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방사선 치료가 끝나갑니다

뮌헨의 편지 79

by 뮌헨의 마리
봄비 내리던 3월 말의 산책길.



그리운 샘께.


드디어 4월입니다. 방사선 치료도 끝나갑니다. 매주 목요일엔 방사선 기계 점검이 있나 봐요. 아침 일찍 가야 하거든요. 이번주도 그랬습니다. 평소 이른 아침 치료를 선호하긴 하지만 이번엔 아침 7시 20분까지 올 수 있겠냐는 거예요. 아이고 참. 당연히 갈 수 있다 했죠. 숙제든 일이든 빨리 끝내는 게 낫잖아요. 수요일과 목요일은 오후 시간을 비워두고 싶기도 하고요. 알바를 하는 한국슈퍼에서 화요일 오후에 와야 할 물건들이 하루 이틀 늦어질 때가 있기 때문이에요. 집에서 병원까지는 지하철 우반과 트람을 갈아타고 30분 정도면 됩니다. 새벽 6시 반에 알리시아 도시락과 물병을 챙기고 비가 오길래 우산까지 들고 달려 나오니 진료 시간에 맞게 도착했어요.


그날은 새벽부터 무슨 봄비가 그리 대차게 쏟아지던지요. 다행히 바람은 불지 않고 날씨도 차갑진 않았어요. 독일은 3월 마지막 일요일부터 서머타임이 시작되었답니다. 독일에서도 서머타임이 불필요하다, 의미 없다, 귀찮다 등등 여론이 많아져 곧 없어질지도 몰라요. 그렇잖아요. 사계절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즐기면 되지 왜 인위적으로 시간을 조절하려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헷갈리잖아요. 한국과의 시차도 줄었다 늘었다 하고요. 서머타임인 봄부터 가을까지는 한국과의 시차가 8시간에서 7시간으로 줄어 좋기는 하지만요. 아침 7시인데 병원으로 가는 길이 빗속에도 어둡지 않더라고요.


이른 아침엔 치료 대기 시간이 짧아서 좋아요. 얼마 기다리지 않아 제 이름이 불리거든요. 부리나케 지하 방사선 치료실로 내려갑니다. 마침내 10분간 휴식! 이런 기분으로 치료대에 눕습니다. 눈을 감고 그 짧은 시간에 무심의 공간에 다다릅니다. 간호조무사들이 제 몸 아래에 깐 수건을 이쪽저쪽으로 당겼다 놓는 기척, 윙 하며 방사선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제 몸이 깊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느낌이 익숙하고도 편안합니다. 이번주 저는 방사선 치료 3주 차였어요. 4주 치료가 목표라 다음 주만 남겨두고 있어요. 이번에도 구토나 설사 등 부작용은 없었답니다. 치료를 시작한 지 열흘 후부터는 허리 통증도 사라졌고요. 처음엔 통증이 왔다 갔다 했는데, 그후 없어졌고 아직까지 돌아오진 않고 있네요. 치료 덕분이 아닐까 싶어요. 간헐적 단식도 계속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입맛을 잃은 적은 없고요. 평소보다 적게 먹어서인지 한 달 만에 2~3킬로가 줄어서 몸이 조금 가벼워졌어요. 방사선 치료는 다 좋은데 매일 병원을 오가는 게 피곤하고 성가실 때가 있어요. 치료가 끝나면 걸어서 옵니다. 산책로엔 아직 봄이 안 왔어요. 나무들이 연둣빛으로 물들려면 한 주는 더 기다려야 할 거 같아요. 뮌헨의 동네마다 성격 급한 벚꽃들은 앞다투어 피고 있는데 말이에요.



방사선 치료가 끝나고 산책길로 가는 동네에 벚꽃이 피었다.


샘.

알리시아는 어제부터 2주간 부활절 방학에 들어갔어요. 방학 끝나는 날부터 친구 집에 달려가서 파자마 파티를 하고 왔고요. 일요일엔 방학이니 자기를 건드리지 말라네요. 늦은 아침을 먹고 나서는 자기 방 2층 침대 아랫칸 해먹에 드러누워 뒹굴뒹굴하고 있어요(아직까지 방문을 걸어 잠그거나 꽝 닫거나 하지는 않고, 자기 방문을 열어놓아도 별말은 없네요). 우리가 자기를 건드릴 일이 뭐가 있나요. 정오까지 안 일어나길래 두 번쯤 깨웠어요. 가족이라면 주말 브런치 정도는 같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아무리 사춘기 문지방에 서 있는 자식이라도 지나치면 균형을 잡아주는 게 부모의 일이죠(아직 사춘기의 맵고 무섭고 혹독한 맛을 몰라서 이러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요즘 저는 이런 균형 감각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형평이라고 할까요. 조화라고 할까요.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잃어 암이 찾아온 이후로 더욱 자주요. 암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저체온과 저산소를 꼽지요. 인정합니다. 저에게도 해당되는 것 같아요. 거기에 스트레스와 식생활과 운동과 수면이 추가되겠네요. 다 맞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들과 몸과 마음의 균형 혹은 밸런스가 미묘하게 어긋나서 이 사단이 다고 결론 지었습니다. 너무 기뻐도 너무 슬퍼도 너무 좋아도 너무 싫어도 문제겠지요. 적당히 기쁘고 적당히 슬프고 적당히 좋고 적당히 싫어야 하는데 그게 또 안 된다는 게 함정입니다. 2년째 투병 중인 저에게 필요한 균형 감각은 일상에 집중하기입니다. 내일 죽는다고 당장 정원 있는 집을 사서 사과나무를 심기야 하겠습니까만,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책을 읽고 일요일 저녁 공연을 보고 새순이 나오길 기다리며 산책하는 순간을 불안과 공포와 연민과 슬픔과 괴로움으로 채우지는 않으려는 겁니다. 압니다 샘. 이것도 아직 살 만하니 나오는 소리라는 것을요. 암으로 꼭 죽으란 법은 없지만 죽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으니까요.

가끔 이런 생각도 합니다. 삶은 우연의 연속일 뿐 거기에 필연이란 없다고요. 타고난 운명이나 숙명 같은 건 원래 없고 나중에 그럴싸하게 짜 맞춘 건 아닐까 하고요. 어쩌다 보니 렇게 태어났고, 어쩌다 보니 남들보다 먼저 혹은 늦게 돌아갈 뿐이라고요. 얼마나 가벼운 삶의 태도인가요. 저처럼 투병 중인 사람에게는 특히나 밑질 것 없는 생각이라고 봅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면 그런 생각이 더합니다. 만족스러운 저녁을 먹고, 가족들은 저마다 할 일을 하고, 저 역시 부엌을 정리하고, 다음날 아침 식탁까지 세팅하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로 아갈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죽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 깊은 만족과 평안을 가져다주는 저녁의 잠자리 같은 것. 남은 자들의 슬픔은 그들의 몫으로 남겨두고요. 가는 이들이 그것까지 지고 갈 순 없지요. 잠자리가 편안하지 못할 테니까요. 때로 죽음을 가볍게 보는 연습도 필요한 것 같아요. 딱히 할 일도 없고 꼭 지켜야 할 약속도 없어 태평하고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입니다. 창밖은 흐리고 쿠션을 놓아두고 낮에는 소파로 쓰는 침대는 아늑합니다. 이런 날 하기 좋은 생각들입니다. 샘, 남은 방사선 치료 잘 끝내겠습니다. 샘의 봄날도 평안하시기를.



우리 동네 꽃집의 꽃들. 저 봄의 빛깔을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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