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의 예술 영화관 아레나 Arena에서 <이니셰린의 밴시>를 보았다. 몇 번을 들어도 입에 잘 붙지 않는 이 영화의 제목은 '아일랜드섬의 죽음을 알리러 온 정령'이란 뜻.* 진짜로 존재하는 섬은 아니라지만 일단 제목이 무시무시하다. 도대체 그 섬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23년 4월 1일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염두에 두는 것도 중요하겠다. 아일랜드의 내전 말이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아일랜드와 영국 합병을 원하는 북아일랜드와의 전쟁을배경으로 깔고 영화는 시작된다.
아레나는 우리 집에서 가깝다. 걸어서 15분. 이자르 강가를 걷다가 다리 하나만 건너면 닿는 곳. 오래된 독립 영화관이지만 잘 관리된 탓인지 언제 가도 쾌적하고 산뜻한 작은 영화관이다. 퀴퀴한 냄새도 없고 의자도 편하고 공간도 아담해서 아늑한 느낌마저 받는다. 6-8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은 일곱 줄로 꽉꽉 채워도 총 50석 정도. 뒤쪽의 맨 마지막 줄은 연인들이 둘씩 앉을 수 있게 칸을 구분해 놓았다. 각 열의 단차가 커서 앞줄 관객의 머리가 영화 감상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칭찬할 만하다.
가장 좋았던 건 영화 자막이 독일어가 아니었다는 것. 독일은 더빙의 나라다. 옛날 우리나라에서 TV로 고전 흑백 영화를 보던 것과 같다. 그때는 무조건 더빙이 답이고 성우들의 전성시대 아니었나. 독일의 큰 상영관에서는 지금도 더빙이 대세지만 작은 독립 영화관에서는 자막과 오리지널 사운드로 영화를 즐길 수 있다. 그래봐야 내 경우 독일어도 영어도 반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영화의 결이나 맛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 이 영화가 그랬다. 아일랜드 방언 때문이었을까. 무려 자막까지영어. 10.50유로를 주고 영화 보며 영어를 공부하는 느낌은전혀나쁘지 않았다.
외로운 사람들, 바우릭과 콜름. 그리고 새끼 당나귀.
내 관람 포인트는 세 가지.
우선 '파우릭'을 연기한 콜린 패럴.파우릭은 그 섬의 순박한 촌부다. 당나귀 새끼를 자식처럼 애지중지하고 읽고 쓸 수는 있지만 생각하는 인간형은 아니다. 하필 그의 절친이 바이올린을 켜고 사고하는 인간 '콜름'일 게 뭔가. 파우릭에게 새끼 당나귀가 있다면 콜름에겐 함께 탱고를 추는 개가 있다. 둘은 지금까지 오후 2시면 동네에서 유일한 펍에서 매일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사단은어느 날 갑자기 배운 친구가 머리에 든 것도 없고 의미 없는 말만 늘어놓는 친구에게 신물이 났다며 일방적으로 선을 그어버린 데서 일어났다. 그게 말인가. 파우릭의 다정함은 싸구려고, 콜름의 의미 있는 인생의 추구는 고귀함인가. 정답은 어디에도 없다. 마침내 둘의 투쟁은 시작되고, 영화의 막바지에서 둘 다 소중한 것들을 잃는다.영화관을 나와도 등 뒤에서 이들의 싸움은 계속될 것 같다. 아일랜드 출신인 두 배우 중 한 명인 콜린 패럴은 파우릭 그 자체였다. 걱정 가득한 얼굴로 대답 없는 콜름의 집 유리창을 두드릴때, 곁을 주지 않는 콜름에게매몰차게 쫓겨난 펍 유리창 너머에서멘붕이 온듯 절망 어린 표정으로 내 가슴을 몇 번이나 찢어놓던 배우. 내게 이 영화는 배우 콜린 패럴의 발견이었다.
외로운 사람들, 파우릭과 여동생 시오반. 그들의 저녁 식사는 죽 한 그릇.
다음은 파우릭의 여동생 시오반.파우릭에겐 소중한 게 몇 있는데, 새끼 당나귀와 자신에게 한없이 다정하면서도 자신과는 달리 책을 읽고 사리분별이 있는 여동생. 그리고 절친 콜름과 오후 2시에 마시는 맥주와 그와의 즐거운 대화. 여동생 시오반은 콜름에게 절교를 당하고 콜름의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자신의 모자람을 스스로 자책하는 오빠 파우릭의 편에 서서 그를 위로한다. 오빠는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그런데 왜 콜름은 그와의 무의미한 대화가 시간 낭비라며 음악을 작곡하고 의미 있는 데 남은 인생을 쓰고 싶어하는 건지 오빠 파우릭을 설득하지는 못한다. 그녀 역시 콜름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일지도. 그래서 더더욱 오빠가 짠하다. (그렇게 만든 콜름의 새 곡 제목이 <이니셰린의 밴시>다.) 한편 그녀를 사랑했던 동네 청년은 그녀에게 마음을 고백했다가 거절을 당하고 그녀가 섬을 떠나자 죽었다. 마치 햄릿에게 버림받고 죽은 오필리아처럼. 이 영화에서 보여준애절함의 극치. 마침내 그녀는 직장을 구해 조용히섬을 떠나고. 그곳으로 오라고오빠에게 편지를 보내보지만 파우릭은 거절하고 콜름과 맞짱을 뜨기로 결심하는데. 사람은 각자의 운명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쩌면 그 섬의 유일한 승자는 전쟁터를떠난 여동생 시오반뿐.
마지막은 그 섬의 노파. 이름은 모르겠다. 보자마자 맥베스의 운명을 알려주던 마녀들이 생각났는데 특히 그녀가 파우릭에게 파우릭 주변의 죽음을 예견하던 장면에서. 그리고 불 탄 콜름의 집 앞에서 화마를 피한 의자를 세우며 그 위에 앉아 바닷가에서 만나고 있는 파우릭과 콜름을 바라보던 장면에서 그녀는 이니셰린의 밴시였다. 아일랜드 전설 속 비명이나 큰 울음소리로 죽음을 알려준다는 정령과는 달리 영화 곳곳에서 조용한 목소리와 희미한 미소로 운명을 예견하기는 하지만. 그녀와 파우릭의 여동생 시오반이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여성들은 동맹한다. 살다 보면 삶의 의미보다도 살아남는 자체가 중요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 그다음은 살아남은 후에 도모해도 되니까. 누군가는 살아남아 그날의 의미들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전해야 하므로.
영화관 로비의 오래된 영화 포스터는 <화양연화>. "사랑을 다룬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가 포스터 맨 위를 장식하고 있다. 오른쪽은 로비 벽에 붙은 영원한 제임스 딘.
*제목의 뜻은 2023.3.25 한겨레기사, 손희정의 영화담 "아일랜드 내전 시기 '전쟁 같은 절교'"에서 참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