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마녀 카페에서 문학 특강을 준비하던 오후. 1강은 <변신>. 2강은 <노인과 바다>.
그리운 샘.
제 꿈은 한글학교의 '문학' 선생님이에요. 5년 전 세계문학전집을 싸들고 독일로 올 땐 단순히 책을 읽고 글을 쓰자는 생각 밖에 없었죠. 꿈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일상을 살아가는 힘 정도의 의미로요. 왜 꼭 '문학'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어요. 문학 이외의 다른 즐거움은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이 안 나네요. 그래요, 마지막 보루. 독일에 온 후 한동안 사는 게 지루해서 생각 없이 몸만 쓰는 알바 일을 찾아 돌아다니기도 했어요. 그러다 암이 찾아왔죠. 제 나이 오십 둘에요.
삶이 참 버라이어티하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흔둘에 아이를 낳고 10년 만에 다시 암이라니요. 사는 게 따분해? 겁나게 긴박한 삶이 뭔지 한번 경험하게 해줘? 그렇게 암은 삶이 준비한 관대한 선물 같기도 했어요. 목표가 있는 삶말이에요. 저를 살린 건 어쩌면 암인지도 몰라요.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제 인생이 억울하단 생각은 안 들었어요. 억울할 게 없으니까요.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았잖아요. 가족들에겐 조금 미안했죠. 아이를 늦게 가진 부모로서이런 경우까지 염두에 두었어야 하는데 생각을 못했거든요.천 년 만 년 건강할 줄 알았겠죠.
제 꿈은 정확히 암과 함께 태어나고 자랐어요. 뭐라도 붙잡아야 했거든요. 살아야 할 이유 같은 거요. 아이를 위해서, 같은 상투적인 거 말고요. 내가 누구인지, 왜 태어났는지, 죽음 이후엔 뭐가 있는지, 그런 근본적인 질문도 내다 버렸어요. 답도 없는데 질문까지 무겁잖아요. 언제 가장 즐거웠나, 언제 '절대 자유'를 느꼈나, 마음의 공간이 무한대로 확장된 건 언제였나, 그런 게 중요했어요. 그리고 '문학'. 그래서 '문학 선생님'이었어요. 뮌헨의 한글학교에서요. 어떻게,라는 고민은 때가 되면 길이 보이겠지,로 바꾸었죠. 태어나서 처음 가져본 꿈이었어요. 저는 꿈이 없었거든요. 알리시아가 대학 가면 한국에 왔다 갔다 하며 살고 싶다, 그런 소망정도가 다였어요.
3월에 있을 3강은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
샘. 저는 말의 힘을 믿어요. 언제 이 꿈을 최초로 가지게 되었나 곰곰이 생각하다가 떠오른 장면이 있어요. 첫 항암이 끝나고 클레멘스와 산책을 갔을 때였어요. 이야기를 좋아하는 클레멘스에게 어쩌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당연한 의심>을 들려주었나 모르겠네요. 아이가 없던 부부가 키우던 개가 기고만장하다가 아기가 태어나고 자신에게 집중되던 관심이 사라지자 질투심과 적개심에 휩싸여 불행한 사고를 낸다는 스토리예요. 아마도 알리시아가 개를 키우고 싶다고 자꾸 조르던 때였나 봐요. 독일어와 영어를 대충 섞어 이야기했는데 재밌게 들어주더라고요. 세밀한 묘사가 안 되니까 이걸 우리말로 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워하다 불쑥 이런 말이 튀어나왔어요. 나, 한글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문학을 들려주고 싶어! 옆에서 손잡고 걷던 클레멘스는 가만히 웃기만 했어요. 와이프가 못 말리는 사람이란 걸 인증이라도 하듯이요. 이와중에 그게 말이 되냐, 그런 소리는 안 했어요.
