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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May 10. 2022

쑥갓에 진심을 담으려고요

항암 후 식이요법


암을 이기는 방법은 모른다. 항암을 견디는 방법에는 한 줄 보탤 수 있다. 누구나 알듯이 운동과 식이. 거기다 전지적 양념인 '기쁨과 웃음'을 곁들인다면 금상첨화겠다.


독일에서 먹는 쑥갓과 쑥갓나물. 무와 무김치. 아침 사과와 야채.


요즘은 쑥갓을 자주 으려 노력 중이다. 쑥갓은 뮌헨의 아시아 마트에 가면 살 수 있다. 가격은 한 단에 1.30센트. 두 단을 엄마가 하시던 대로 식탁에 신문지를 펴고 다듬는다. 당장 해야 버리는 게 적은데 게으른 천성 때문에 하루 이틀 발코니에 두었다가 손질하는 습관이 있다. 어차피 할 거 미리  하지. 그런  자신 봐준. 버리는 게 나와 통째로 버리는 것보다야 백 배 낫지 위로하면서. 두 단을 삶으면 두 끼 정도의 분량이 나온다. 물기를 짜고 먹기 좋게 썰어 참기름, 깨소금 듬뿍 넣고 뮌헨에 사는 조카의 엄마인 선희 언니가 보내준 귀한 된장을 넣고 무치 한국의 맛이 된다. 진작 상추처럼 쌈으로 먹을 생각은 안 했지. 된장국에도 , 쑥갓전맛있겠다.


왜 갑자기 쑥갓 타령? 항암 후 식이에 신경을 못 다. 단 것을 안 먹는 정도로 소극적인 식이만 했는데 쓴 채소가 몸에 좋은 건 당연하다. 암이 단 걸 좋아하 쓴 건 얼마나 싫어하겠나. 우리도 쓴 맛이 싫은데. 그래서 조금 적극적으로 쓴 채소를 먹어보기로 했다. 독일이라고 쓴 채소가 없겠냐마는 중요한 건 오래 먹어도 질리지 않아야 한다는 . 밥이나 김치나 된장처럼 매일 먹어도 괜찮은 건 뭘까. 자주 먹어서 내 입맛에 길들여진 것이라야 하겠다. 독일 마트에서이거다 싶은 걸  찾았다. (파스타를 먹을 때 듬뿍 넣는 파슬리 정도.) H 언니를 따라 가끔 콩나물이 다는 아시아 마트에 들른 적이 있는데, 콩나물은 없고 쑥갓만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예전에도 아시아 마트에서 본 기억이 났다. 그때 먹어보 정기검사가 끝나자마자 가까운 아시아 마트로 달려가서  사 왔다.


쑥갓만 먹나? 그건 아니다. 가끔 상추쌈도 먹고, 시금치도 는다. 고기는 없이. 항암을 할 땐 언니가 매일 차려주니 고기도 자주 먹었는데, 언니가 떠나니 세 끼 차려 먹는 것도 일이라 최소한으먹으려 한다. 아침은 남편이 사 오는 빵으로. 점심과 저녁은 간단한 한 접시 요리. 그래야 체력을 아낄 수 있다(사실은 늘 이렇게 먹으며 살아왔다!). 지금은 체력이 좋아져서 조금 공격적인 상차림으로 가볼 생각이다.  대단한 건 아니고, 몸에 좋은 채소와 과일 적극 먹기 정도. 아침 식탁에도 오이, 파프리카, 사과를 반개씩 올리고, 남은 반은 점심 전에 먹는다. 점심은 주로 된장국, 나물 혹은 생채소, 김치, 계란 프라이, 김 등. 이만하면 독일에 사는 내게 최고의 식단이라 하겠.



요즘 잘 가는 산책로의 흙길 말고 반대쪽에서 발견한 명이 군락. 벌써 꽃대가 올라오고 있다.



