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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Mar 07. 2023

간헐적 단식을 시작하다

3차 방사선 치료

나의 아침이었다가 간헐적 단식 이후 내 브런치가 되고 아이도 아침에 먹기 시작한 뮤슬리. 남편이 아침마다 사오는데 이것도 직접 해 봐?(과일과 견과류 토핑은 내가 했다..)



간헐적 단식을 시작한 지 1주일이다. 이름이 거창할 뿐 실제로 해보니 내게 최적화된 다이어트법이었다. 아침에 고프다고 느껴본 적이 에. 젊은 시절부터 그랬다. 직장을 다니면서 아침을 걸렀다. 먹으면 오히려 속이 거북해서. 그럼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한결같이 먹고 있는 아침은 뭔가. 글쎄, 때가 되니 먹는 . 가족들이 먹어야 하니까 나도 같이 먹는 .


갑자기 왜 간헐적 단식이냐고? 보디 플라잉을 하다 내 몸이 지나치게 무겁다는 걸 알았다. 이태리 사람인 조교의 물 찬 제비 같은 날렵한 몸과 굳이 비교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어쨌거나 좋은 자극은 받고 볼 일. 결정적인 건 1주일 전에 체한 계기였. 점심으로 된장국에 잡곡밥을  숟갈 먹었는데 탈이 났다. 왼쪽 윗배가 아팠다. 앉아도 아프고 누워도 아팠다. 저녁도 거른 채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와서 저녁 9시도 되기 전침대에 누웠다. 체한 데는 왕도가 없다. 경험상 굶는 게 최고.  한 방울안 된다. 오래도록 끙끙 앓다가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깨자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지고 없었다. 


다음날도 조심 조심. 아침으로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셨다. 방사선과 의사샘과 상담있는 날이었는데, 하필이면 그날 뮌헨은 지하철 우반과 트람, 버스가 세트로 동시 파업을 했다. 마침 차까지 정기 점검 중이라 병원까지 걸어서 가기로 했다.  때도 올 때도  1시간이 걸렸다. 의사와 면담을 마치고 산책로를 걸어오귤 2개, 바나나 1개, 사과 1개천천히 꼭꼭 씹어먹었다. 오전 11시 반이었다. 오호라, 이게 바로 풍문으로만 듣던 간헐적 단식이 아닐런지? 위에게 오전 내내 쉴 시간을 준다는. 7시 전에 저녁을 먹고 다음날 11시까지 16시간 유지시킨다.   주는 아주 아주 특별한 선물이라는 그 간헐적 단식 말이다.


오후 3시쯤 되니 고요한 허기가 느껴졌다. 자고로 내게 허기란 요란하게 찾아오는 법인데 말이다. 리듬을 깨지 않도록 부드러운 야채죽을 먹었 저녁도 일찍 끝냈다. 다음날 아침 몸무게를 체중이 조금 었다. 항암을 하던 2년 동안 몸무게가 줄기는커녕 내내 늘기만 했는데. 몸무게가 줄지 않는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다. 방심하다  방에 비만으로 치닫는 수가 있어서. 몸도 마음도 가벼운 게 . 마주하기 불편한 뱃살과 손님처럼 가끔 찾아오는 한 쪽 무릎 통증생각해서라도.



빅투알리엔 마켓 옆 The Victorian House. 티하우스 레스토랑. 오후에는 영국 전통 애프터눈 티를 다양한 디저트와 맛볼 수 있다. (1잔 4.40/티폿 6.80유로)



다시 방사선도 시작한다. 2월 중순에 받은 정기 검사 결과는 좋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지난가을에 했던 2차 항암과 방사선 결과는 만족할 만했지만, 반대복부에 또 뭔가보인다고. 갑자기는 아니고 전부터 있었던 모양이다. 이번엔 림프절이 아니라 척추뼈를 감싸고 있는 근육 쪽. 그래서 그런가. 요즘 허리가 조금 뻐근하다 싶었는데. 방사선과 담당샘 소견은 치료를 지체할 필요가 없단다. 그러다 통증이 심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CT만으로는 확실하지 않아서 MRT까지 찍은 결과였다. 이번에는 남편도 함께 갔다. 남편과 가면 남편이 주로 듣고 질문하니까 나는 귀만 열어두고 방심해도 된다는 이점이 있다.


