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저는 인생 최고의 생일 선물을 받았습니다.생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아온 제게 떠들썩한 파티 같은 건 곤혹스럽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친구들과 차 한 잔, 좋은 사람들과 밥 한 끼 먹는 게 최고의 생일 축하였죠. 독일에 와서부터는 생일이라고 따로 미역국을 챙겨 먹은 적이 없네요. 귀찮고 번거로워서요. 올해도 잊고 지날 뻔했는데 생일날 아침 한국에서 숙모와 사촌 동생들의 축하 톡을 받고서야 알았어요. 아, 그렇지, 오늘이 내 생일이지! 독일 가족들요? 시어머니 두 분은 미리 봉투를 주셨고, 클레멘스와 알리시아는당일 깜박한 듯해서 가만히 내버려 뒀지요. 그런데요 샘, 올해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몇 가지 깜짝 선물을 받았답니다. 그중에는 제 꿈과 관련해서 생애 최고의 선물도 있고요.
매년 생일날이 되면 힐드가드 어머니와 카타리나 어머니 두 분 시어머니께 선물을 받았죠. 그러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선물을 고르기 힘드신지 그냥 봉투로 주셨어요. 얼마나 편하던지요. 선물이란 게 그렇잖아요. 결국 본인이 좋아하는 걸 고르게 되는데그게 상대방의 마음에 들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힐더가드 어머니께서 이체하신 금액은 액수도 묻지 않고 클레멘스와 공동 계좌에 묻어 두었답니다. 지난 밀라노 여행 때 클레멘스가 플릭스 버스에, 호텔에, 공연 티켓까지 모두 결제해 주었거든요. 대신 카타리나 어머니께서 주신 봉투는 살뜰히 챙겼어요. 그걸로 뭘 하고 싶은지 궁금해하시는 어머니께 올봄 뮌헨에서 있을한국인 피아니스트 조성진 공연을 보러 가겠노라 말씀드렸더니 좋아하셨어요. 저에게 주는 아주 특별한 생일 선물이 될 것 같아요. 벌써 5월이 기다려지니까요.
베아테를 위해 준비한 꽃다발(위). 아래는 꽃집의 꽃들.
다음은 알리시아 초등 친구 카타리나 집에 초대를 받은 거랍니다. 초대받은 날이 바로 제 생일이었어요. 카타리나 엄마 베아테는 제 생일인지도 모르고 초대했겠지만요. 클레멘스가 그 집에서 저녁을 먹을 때 어떻게 알았는지 제 생일이라고 발표를했어요. 깜짝 놀란 카타리나 가족 네 명이 그 자리에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답니다. 가족 성가대인가 싶을 만큼 조화롭고 아름다운 노래였어요. 알고 보니 알리시아가 파파한테 슬쩍 알려줬대요. 알리시아는 또 어떻게 기억이 난 걸까요. 나중에 물어보니 그냥,이라며 자기는 다 안대요. 저런 허세를 보니 사춘기가 맞나 보네요. 베아테와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알던 사이예요. 그녀는 우리 아이들이 초등 마지막 해인 4학년 때 자궁암에 걸린 후 지금까지 투병 중이라고 해요. 저도 뒤늦게 알았어요. 제가 먼저 암 커밍아웃을 하고 나서 한참 후에야 말해주었으니까요. (뭐죠, 독일 사람들의 이 신중함..)
그날 베아테는 쿠헨을 두 개나 구워 놓고 오후의 티타임을, 생선 요리로는 저녁을 준비했어요. 제가 직접 생일 상차림을 한대도 그 정도로는 못했을 거예요. 얼마나 보기 좋고 맛있었는지 몰라요. 저는 그날 애정 어린 생일 저녁상을 받고 돌아왔답니다. 저녁까지 준비를 할지도 모르겠다 생각은 했어요. 방문하기 며칠 전 카타리나가 우리 가족이 생선을 좋아하는지 물어보더라고알리시아가 알려줬거든요. 우리는 베아테를 위해 우리 동네 단골 꽃집에서 신중하게 고르고 고른 꽃으로 꽃다발을 들고 갔고, 온 가족을 위해서는우리 동네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디저트 집에서 앙증맞은 색색의 조각 케이크를 여덟 개 사들고 갔죠. 다음날까지 먹으라고요. 카타리나 가족이 달콤한 걸 좋아하거든요. 아쉽게도 음식이나 디저트는 사진을 못 찍었어요. 베아테가 스마트 폰을 싫어해서 아직도 안 쓰거든요. 그 집에 있을 동안은 폰을 가방에 넣어두고 쳐다도 못 본답니다. 꽃다발만 꽃집에서 급히 찍어두었고요. (디저트 사진도 미리 찍어둘 걸 그랬어요..)
남편과 아이와 저녁에 집 앞 이태리 레스토랑 소피아에서 내 생일을 축하함. 이런 소박한 축하는 사양하기 어려움.
저녁 식사 전에 양쪽 남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올림피아 공원으로 산책을 다녀왔어요.저는 그동안 베아테로부터 슬픈 소식을 들었고요. 폐에 전이가 왔대요. 베아테가 말했어요. 자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요.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어요. 베아테나 저나 우리 딸들이 아직 열세 살밖에 안 됐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약한 소리를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혹시나 하고 제가 두 달을 먹고 가슴뼈 사이즈가 조금 줄은 파드마(Padma activ 28) 약을 권해봤지만 약 복용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의사의 지시를 따르는 것 같았어요. 제게 파드마를 권한 피트니스 트레이너 탄야의 할머니도 폐암이셨지만 이 약을 먹고 나으신 후 건강하게 살다 돌아가셨다고 들었거든요. 베아테를 방문하기 전에는 폐에 전이가 왔을 줄 꿈에도 몰랐지만요. 아무튼 베아테가 강건하게 버텨내길 바랄 뿐이에요. 엄마는 강하니까요. 꼭 그래야 하고, 반드시 그럴 거라 믿어요.
베아테 집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은 조금 힘들었어요. 긴 방문이었는 데다 그녀의 전이 소식으로 마음이 무거웠거든요. 집 앞에서 클레멘스가 굳이 이태리 레스토랑 소피아에 들르자고 하네요. 와인이라도 한 잔 하자고요. 아침에 생일을 잊어버린 게 미안했던 거겠죠. 피곤하다고 그런 성의마저 무시하면 안 되니까 딱 30분만! 아직은 추운 2월의 동네 식당은 밤 10시가 넘도록 만석이었어요. 단체 손님까지 있어서 떠들썩했죠. 우리가 앉은 창가에서 우리 집이 올려다보였어요. 집 앞에 있으니 안심도 되고 마음도 느긋했지만 와인은 1/5 잔만 주문했어요. 빨리 마시고 따듯한 집으로 올라가고 싶어서요. 가족이 있고, 늦은 밤 돌아갈 집이 있고,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은 생일날 밤이었어요.며칠 후엔 산책을 하던 길에 동네 엔틱 가게에서 노란 쿠션 두 개를 샀고, 예쁜 소품들을 찍고, 마음에 드는 램프도 찜하고 왔어요. 침대 옆에 켜두고 봄을 기다리며 책을 읽을 일이 생길 것 같거든요. 기대하세요! 곧 공개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