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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Mar 16. 2023

일요일의 독서와 저녁의 샐러드

방사선 치료는 계속 중

뮌헨의 빅투알리엔 옆 스타벅스.



이런 책 읽기를 좋아한다. 정해진 약속도 없고, 꼭 해야 할 일도 없는 일요일. 고전의 반열에 든 작가 서머싯 몸이 선정한 열 명의 작가와 그들의 책이라니! 아침에 늦게 일어나 침대에 커다란 쿠션을 놓고 비스듬히 기대앉아 읽는 일요일 오전도 좋고, 집에서 늦은 브런치를 먹고 남편과 뮌헨 시내로 걸어 나와 카페에 앉아 일요일의 늦은 오후도 좋다. 꼼꼼한 작가답게 작가와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썰과 읽을거리가 풍성해서 깊어가는 일요일 밤이 아쉬울 정도다. 영국과 프랑스 작가들을 빼면 미국의 멜빌과 러시아의 두 양대 작가가 포함된다.


뮌헨에서 일요일에 문을 여는 카페를 찾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동네 빵집들은 오전에 문을 열었다가 정오쯤 닫는다. 일요일은 모두에게 소중하니까. 시내에서 가까이 산다는 건 이럴 때 비싼 월세를 보상받는 기분이 든다. 이자르강을 건너 20분 만에 빅투알리엔 마켓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 물론 일요일엔 빅투알리엔 마켓도 문을 닫는다. 시내라서 문을 연 카페가 있다는 게 믿는 구석이다. 집과 시내를 오가며 이자르 강변을 따라 걷다가 다리를 건너 돌아올 때 저녁 무렵 강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즐거움도 있다.



일요일의 빅투알리엔 마켓(위/가운데). 개르트너 플라츠와 이자르 강(아래).



우리가 가려고 했던 영화관 카페는 일요일은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 그렇다면 스타벅스지(6시 30분에 문을 닫았다)! 빅투알리엔 마켓 한 모퉁이에 있는 스타벅스는 아주 작지만 언제나 손님들로 북적인다. 일요일 오후엔 말해 무엇하리. 다행히 우리가 들어선 순간 입구 쪽 소파 두 개가 비어있었다. 남편이 주문을 간 사이 나는 소파를 지켰다. 이런 행운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남편이 주문한 라테가 하도 맛있어 보여 두 모금 얻어마셨다. 요즘 깨끗한 음식을 먹으려 노력 중이긴 하지만 이 정도에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일요일의 저녁 무렵 빅투알리엔 마켓은 인적이 드물었다. 불 꺼진 마켓 위로 초저녁 하늘이 그림처럼 푸르렀다. 마켓에서 유일하게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카페가 있었다. 천막 창문으로 보이는 노란 불빛이 따듯해 보였다. 카페 뒤편엔 비어 레스토랑 프숄 Pschorr. 여름의 노천 비어 가든도 좋지만 겨울의 실내도 나름 운치가 있어 뮌헨에 손님이 함께 가는 곳이 되었다. 



가끔 치킨과 참치를 얹은 샐러드도 시도했다. 레몬을 뿌린 구운 연어는 샐러드와 찰떡궁합이었다.



저녁으로 샐러드를 먹기 시작한 지도 열흘쯤 되었다. 매일 같은 걸 식탁에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어 토핑을 바꿔가며 변화를 주었더니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남편의 지지를 얻고 있다. 남편과 아이가 새콤한 딜소스를 좋아하니 드레싱을 바꿔야 는 부담감이 없는 것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닭가슴살을 잘게 잘라 굽거나 참치캔을 사서 올리거나 남편이 사 둔 연어를 구워 레몬즙을 듬뿍 뿌리면 생선 냄새가 하나도 안 났다.


모차렐라 치즈나 그리스 페타 치즈를 올리기도 한다. 병에 든 피클도 사놓고 나름 토핑에  변화를 다. 올리브, 긴 고추 절임, 새끼손가락만 한 베이비 오이 절임,  아스파라거스, 아티초크 등등. 최근에 새로 발견한 건 베이비 양파 절임과 작은 파프리카에 치즈로 속을 채운 것. 내가 좋아하 13분간 삶은 반숙 달걀  조각과 독일에서도 요즘 꽤나 비싸진 아보카도다. 요즘은 위가 작아졌는지 맛있다고 예전처럼 폭풍 흡입은 못한다. 늦은 아침으로 여전히 과일과 견과류를 넣은 뮤슬리. 아이와 나눠먹으면 오후까지 속이 든든하다. 오후 간식은 과일. 이러다 내 속이 너무 정화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참고로 매일 방사선 치료도 잘 받고 있다. 의사 이 걱정하시던 구토 같은 건 없다. 난 걱정 안 했는데 한 번 물어보셨다. 먹는 양이 줄어서 소식을 할 뿐 잘 먹는다. 아직까지 특별한 부작용은 없고, 허리의 미세한 통증은 없다가 다시 생겼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닌데 카페에 오래 앉아있으면 가끔 불편할 때가 있다. 일도 계속하고, 주말의 문학 특강도 계속하고 있다. 지난번 까뮈의 <이방인>이 조금 어려웠을 거란 생각에 이번에는 몸의 <달과 6펜스>로 균형을 맞추려 한다. 총 9회로 계획한 문학 특강도 절반을 넘기고 있다. 봄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다가오고 있중이고.



<이방인>과 <달과 6펜스>. 가운데 사진은 우리 동네 꽃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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