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스를 아느냐고 물었다

2차 항암과 방사선 치료 중 두 번의 산책

by 뮌헨의 마리


안개에 둘러싸인 안덱스 수도원 전경(위). 나를 앞서 걷던 J언니와 친구분의 뒷모습(아래).



6주간의 항암과 방사선 치료가 드디어 끝났다. 기분은 하늘을 날 듯한데 몸은 긴장이 풀렸는지 가라앉기만 한다. 매주 1회 진행하던 항암이 주중에 끝나고 그리고 금요일이 왔다. 그날 뮌헨에는 종일 비가 내렸다. 기온도 10도 아래로 떨어졌지만 생각보다 춥지는 않았다. 항암을 하는 6주 동안 왼쪽 다리 부종이 심해지고, 허벅지 안쪽에 통증이 생긴 지도 1주일이 지났다. 매일 저녁 다리 마사지를 했더니 통증이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날은 3주간 휴가를 떠났던 내 부종 테라피 담당 프라우 호르카가 돌아오는 날. 방사선 치료 전에 부종 마사지를 먼저 받았다. 기분상으로도 실제로도 통증이 꽤 줄어든 것 같았다. 매주 프라우 호르카로부터 테라피를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심적인 위로와 위안과 안정과 안심이 된다.


마지막 방사선 치료는 금요일 오후였다. 부종 마사지를 마치고 빗속을 걸었다. 방사선 치료까지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궁리하며. 집으로 돌아올 이유는 없었다. 남편은 새벽에 출장을 가서 밤늦게 돌아올 예정이고,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먹을 점심을 준비해두고 나왔으니까. 나는 마지막 치료에만 집중하면 될 터였다. 병원 앞 사거리 프랑스 카페로 가서 이번 항암 치료 중 마지막 점심이 될 샌드위치를 먹고, 고리끼의 중단편집 <은둔자>도 끝낼 생각이었다. 평소라면 브런치에 글을 쓸 텐데 모든 에너지가 방전되었는지 아니면 날씨 탓인지 카페에 앉자마자 몸이 늘어지고 무거웠다. 요즘은 카페에서 카푸치노를 마시지 않는다. 커피보다는 따끈한 차가 좋다. 건강에 좋다는 들장미로 만든 하게부테 Hagebutte 차는 맛과 향이 강하지 않아 질리지 않는다. 샌드위치는 돈가스 스틱이 든 슈니츨 바게트를 골랐다.


30분 일찍 도착하니 예약자가 적어서 바로 방사선과로 호출되었다. 지하 검사실로 내려가 탈의실에서 상체를 탈의하고, 개인 수건을 깔고 검사대에 누웠다. 눈을 감고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누우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잠시 편안하게 쉬었다 내려온다. 가슴뼈 치료는 1주일 전에 끝났다. 마지막 6주 차는 복부 림프절 치료만 받았다. 치료 시간이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검사대에서 내려오자 두 명의 간호사가 치료가 끝났다고 축하의 말을 건넸다. 이틀 전 방사선과 담당의와도 상담을 했고, 그날은 젊은 여의사와 한번 더 상담을 했다. 특별한 부작용은 없었는지, 현재 불편한 곳은 없는지, 기타 등등을 물었다. 설사는 나았고, 입 안이 마르는 증상은 차츰 나아질 것이고, 다리 부종은 어쩔 수가 없다. 많이 걷는 수밖에. 지난 3주 동안 가장 큰 스트레스는 머리칼이 빠지는 거였다고 말하니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아직 머리칼이 많다며. 가발을 안 쓰고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반 곱슬이라 머리에 컬이 들어간 덕분이다. 그렇게 또 하나의 터널을 지나왔다.



마지막 항암과 항암 치료 중 마지막 샌드위치.



