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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Apr 27. 2023

뮌헨의 벚꽃은 사월 말에 피고 진다

수요일의 자연치료

뮌헨의 우리 옆동네 빈터 슈트라세 Winterstraße엔 벚꽃이 한창인데 저 벚꽃을 로또라 불러야겠다.



수요일 아침마다 뮌헨의 자연요법센터(KfN)로 향한 지도 만 2년이 되어간다. 오전 9시였어도 충분할 텐데 뭐 하러 아침 8시로 예약해서  자신을 괴롭히는 까. 나 아침형 인간 아닌데. 아침 8시면 집에서 늦어도 7시 반에는 나가야 한다. 아이가 등교하는 즉시 어나가야 한다는 뜻. 그나마 7시까지 침대에 머물 수 있는  남편이 아이 아침과 간식 샌드위치를 싸주거나 사주 때문. 남편이 없을 땐? 샌드위치 사 먹을 돈을 아이에게 준다. 돈이란 편리하다. 아침 시간을 벌어준다.


올해 월에 3차 방사선이 끝난 후부터는 자연요법센터에서 지난 2년간 매주 던 고주파 열치료와 비타민 C 고열량 요법을 격주로 받고 있다. 두 가지를 한꺼번에 는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내 한 달 알바비에 맞먹음.) 다 좋다 이거지. 이걸 언제까지 받아야 할지 기한이 없다는 게 문제다. 암에 완치란 없다고 기에. 그렇다면 길게 보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한 달 고정 치료비를 적당한 선으로 낮추는 거다. 물론 한국에서 자연치료를 받는 경우를 고려하면 독일이 훨씬 저렴하긴 지만. 집에서 주 3회 맞는 미슬토 요법 비용도 감안한 결론이다.



이자르 강변의 이태리 레스토랑 푸가치. 갈 때마다 똑같은 걸 질리지도 않고 먹는 중. 매운 파스타, 펜네 아라비아타. 색이 예술!

 


이번 주에는 자연치료를 받은 후 옆 건물의 암센터로 가서 담당 의사인 마리오글루 샘을 만났다. 예약도 없이. 바쁘시면 좀 기다리지 뭐 하면서. 요즘 독일 병원은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매번 방문 때마다 받던 코로나 테스트도 없어졌다. 마스크를 쓴 모습만 내리 3년을 보다가 마스크를 벗으니 서로를 한눈에 잘 알아보지 못한다는 단점은 있다. 그러나 이것도 곧 익숙해지겠지. 마리오글루 샘과는 지난 방사선 결과를 체크하는 검사 일정을 잡았다. 오월에는 3개월에 한 번씩 맞는 전이된 가슴뼈 주사도 맞아야 해서 이날에 검사 일정을 맞춰주셨다. 같은 날 두 가지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어 여간 다행이 아니다.


자연치료를 받으러 가는 수요일을 나는 특별히 좋아한다. 이유는 치료 후 들르는 카페에서 브런치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글은 주말에 쓴다.) 수요일 첫 단추가 중요한 건 두말하면 잔소리. 그런 이유로 수요일 오전에는 볼 일이나 약속을 잡지 않는 편이다. 글쓰기 루틴은 소중하니까. 수요일이 좋은 두 번째 이유는 월, 화 이틀 알바끝나기 때문. 카페에 앉아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후련하다. 두 시간 정도 글을 쓰고 산책으로 마무리하면 금상첨화인데 이번 주는 그리 춥던지. 으슬으슬 감기라도 걸릴까봐 트람을 타고 곧바로 귀가했다. 올해 사월 날씨는 정말 싫다. 날씨 때문에 기분마저 자주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올해 사월은 흐리다가 비 뿌리다가 스산하다가 외투를 여미도록 춥다가 해 나다가 심하면 눈발까지. 왜 독일인들이 안 좋은 일만 생기면 사월 날씨를 걸고 넘어지는지 뼛속까지 이해함.



이번 수요일엔 아이와 이자르 강변 이태리 레스토랑에점심을 먹고 싶었는데 집에 돌아온 아이는 피곤해서 싫단다. 공부해야 한다고. 금요일에 있을 라틴어 기말고사 때문에. 아이가 밥맛을 잃은 것도 그 때문이지 싶다. 시험 끝나고 같이 가자는데 엄마란 사람이 뭐라겠나. 할 수 없이 혼자 갔다. 처음엔 이럴 생각이었다. 거기서 점심을 먹으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 얼른 집으로 돌아와 침대로 직행하기로. 주말부터 피곤해서다. 피곤할 땐 쉬는 게 답. 토요일 오전엔 한글학교에서 사과반 마지막 문학 특강을 했고, 일요일 오후엔 시누이 바바라와 둘이서 카타리나 어머니댁을 다녀왔다. 쉬고 싶었지만 남편은 출장, 아이는 공부를 한답시고 거부해 나라도 같이 가야겠다 싶어서. 그러자 월요일 일을 마치자 오후에 또 약속이 생기더라는.  바쁜 일은 사춘기 여자애들처럼 떼 지어 몰려오는지 모르겠다.


사단은 늘 생각지도 못한 곳에터진다. 폰과 지갑만 챙겨서 급히 레스토랑으로 가느라 집열쇠를 두고 네. 띠리릭, 도어록 같은 건 이 나라에 없다. 열쇠, 열쇠, 죽어도 열쇠다. 잊으 낭패, 잃으면 . 그런데 없다. 집에 있어야 할 남편이. 애도 가라테 간다고 일찌감치 한나 집으로 간댔는데. 한나 집으로 향하며 낮은 가능성에 기대 보았다. 아이는 열쇠를 잘 들고 다니지 않는다. 수요일 예찬에서 수요일 추앙으로 끝맺으려던 글은 뜻밖의 복병을 만나 여전히 뮌헨의 우리 동네를 바람처럼 서성이는 중이다. 사월 말 바깥 날씨는 춥고, 난방 중인 이 그리운 수요일 오후 5시. 저 멀리  가라테 도복을 입은 여자애 둘이 걸어온다. 역시 열쇠는 . 남편은 일하러 갔을테니 마지막 찬스로 남겨두기로 고, 다양한 취미 활동으로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시누이 바바라에게 미약한 희망을 걸어본. 지금쯤 퇴근할 시간. 주중의 가운데라 바로 퇴근할지도 모른다에 한 표를 걸었는데 적중했다. 우리 집에서 지하철 한 코스 거리인 바바라의 집까지 걸어가며 늦은 벚꽃 구경도 원없이 했다.  벚꽃들을 보시라. 역시 수요일이 최고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구경을 아무 요일에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오후 6시, 바바라의 집 앞에서 벨을 누른다. 문은 열릴 것이다. 비록 카프카의 은 열린 적이 없어도.



2023. 4. 26(수). 뮌헨의 빈터 슈트라세 Winterstr.와 콘라딘 슈트라세 Konradinstr. 성당의 시계가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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