트 식으로. 비도 그침. 산책엔 소리 소문 없이 내려와 빗방울들의 연에 귀 기울이던 흰 구름 몇 조각. (뜬금없이  귀에 이런 말도 들려옴. 윤찬아 고맙다!  살아남아서 오래오래 너를 응원하겠다. 내가 나를 응원하듯.)



비 온 뒤 산책길에 떨어지던 9월의 나뭇잎.



그렇게 가을비와 함께 10월로 넘어왔다. 검사 결과만 말하자면 다시 6주 치료를 받기로 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당장 시작하자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네,라고 대답했다. 진실로 감사한 마음으로. 운명의 레이스에 적극  준비가 된 나 자신도 칭찬하며. 이번 치료는 약한 항암과 방사선을 병행할 계획이다. 복부 림프 결절과 전이된 가슴뼈를 동시에 치료하기 위해서. 항암은 방사선 치료를 돕기 위한 목적이라 용량이 적고 부작용도 적어 머리카락 적게 빠질 거라말씀에 감동과 안도가 한꺼번에 밀려듬. 5개월이 걸린 항암을 생각하고맙지 않을 수가 없다. 겨우 6주라지 않는!


옥토버 페스트 때는 시도 춥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더니 옥토버 페스트가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청명한 가을이 찾아왔다. 얼마나 10월다운 날씨인가. 산책 때마다 홀로 감탄한다. 걱정은 안 냐고? 당연히 되지. 아니라면 허세고. 다만 너무 깊이 생각하지는 않으려 한다. 그래 봐야 좋을  없으니까. 어렵고 힘든 일일수록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게 최고다.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한 번씩 무탈하게 받아본 경험도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떻게 가야겠다는 가이드라인도 절로 나왔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잘 걷기. 모든 계획은 단순할수록 좋다. 이상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목표가 있는 삶은 좋다. 비록 그것이 항암 치료라 할지라도.



10월 초의 산책길과 로젠 가르텐의 장미들.



이번에 안 건데, 나 자신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낙관적이라는 . 낙관주의를 설명한 여러 개 중 '현 사태가 가장 최선의 사태라는 걸 이해하는 것'이라는 대목에서 그랬다. 같은 뜻인데도 낙천주의는 반드시 타고난 기질이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언감생심 끼어들 엄두가 안 났. 대책 없는 긍정주의도 별로였다. 그런데 내가 낙관적인 사람이었나,라는 생각만으로 나 자신이 좋아졌. 아무렴, 비관적인 것보다야! 이번에 알게 된 것 중 또 하나는 말이 씨가 된다모국어의 진리. 어쩌면 또 치료를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설레발을 친 게  예다. 그러자 낙관주의가 이렇게 받아치네. 말은 그렇다 치고, 생각은? 생각이 거름이 된다, 렇게 생각하 안 되나? 이만해서 다행이고, 이 정도면 괜찮다고.


10월 초의 이자르 산책길에 들른 로젠 가르텐의 몇몇 장미들도 아직 버텨주고 있었다. 나도 그럴 것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 나를 치료해 줄 의사 샘, 나를 응원해 줄 당신도. 내게는 40대의 몇 년을 기쁨으로 장식해세계문학이 있고, 클래식의 아름다움을 눈앞에 펼쳐보인 윤찬이 있고, 우영우처럼 무해한 k드라마가 차곡차곡 무한대로 쌓여있고, 몇 년을 붙잡고 갈 제인 오스틴이 있다. 6주 동안 일상도 단순해질 것이다. 만남은 줄고, 산책은 늘 것이다. 삼시 세 끼를 나물에 잡곡밥에 된장국을 먹고, 제인 오스틴의 여섯 장편 우리말과 독일어로 읽느재미와 진땀이 줄다리기를  것이다. <오만과 편견> 독일어판을 시작해보니 3년은 무슨! 최소 5년은 걸리겠다.  번 정도 해봤는데  번에  챕터 이상을 못 읽어냈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아이와 k드라마 <역도 요정 김복주>보며 낄낄거릴 예정. 깃털처럼 가벼운 니트티와 편한 청바지도 샀다. 따뜻한 겨울 신발을 신고 나설 일만 남았다. 나는 준비가 되었다. 걱정 마시길.



2022.10.5 저녁 일곱 시, 뮌헨의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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