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의 마지막 날은 18도였습니다.그날밤 뮌헨의 밤은 포근했고, 이자르 강에서는 불꽃놀이가 대단했죠. 지난 코로나 3년을 마감하는 성대한 축제 같았어요. 불꽃놀이는 자정 전후로 1시간이나 이어졌어요. 시끄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속이 후련하더라고요. 우리에게 찾아올 새로운 한 해가 축복처럼 느껴졌어요.
그날 우리는 율리아나 집에서 연례행사처럼 저녁을 먹었어요. 율리아나 엄마와 아빠가 태국 커리와 태국 찐빵과 칵테일을, 저는 김밥과 김치전과 과일을 준비했죠. 두 가족이 딱 먹을 만큼만차려낸 정갈하고 소박한 밥상이었어요. 율리아나 엄마 이사벨라 덕분이었죠. 남기면 뭐 하나, 조금씩만 준비하자. 거창한 밥상을 안 좋아하는저와 그녀의 마음이딱 맞아떨어진거죠.
저녁 8시에 저녁을 먹고 이사벨라가 준비한 새콤달콤한 칵테일을 마시며 수다를 떨어도 카운터다운까지 시간이 한참이나 남아서 밤 11시에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갔어요. 이사벨라와 남편 지미만 집에 있고요. 자정 30분 전부터 시작된 불꽃놀이는 자정이 가까워지자 밤하늘을 수놓기 시작했어요. 카운트다운을 이사벨라네랑 해야 할 것 같아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들을 뒤로하고 이사벨라 집으로 달렸죠. 불꽃놀이 계속 보겠다고 버티던 클레멘스도 같이요. 우리 등 뒤로는 전쟁터에 포탄이 쏟아지듯 밤하늘이 환했어요.
2022년의 마지막 저녁 식사는 아이의 절친 율리아나 집에서.
크리스마스이브날에 병원에서 나와 레겐스부르크에 갔어요. 힐드가드 어머니 댁에서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 날 이틀을 자고 다음날인 26일에 카타리나 어머니 댁으로 가는 게 연례행사거든요. 병원에서 보낸 꿈같은 휴식의 시간은 열흘 남짓인데 그쯤 되니 슬슬 집에 가고 싶기도 했고요. 독일은 크리스마스인 25일과 26일이 공휴일이랍니다. 시어머니가 두 분인 저는 한국의 명절에 시댁과 친정을 오가듯 성탄 전날부터 사흘간 두 분을 방문하고 왔어요. 올해는 힐드가드 어머니 댁에서 하루만 자고 왔어요. 클레멘스가 감기 기운이 있는지 집에 가고 싶다 해서요. 그 길로 기침감기를 열흘이나 했는데 클레멘스가 끝나자 이번에는 제가 감기에 걸렸어요.크리스마스 음식으로는 치즈 없이 샤브 비슷한 느낌으로 육수에 야채 고기 퐁듀를 먹었어요.
슈탄베르크의 카타리나 어머니 댁에서는 클레멘스가 메인(타펠 슈피츠, 독일식 소고기 수육)을 준비하고 시누이 바바라가 애플 쿠헨을 구웠어요. 저는 온 가족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했고요. 양아버지 오토 딸과 손녀가 감기로 못 와서 선물 준비하기가 쉬웠어요. 요즘엔 두 시어머니께서 선물을 직접 사지 않으시고 한국처럼 현금 봉투를 딱 주시니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필요한 건 너희가 직접 사거라! 네 어머니, 정말 감사하죠. 필요 없는 선물을 받고 난감할 일이 없어지니까요. 저는 새로 산 등산화를 포장하고, 알리시아는 산더미 같은 책과 책장을 덮고도 남을 장식 등을, 시부모님들께는 알리시아가 8시간 동안 만들고 쓴 카드가 최고의 선물이 되었죠.
카타리나 어머니 댁의 크리스마스 장식.
샘.
새해부터 이틀을 한국 슈퍼에서 근무하고 돌아오던 날 감기증세가 있었어요. 목이 칼칼하고 마른기침도 나고요. 그로부터 사흘을 집에서 꼼짝도 안 하고 쉬었어요. 작년 12월부터 애들 학교와 이웃들과 직장 동료들이 기침감기를 돌아가며 했거든요. 코로나도 아니고 다른 증세는 없는데 유독 기침이 심했어요. 저는 다행히 심한 편은 아닌지 많이 좋아지고 있고요. 사흘째는 맑은 콧물이 나와서 코가 빨개지도록 코를 풀긴 했지만요. 이번 주말까지 푹 쉬면서 회복해 보려 합니다.
