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를 읽는 겨울밤은 길어라
자연치유센터에서는 무슨 테라피를 받을까?
입원 첫날. 창가에 둔 책 돈키호테(열린책들). 저걸 다 읽고 나갈 수 있으려나..
자연치유센터에 요양을 온 지 사흘째 아침. 눈이 그치고 해가 나왔다. 흰 눈꽃 가득한 나뭇가지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산책을 가는 숲 속은 발이 푹푹 빠질 정도. 눈과 함께 최고의 힐링 휴가를 보내는 중이다. 올해도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기대를 접어야겠다. 항상 이 무렵 눈이 내리고 나면 성탄절에는 안 내린다는 걸 뮌헨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그래도 모르는 일. 다만 오늘의 눈을 즐기면 될 일.
자연치유센터에 들어온 다음날부터 다리 부종 방지를 위한 림프 마사지를 받고 있다. 작년에는 할아버지 테라피스트 헤어 알더 Herr Alder 씨께 받았는데, 이번에는 매번 다른 테라피스트가 온다. 어제 온 여자분 프라우 카이저 Frau Kaiser는 애만 셋. 그런 분을 만나면 존경스럽다. 리투아니아에서 온 사람이었다. 오늘 온 사람은 젊은 남자 헤어 존 Herr John. 독일 사람 성이 왜 이래? 도버 해협을 건너오셨나? 예사 솜씨가 아니어서 물어보니 뮌헨 시내에 개인 테라피 샵을 따로 운영한다고. 말하자면 투잡. 어쩐지! 묻기도 전에 사보험 환자만 받는단다. 비타민 C 요법도 매일 받고 있다. 이게 절대 싼 게 아닌데. 이분들이 정말 이래도 되시는 건지. 다음 주에는 비싼 고주파 열치료도 4회나 넣어놨던데. 이 정도면 고맙다 못해 미안할 지경이다.
이번에 새로 시도해 보는 건 족욕과 뜸이다. 족욕은 20분. 뜸은 10분간 종 모양의 유리인지 플라스틱인지를 등허리에 붙여주었다. 둘 다 효과는 잘 모르겠다. 좋아지라고 하는 거니 나쁘진 않겠지. 그룹 스트레칭도 참가했다. 매트에 누워 시키는 대로 하다가 살짝 잠이 들기도. 일어나니 개운했다. 손발 붓기에 좋다고 유채씨 Raps를 스테인레스 양푼에 담아왔다. 아침저녁으로 손발을 넣으란다. 전자렌지에 데워도 된다는데 렌지를 마음대로 못쓰고 간호사에게 부탁하는게 번거로워서 자주 쓰지는 않고 아이디어만 배워 간다. 재밌는 건 손발 붓기에 쓰라며 설탕을 올리브유에 재워서 가져다주었는데 효과는 모르겠지만 설탕 가루 달라붙고 나중에 털어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어서 자주는 못하겠더라.
작은 갈색병에 든 오일도 두 가지나 선물로 받았다. 하나는 방사선 후 검어진 피부에 매일 마사지하듯 바르라고. 또 하나는 부종용으로 발과 종아리에 바르란다. 간호사들이 매일 저녁 가볍게 발라주고 간다. 남이 해주니 더 좋다. 간호사들 말이 이 오일 상표인 프리마베라 Primavera가 좋은 제품이란다. 참고하시길. 난 작년에 한국에서 수술 후 독일로 올 때 내 친구 M이 비싼 마사지 오일을 맥주병만 한 크기로 한 통이나 준 게 있어서 그것부터 마저 쓰고 인터넷으로 주문해볼까 한다(이러니 약국들이 문을 닫지. 우리 동네 지하철 역 앞 아포테케 Apotheke도 이번 주에 문을 닫는다. 너무 아쉽다. 이 추위에 한 블럭 더 먼 약국까지 다닐 생각을 하니). 테라피스트들에게 물으니 크림보다는 오일이 효과가 크다고. 오늘 존 씨는 부종에 대해 묻는 내게 부종 환자들에게는 수영이 좋고, 특히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는 오케이, 커피는 금물. 최근에 커피를 끊길 잘했다(이런 질문에 자기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해주는 사람도 오랜만에 만났다. 독일에서는 만나기 힘들다..).
둘째날 아침/점심/저녁(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이런 아침빵과 점심 수프다(가운데). 대접 사이즈라는 게 젤 마음에 든다! 세째날 아침/점심/저녁(아래).
식이 전문가도 내 방을 방문했다. 젊은 수습 여의사 리스아우스 Dr. Liesaus 샘의 추천으로. 식이 전문가가 가장 선호하는 식단이 뭐냐고 묻길래 아침은 뮤슬리와 통밀 잡곡빵, 점심은 따듯한 수프, 저녁은 익힌 야채와 수프와 빵 한 조각이라고 말했다. 첫날 저녁 찬 생샐러드를 먹고 소화가 잘 안 되고 복부에 가스가 차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녀가 나간 후 당장 점심때부터 감자 수프가 대접으로 나왔다. 아, 행복했다! 저녁도 단호박 수프와 익힌 야채와 빵 한 조각으로 완벽했고.