또 기억나네요. 어느 날은 알리시아랑 산책을 갔어요. 딸과의 산책이 드문 일이라 기분이 좋아진 제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낯선 여인의 편지>를 들려줬어요. 어떤 소녀가 옆집에 이사 온 독신의 플레이보이 남성 작가를 짝사랑하는 이야기예요. 그를 사랑했던 소녀는 현관의 열쇠 구멍으로 날마다 그의 외출과 새벽의 귀가를 지켜보며 감정을 키워가죠. 소녀는 이사를 가고, 처녀가 되어 남자가 사는 도시로 돌아옵니다. 우연을 가장해서 남자를 만나고 같이 하룻밤을 보내요. 당연히 남자는 그녀를 기억도 못합니다. 여자는 그의 아이를 낳고 혼자 기르기로 결심하죠. 어느 날 남자는 익명의 편지를 받아요. 낯선 여인에게서 온 두툼한 편지를요. 그녀의 아이가 죽었답니다. 남자에게 모든 진실을 밝히고 여자도 죽습니다. 그제야 남자는 자신의 생일 때마다 장미꽃을 보낸 사람이 미지의 그 여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이야기는 역시 한국말로 해야제 맛인가봐요. 이야기가 끝나도 알리시아는 조용히 아무 말이 없었어요. 그때도알리시아에게 선언했던 거 같아요. 엄마는 이야기 샘이 되고 싶어!
우리 동네 엔티크 숍에 걸린 그림들. 화가는 누군지 모른다.
샘.
작년 7월이었어요. 한글학교의 Y 선생님이 문학 수업을 1시간 해달라고 요청하셨어요. 냉큼 오케이 했죠. 카프카의 <변신>을 했어요. 의외로 아이들이 잘 들어주더라고요. 올해 초 Y 선생님을 다시 만났을 때 문학 수업을 한 번 더 부탁하시길래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하겠다고 했죠. 이번에는 여름방학 전까지 조금 오래 할 계획이에요. 대상은 뮌헨의 한글학교 사과반. 초등 3, 4학년 학생들이에요. 연령대를 생각하면 이야기가 재미있어야겠고, 50분 수업이라 스토리가 너무 길거나 복잡해도 안 되겠네요. 1강은 다시 <변신>, 2강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했어요. 파싱 봄방학이 끝나는 3월에는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를 할 생각입니다. 네, 맞아요. 제 목표는 세계문학이에요. 한글학교 아이들은 집이나 학교에서 전래동화를많이 접할 거예요. 저는 아이들에게 전래동화 말고 진짜 문학, 고전문학을 들려주고 싶어요. 문학의 세계가, 문학의 숲이, 문학이라는 바다가 얼마나 광활하고 깊고 아름다운지 아이들이 알게 되면 좋겠어요. 첫 수업 <변신>을 하던 날은 제 생일이었어요. 이날 수업이 제게 얼마나 큰 선물이었는지 Y 선생님은 모르실 거 같네요. 저는 이날을 제 인생의 '변신 데이'로 기억할거 같아요.
그리고 Y 언니의 쌍화차가있답니다. 언니가 따뜻한 남쪽 도시 성당 수녀님들이 직접 만드신 쌍화차를 보내주었거든요. 문학 수업을 시작하던 그 무렵이었어요. 매일 아침 뜨거운 쌍화차를 마시며 언니를, 한국을, 샘을, 친구들을 생각합니다. 멀리 있어도 저는 외롭지 않아요. 제 가슴을 뛰게 하는 문학이 있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매주 한 명의 작가와 한 권의 책과 사랑에 빠지는 경험도 놀랍도록 신비롭습니다. 샘이 오랜 시간 독서 모임을 진행하시며 책과 함께 성장하고 자아를 발견해 나가는 참가자 한 명 한 명에게 느끼시는 경이로움과도 비슷할 거예요. 저 역시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할지 고민하고 궁리하는 시간들이 소중하고 즐겁습니다. 1,2강 때는 긴장도 됐던 거 같아요. 의욕도 앞섰고요. 3월에는 힘을 더 빼야겠어요. 멀리 보고 길게 갈 생각이라서요. 재능 기부 차원으로 이번 학기에만 하는 수업이지만 첫 걸음으로 충분합니다. 샘의 독서 모임 얘기도 듣고 싶네요. 봄이 멀지 않은가 봐요. 뮌헨은 어제 봄밤 같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