이번 토요일에는 힐더가드 어머니가 프리다 칼로 전시회를 보러 뮌헨에 오시기로 했어요. 저는 감기로 안 나가는 게 나을 것 같아 바바라가 같이 가기로 했는데 무슨 영문인지 기차가 움직이질 않아 아침에 출발하셨다가 레겐스부르크로 되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왔어요. 어머니의 실망이 크실 것 같네요. 다음에 또 오셔서 저랑 같이 가자고 왓쯔앱을 드렸어요. 산다는 건 예기치 못한 일의 연속 같아요. 그런 일에도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 아닐까 싶네요.
얼마 전에 언니가 그런 얘길 하더라고요. 법문을 들으러 갔더니 스님께서 도를 이룬 스님이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시더래요. 이분이 시골의 작은 암자에 계신 노스님을 만나러 갔더니 노스님이 살다가 피곤하면 쉬러 오라 하셨대요. 텃밭 말고는 할 일도 없어 보이는 작고 작은 암자에서 대체 노스님은 어떻게 소일하시나 여쭈니 노스님이 그러시더래요. 산골에서도 삼시 세끼 챙겨 먹으려면 하루가 바쁘시다고. 아침 공양 준비해서 먹고 돌아서면 점심 공양 준비하고, 점심 공양 마치고 텃밭 한번 다녀오면 저녁 공양이고. 그래서 지루할 틈이 없으시다고요. 도란 특별한 게 아니고 도를 깨친 사람은 그분처럼 평범한 일상과 내게 주어진 하루와 순간순간을 성실히 사는 사람이라고요. 동의합니다.
힐더가드 어머니 댁 크리스마스 풍경.
샘. 뮌헨의 저희 동네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있습니다. 작년 초봄에 문을 닫았던 지하철역 빵집은 가을에야 새로운 빵집이 문을 열었어요. 저는 아직 안 가봤어요. 클레멘스가 그 집에서 사 온 빵이 크게 맛이 없고 가격도 비쌌거든요. 동네 빵집이 그러면 안 되는데 실망이 컸어요. 작년 연말에는 새 빵집 옆 약국이 문을 닫았는데 앞으로 어떤 가게가 들어올지 궁금해요. 우리 동네의 제일 큰 변화는 뮈니뭐니해도 새로 들어올 체인 빵집입니다. 저희 집 골목 끝에 있는 대형 마트 에데카 Edeka 옆이에요. 원래는 큰 유기농 가게였는데 작년 여름에 문을 닫았거든요. 대형 체인 빵집이 동네에 오픈한다니 주민들에겐 반갑기도 하고 편하기도 하겠지만 당장 우리 동네 작은 카페들과 빵집들이 경쟁에서 살아남을지가 걱정이네요. 보나 마나 싸움이 안 될 테니까요. 도로변도 아닌 골목으로 대형 빵집이 치고 들어올 줄은 몰랐어요. 아침에 그 소식을 전하던 클레멘스도 걱정을하더군요.
2022년을 보내며 저도 한 가지 후회를 했습니다. 마지막 날 불꽃놀이를 다 보고 올 걸. 클레멘스나 아이들한테도 미안했고요. 어리석음과 고집이 항상 최고의 즐거움을 뺏는구나 뼈저리게 반성하면서요. 후회가 무슨 소용인가요. 2022년 우리가 놓친 불꽃을 2023년 매일 매 순간 터뜨려주자!그래서 저는 새해에는 제 병을 잊고 즐겁게 살려합니다. 감기를 핑계로 나흘째 뒹굴거리며 각오를 다지는 중이에요. 10년 전 한국에서 놓친 <미생>을 보며 계속 감탄을하면서요. K드라마 잘 만드네, 연기 잘하네, 제 직장 시절과 동료들도 떠올리면서요. 잘들 지내겠지요.직장의 추억은 믹스 커피와 회식의 추억으로 귀결된다는 걸 <미생>이 알려주더라고요.
샘. 연말과 새해는 직장인들에게 정신없이 바쁜 때겠지요. 저 역시 이삿짐 싸듯 부랴부랴 한 해를 넘기고 새해로 넘어온 기분이에요. 감기로 쉬던 첫날에야 두루두루 한국에 새해 인사를 보냈으니까요. 연말에 뮌헨의 길거리에서 본 전시회 포스터를 기억합니다. 누군지는 몰라요. Etel Adnan 이란 화가 이름도 그의 그림도 처음 보고 듣거든요. 그 포스터를 같이 본 친구와 전시회를 보려고 아껴두고 있답니다. 이제 점심도 준비하고 세탁기에서 빨래도 꺼내야 합니다. 새해엔 집안 일도 도 닦듯 해야겠어요. 성질내지 말고요. 요리, 설거지, 빨래, 청소 등을 하나씩 끝낼 때마다 불꽃 이모티콘을 쏘며 생색도 내고요. 혼자만 하지 말고 가족들 찬스도 쓰고요. 집안일을 가르치는 건 부모의 의무이자 아이에겐 자립의 기초가 되니까요. 샘도 새해엔 더욱 건강하시고, 여름에 뵙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