눈빛이 선해보이는 식이 전문가가 아마씨도 먹어보겠냐고 해서 먹는 법을 물어보았다. 아시다시피 아마씨는 항암 환자들에게 강추인 오일이다. 참기름과 마찬가지로 요리에 직접 쓰면 안 되고(그런데 미역국을 끓일 때는 참기름으로 미역이나 황태채를 먼저 볶는 게 우리의 클래식 아닌가?), 요리가 끝난 후 참기름처럼 뿌려 먹으면 된다고. 수프나 샐러드나 요구르트나 뮤슬리 등에 넣어도 되고. 또는 티스푼으로 한두 스푼을 약처럼 마셔도 좋고. 참기름 대신에 요리에는 들기름을 쓰고 사용한 들기름은 냉장 보관하는 것이 좋듯 아마씨도 냉장고에 보관하고 2개월 안에 다 먹는 게 좋다고 한다. 아침마다 아마씨를 추가로 줄 테니 원하는 대로 먹어보란다. 이렇게 친절할 수가!
재밌는 건 대화가 끝날 무렵 그녀가 주말에만 쿠헨이 나오는데 먹어보겠냐고 물어본 것이다. 암 환자인데 단것을 먹어도 괜찮냐고 되물었더니 양이 많지만 않다면 주말에 쿠헨 한 조각이나 초콜릿 한 조각 정도는 괜찮다고. 그 한 조각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냐고. 그녀의 대답이 마음에 들어 오케이 했더니 점심 때 크리스마스 쿠헨이 나왔고 맛있게 먹었다.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족욕 용 욕조. 팔과 다리 용이 각각 있다(위). 족욕 자체보다 창밖의 눈 구경이 압권이었다. 입원실에 가져다 준 마사지 재료들(아래).
내가 입원해 있는 입원실에는 매일 신문도 가져다준다. 남독일 최대 일간지 쥐트 도이체 차이퉁Süddeutsche Zeitung. 잘 읽지는 않는다. 독일어만 봐도 멀미가 나서. 쉬러 왔는데 자신을 괴롭히면 쓰나. 개인 텀블러에 뜨거운 물을 여러 번 받아오기 귀찮아서 보온병을 찾으니 간호사가 하나를 따로 챙겨주었다. 겨울이라 다들 차를 마시는지 보온병이 없어서 사흘 만에 가져다주었다. 오전에는 의사샘과 간호사 샘들이 오가고 테라피 일정도 있어서 산책을 못하고 오후에 산책을 간다. 보통 오후 3시 이후. 그때 만난 여인이 있는데 이름은 Fatima. 엥? 내가 최근에 먹고 있는 약 이름도 파티마 Patima인데? 스펠링은 달라도 한국말로는 발음이 같다. 뮌헨에 살고 있고, 어깨와 목 통증 때문에 왔고, 열흘 동안 치료차 있는단다. 우연인데 신기하다.
간호사 Frau 하글도 오늘 처음 만났다. 내 입원실 창가에 둔 책과 조각상을 보고 나에게 직업을 물어봐도 되냐고 물었다. 직업요? 한국 식품점에서 일한다고 했다. 혹시 문학 쪽에 관심이 많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다. 창가에 햄릿 책 위에 올려둔 조각상을 궁금해해서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돈키호테)라고 말해주었다. 한글학교 학예회 때 가져갈 쟁반을 사러 세컨드 핸드 샵에 갔다가 발견한 보물들이다. 잘 보이게 창가에 책과 함께 두니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말하자면 플라세보 효과 같은 것. 괜히 독서빨이 잘 받는 것 같은. 셰익스피어는 아래쪽에 이름이 새겨져 있고, 딱 봐도 셰익스피어다. 돈키호테에는 어떤 이름이나 힌트도 없다. 돈키호테처럼 깡마른 남자가 책을 들고 서 있다. 발 밑에는 성경책. 책벌레였던 돈키호테를 보는 것 같다. 아님 말고. 나만의 돈키호테라는데 누가 뭐람.
돈키호테를 읽는 겨울밤은 길다. 소리없이 눈 오는 밤도 길고, 병원의 밤은 더 길고, 돈키호테는 말해 무엇. 책 앞쪽의 서두만 해도 그렇다. 장황하다. 앞부분을 겨우 읽어치우고 제1부로 들어갔다. 아직 산초는 만나지 않았다. 호기롭게 집을 떠난 첫날 돈키호테는 더위와 굶주림에 지친 그의 말 로시난테와 함께 객줏집에 도착했다. 이제 시작이다. 가자, 로시난테여. 가자, 돈키호테여. 눈밭이든 가시밭이든 모두 헤치며!
셰익스피어와 돈키호테 혹은 세르반테스를 연상시키는 나무 조각상(위). 눈이 그친 세째날 요양실 창밖의 풍경(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