이번 기회에 담당샘에게 식이에 관해서도 자세히 물어보았다. 독일은 암환자의 경우 진짜 가리는 게 없는 건. 도대체 뭘 믿고 그러는 건지. 없단다. 담배 안 하냐 해서 안 한다고 했더니 그거 하나는 굿, 이라 한 것 빼고는. 담배는 안 피우는 게 낫다는 뜻이겠지? 그럼 술은? 마셔도 된단다. 맥주고 와인이고 한두 잔 정도는 괜찮다며. 헐, 이렇게까지 관대해도 되나 싶어 또 물었다. 설마, 설탕..도요? 케이크, 아이스크림, 초콜릿 등등 단 게 오죽 많나. 여기 사람들도 이걸 안 먹고는 못 살 텐데? 먹어도 괜찮단다.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커피와 고기와 밀가루와 튀김 명함도 못 내밀었.


내가 말했다. 한국의 항암 환자들은 보통 아주 엄격한 식이를 합니다. 술, 담배, 커피, 고기, 기름, 설탕, 밀가루, 백미, 인스턴트식품, 유제품, 청량음료 등 가려야 할 것도 많고요. 이것 자체가 가끔 스트레스가 되기도 해요. 그러자 밝고 적극적인 성격의 30대 여의사 샘이 말했다. 이해해요. 다만 우리가 그렇게 엄격하게 제한하지 않는 건 통계 때문이에요. 엄격한 식이를 했던 환자보다 스트레스 없이 즐겁게 먹고 산 환자들의 예후좋았어요. 끝까지 체력도 좋았고요. 물론 개인의 선택의 문제겠지만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즐겁게 살도록 하세요. 맥주 와인, 커피 한 잔, 쿠헨 한 조각의 기쁨도 누리시면서. 여의사의 그 말이 내게 위로가 되었다.


다시 항암 치료를 해야 할 때 자책하기 쉬운 질문들이 있다. 함부로 먹었나? 운동을 게을리했나? 뭘 잘못했나?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깨끗한 음식을 먹도록 신경 쓰고,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는 게 당연히 좋겠지. 그럼에도 올 건 오고 갈 건 간다,라고 생각하기로 다. 다시 방사선을 할 때, 다시 항암을 할 때, 자책을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당면한 일에만 집중하기. 이번에는 항암 없이 4주간 방사선 치료만 받기로 했다. 매일 가야 하니까 이번에도 산책과 잘 연결해 볼 생각이다. 담당샘 조언 대로 방사선 중에는 고주파 열치료, 비타민 C 고용량 요법, 미슬토 치료는 잠시 중단하기로.


간헐적 단식은 상황을 보고 계속할지 말지 결정하려 한다. 내 몸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도 좋지만 무리는 하면 안 되니까(내 박약한 의지 역시 믿을 게 못 되어서..). 그리하여 간헐적 단식과 함께 내 몸을 정화하고 가족들의 건강도 챙길 수 있는 1석 2조 식단을 고민 중이다. 남편도 다이어트가 필요하고 아이는 채소를 더 먹어야 해서. 지금 관심 분야는 저녁의 샐러드. 맛있고 영양도 풍부한 샐러드 이다. 첫 시도는 삶은 계란 반 개, 모차렐라 치즈, 넓적한 버섯인 Austernpilze(한국 이름은 뭔지 모르겠다. 느타리버섯?)을 볶아 신선한 야채 위에 얹었다. 드레싱은 남편이 좋아하는 새콤한 딜소스. 토핑도 닭가슴살, 소고기, 구운 연어, 참치, 견과류 등등 다양하게 조합해 볼 생각이다. 레스토랑에서 먹던 샐러드를 매일 집에서 먹는다고 생각해 보시라. 첫 샐러드는 성공이었다! 남편도 아이도 잘 먹어주었다. 두 번의 항암과 방사선 때도 구토 등 부작용이 없었기에 이번에도 잘 해낼 거라 낙관한다. 잘 먹고 잘 걷고 좋은 생각하면서.



저녁으로 처음 시도해 본 밥 대신 수북한 샐러드 한 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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