마지막 항암 소감도 말해볼까 한다. 마지막 항암은 마리오 글루 샘과 진행했는데, 샘이 예전보다 많이 지치고 피곤해 보이셨다. 몸도 더 불어나신 것 같았다. 원래도 통통하신 편이셨는데. 월요일 아침 피검사를 하자 호중구 수치가 낮게 나왔다. 마리오 글루 샘이 호중구 주사를 바로 처방하시고 다음날 아침 또 피검사. 다행히 수치가 정상으로 나와 카페에서 쉬다가 오전에 방사선 치료를 먼저 받고 항암을 했다. 신기했다. 그날은 크게 피곤하지 않았다. 물론 항암을 하는 4시간 동안에는 잠을 많이 잤다. 항암이 끝나면 45분 정도 걸어서 돌아오는데 센 감기약을 먹은 것처럼 정신이 몽롱하기 일쑤다. 그래서 운전도 일도 하기 어렵다. 마지막 항암을 마친 날은 오후에 해가 나고 날씨가 포근했다. 11월 날씨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걷기에도 좋았다. 집에 도착해서도 바로 잠을 자지 않고 아이에게 이른 저녁을 준비해주고 저녁에 평소대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다섯 번의 항암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내게 찾아온 암은 순하고 착한 것 같다.


항암 기간 중 두 번의 야외 산책에 대해서도 얘기해볼까 한다. 한국 슈퍼에서 같이 일하는 J언니는 나보다 한참 연배시지만 부지런하고 몸이 날렵하시다. 평소에도 게으름이라고는 모르셔서 나의 감탄을 부르지만 함께 산책을 가보니 알겠더라고. 물 찬 제비! 경사길에서건 내리막길에서건 속도에 변함이 없었다. 힘 한 번 들이지 않고 가쁜 숨소리 한 번 들리지 않았다. 나? 죽을 맛이었다! 첫 번째 야외 나들이는 항암 넷째 주 일요일. 언니가 사시는 뮌헨 외곽 주변의 숲으로 갔다. 뮌헨 시외를 연결하는 S반을 타고 가서 4시간을 걸었다. 점심시간 때 만나 해가 지고 저녁에 돌아왔는데 이름만 산책이고 반은 산행. 그것도 잘 정돈된 숲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숲에서. 얼기설기 통나무나 돌을 대충 놓은 얕은 개울을 건너다가 물에 발이 빠지기도 했다. 산책 가자 하시길래 이자르 강변처럼 글자 그대로의 산책인 줄 알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따라나섰다가 J언니와 친구분에게 간식을 얻어먹기만 하고 돌아왔다. 그날의 신세를 갚기 위해서라도 두 번째 나들이는 필수였다.


항암 다섯 번째 주말 토요일이었다. J언니가 안데스를 아느냐고 물었다. 안데스 산맥? 아니었다. 안덱스 Andechs라는 수도원이란다. 알고 보니 뮌헨 인근에 있는 수도원인데 돼지 뒷다리 학센 오븐구이와 1455년부터 수도원에서 직접 만드는 오랜 전통의 안덱스라는 상표를 단 다크 비어가 맛있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알 리가 있나. 뮌헨 중앙역에서 S8을 타고 갔다. 평일에도 독일 할아버지들이 점심을 먹으러 온다고 했다. 주말에는 당연히 더 붐볐다. 아이들과 조부모들과 개를 데리고 가족 단위로 온 독일 사람들이 많았다. 여름에는 맥주 주문하는 데만 줄이 엄청 길다고. J언니와 친구분과 나는 S반 종점에서 수도원까지 연결되는 버스를 타지 않고 미리 내려서 걸어서 갔다. 가는 데만 3시간이 넘게 걸렸다. 두 분을 쫓아가느라 땀을 꽤 많이 흘렸다. 그리고 마침내 직접 본 맥주와 돼지고기 학센은 꿀맛이었다! 학센은 하나만 시켰는데 셋이 먹고도 남았다. 맥주는 얼마나 맛있는지 두 잔이나 원샷 수준으로 들이붓고. 가기 전에는 딱 한 잔만 마셔야지 했건만. 언니 친구분이 챙겨 오신 쌈장과 상추와 학센의 조화도 기가 막혔다. 돌아오는 길은 한결 편했다. 1시간 반을 걸었고, S반을 타고 돌아왔고, 다음날은 뻗었다. 듣자 하니 두 분은 다음날도 이자르 강변을 유유히 산책하셨다고. 이자르 강까지 와서 연락을 안 주셨다고 나는 삐지고.


나는 안덱스 다크 비어를, 친구분은 헬레스 라이트 비어를, J언니는 무알콜 바이스 비어를 마셨다. 가운데는 급하게 먹다가 정신을 차리고 사진을 찍은 돼지고기 학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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