올봄에는 명이 나물도 먹어봤다. 독일에도 명이 나물이 있냐고? 놀라지 마시라. 지천에 널렸다. 더 충격적인 건 지금까지 두 눈 뜨고 몇 년 간 보면서도 그게 명이인지 몰랐다는 사실! 이자르 강변 산책로에 명이 군락이 있다(진짜 내 눈썰미 하고는..). 나는 시골 출신이다.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 속에서 컸음에 텃밭의 모종만 보고 구별할 수 있는 건 상추, 부추, 고추, 토마토, 가지, 호박, 오이 정도다. 산이나 들에 나는 나물 종류도 겨우 쑥, 달래, 냉이뿐 풀, 꽃, 나무 이름도 잘 모른다. 그러니 울릉도에서나 나온다는 연한 댓잎을  닮은 명이를 어떻게 알아봤겠는가. 뜯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개들 산책로는 위생이 신경 쓰이고 비교적 깨끗한 곳은 혼자 앉아 뜯기 뭐해서 올해는 그냥 넘어가기로. 나물 캐기는 특히 조가 맞아야 재미있다. 검은 머리는 또 얼마나 사람들 눈에 잘 띄나. 아무리 명이가 좋아도 품위도 생각하며 살아야 하니.


참, 명이 나물 먹은 이야기를 마저 해야겠다. 림프 마사지를 가는 곳에 터키인이 운영하는 오픈 마켓 매대가 있는데 거기서 얇은 명이 한 단이 1.99유로. (볶았더니 몇 젓가락 안 나왔다. 마늘향 가득한 맛이 일품이었다. 다른 채소&과일 가게에서도 봤는데 무려 2.99유로. 아이고, 흔하디 흔한 게 왜 그리 비싼.) 독일 사람들 중에도 명이 나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나와 항암을 같이 했던 이어리스는 봄마다 명이를 뜯어서 페스토 소스로 만들어두고 먹는다고. 매년 가는 본인만의 명이 군락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공개하지않았다. 내년 봄에는 나도 한 군데 뚫어봐야겠다. 아이와 아이 친구들을 데리고라도 가야겠다. 독일에서도 명이 잎만 살짝 뜯는 건 괜찮다고 한다.


요즘은 무김치도 자주 담고 있다. 난 무김치를 좋아한다. 독일에서 좋은 무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닌데, 최근에 한국 무 비슷한 단단한 무를 발견했다. 피트니스 센터와 가까운 야외 매대였다. '뮌헨 농장에서 수확한'이라는 특별한 타이틀까지 달고 있는 걸로 보아 뼈대 있는 농장에서  게 틀림없어 보였다. 과연 며칠을 발코니에 두었는데도 무성한 잎줄기만 조금 마를 뿐 속은 바람 한 점 들지 않았다. 일단 합격! 큰 무를 4사 오길 잘했다. 가격은 킬로에 2.99유로. 4개에 12유로. 김치란 게 그렇다. 막상 시작하면 힘든 줄 모르는시작하기까지 엄두가  난다. 한번 김치를 담글 때 양념을 넉넉하게 준비해서 남은 양념으로 다음을 기약하길 즐기는 편.



올해 첫 화분은 장미. 사월의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꽃봉오리를 절반이나 잃었다. 아이 친구네가 선물한 튤립을 밖에 두었더니 봄비 맞으며 3주간을 선방함.



운동은 뭘 하나. 산책은 기본. 요즘 자전거는 잘 안 탄다. 한국의 벗이 말하길 지인이 자전거 타다 넘어져 얼굴을 갈았다며 조심 또 조심하래서. 독일에서 칠십 평생 자전거를 탄 이어리스도 최근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부상을 입었다. 왼쪽 팔목과 왼쪽 다리에. 안부를 물으니 1주일이 지난 지금절뚝거리신다고.  1회 피트니스는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반년 넘게 계속 다니고 있다. 2회를 하고 싶은데 트레이너들은 내가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번이나 물었는데 아직 대답이 없는 걸 보면. 괜찮다. 운동이 피트니스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예전에 다니던 동네 할머니 요가 샘께  문자를 보냈다.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하긴 잊기가 어려울 수도 있. 동네에 아시아 여자가 살면 몇이나 산다고.


그 요가 수업에 계속 다녔어야 했다. 3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 하루는 피트니스. 하루는 요가. 이어리스만 괜찮아지면 노르딕 워킹이나 실내 운동 동아리도 가야겠다. 매일 산책과  3회 운동이 기쁨과 즐거움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할 거라 다. 삶의 기쁨과 즐거움이라면 단연 책 읽기와 글쓰기를 빼놓을 수 없. 4월부터 시작한 독일어 책 <어린 왕자>는 순조롭게 진행 중. 5월에 끝내는 게 목표다. 다음 책은? 당연히 생각해 두었지. 그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으니.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Der Alchimist>. 코엘료의 문체에만 익숙해지면 작품 수가 무궁무진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독일어 샘 홀가는 조금 무리라생각할  있겠지만 뭐 어떤가. 친절한 샘이 옆에 있을 때 무조건 질러보는 거지. 큰소리만 쳐놓 물러서면이 아니 매일 밤 한 챕터씩 미리 읽어보기를 하는 . 차에 기름 채우듯 자신감도 풀로 가동되고 있.


자연요법센터의 할아버지 의사 Dr. Wölfel 샘과도 만났다. 어찌나 기뻐하시던지 스러울 정도였다. 주 1회 고주파 열치료와 비타민 C 고용량 요법은 계속하기로 했다. 미슬토 요법도. 미슬토는 용량을 1mg부터 시작해서 2mg/5mg/10mg/20mg/30mg을 거쳐

현재는 용량을 늘려 월/수/금에 50/50/100mg을 직접 맞고 다. 남편이 주사를 놔주는데 사이 실력이 많이 늘었다. 남편도 나처럼 미슬토 요법이 면역력을 올리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믿는 것 같다. 뵐펠 샘께 이명에 대해서도 여쭤보았다. 이명이 있어도 잠을 잘 수 있나 없나가 중요한 척도라고 하셨다. 다행히 나는 잘 수 있는 . 요가로 심신을 이완하는 것도 도움이 되고, 셀렌 섭취도 좋다고 하셨다(암센터의 마리오글루 샘 추천으로 항암 때부터 비타민 D와 셀렌을 먹고 있다). 밤낮으로 삐 소리가 들리지만 무시하고 산다.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서. 이비인후과에서 처방한 은행은 효과가 없었. 이명은 어차피 완치가 어렵다 하니 마음을 편하게 먹는다. 자연요법센터에 귀요법도 있다고. 역시 모르면 묻는 게 최고다. 그렇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연대. 함께, 굳건하게, 서로 손 잡기.



<어린 왕자>와 <연금술사>.



P.S.

또 하는 게 있냐고? 있다. 강황도 매일 알약(3000/1일) 으로 복용하고 있다. 1일 복용량은 Dr. Wölfel 샘의 추천이다.


방송인 홍진경 씨가 난소암으로 항암을 할  에피소드다. 보통 항암이 몇 시간씩 걸린다. 내 경우엔 매주 한 번/각 4시간씩 걸렸다. 홍진경 씨는 항암 때마다 <무한도전>을 보며 실컷 웃었다고. 얼마나 지혜로운가! (나는 그 시간에 졸기만..) '웃음'의 소중함. 동안 잊고 살았는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방법은 각자 고민해보실 일이다. 독일에 와서 나를 가장 많이 웃게 한 건 <응답하라 1988>이었다. (우리 아이 말이 지금 내 머리가 쌍문동 아줌마들 스탈 같단다. 그래서 자기는 좋대나 뭐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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