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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Apr 10. 2023

방사선 치료 끝이 왜 영어냐고 물으신다면

줄리아와 엘리 1

방사선 마지막 날 병원 앞 카페에서 <나니아 연대기> 시작.



방사선 치료가 끝났다. 방사선의 끝이 왜 영어냐고 물으신다면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공부'가 아니어서. 치료가 끝나기 1주일 전쯤 삼월의 끝자락이었다. 사월 부활절 방학 때 바르셀로나에서 만나자는 친구들에게 왓츠앱과 메일로 각각 답을 보냈다. 나,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어. 이번엔 아무래도 무리일 거 같아. 친구들은 이해했다. 당연히 처음엔 많이 놀랐을 . 서로가 젊고 풋풋했던 2000년 여름 어학연수차 갔던 옥스퍼드 서머스쿨에서 아르헨티나 친구 줄리아와 스페인의 엘리를 만났다.


당시 줄리아는 여동생 알리시아와 어학연수를 왔었는데, 이듬해 내게 런던에서 같이 어학연수를 제안했다. 그것도 룸메로. 어학 학교 벨스쿨도 줄리아가 제안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 두 해 동안 도쿄에 살고 있었다. 부산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남자 친구이던 지금의 남편과 함께. 그때 내가 능통했던 건 모국어인 한국어와 일본어였고 남편은 독일어와 영어였다. 결혼까지 생각하면 내가 영어와 독일어를 배우는 게 빠를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착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영어와 독일어보통 이상을 넘지 못하고 있고, 어느 쪽이 낫지도 못하지도 않은 도토리 키재기 수준이라서. (아닌가? 그동안 영어와 일본어는 노출 빈도가 낮아서 후퇴와 쇠퇴반복하고 있음을 인정해야겠다.)


줄리아와 엘리는 내가 2002년 독일 마르부르크에서 결혼할 때 내 결혼식에도 와 준 친구들이다. 나보다 열 살쯤 어린 그들도 지금은 40대 중반이 되었겠다. 우리가 결혼하고 몇 년 후 줄리아의 여동생 알리시아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결혼을 할 때도 갔다. 첫 남미 여행이었다. 그때 탱고 공연을 보고 거리에서 산 그림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엘리는 순하고 착하게 생긴 남동생과 줄리아 여동생의 결혼식에 왔었다. 그 후 바르셀로나에도 갔다. 엘리 집에서 그녀의 남동생과 아버지도 만나고(엄마는 일찍 돌아가셨던 걸로 기억함). 엘리의 대학 동기인 남자 친구들도 만났다. 다정하고 잘 생긴 자비와 성실해 보이던 안드레이였던가, 암튼 두 친구의 얼굴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거리의 화가에게 산 탱고 그림.



그 후로도 우리는 몇 번 더 만났다. 나와 남편이 독일 마르부르크에 살던 동안에. 런던에서 함께 어학연수를 했던 스위스의 또 다른 친구 두 명도 같이 동계 올림픽 개최지이자 스키 휴양지인 스위스의 생모리츠에서도 만나고,  친구 모두와 줄리아의 영국인 남자 친구 윌리엄까지 함께 이태리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들과 피사의 사탑을 본 게 마지막이었다. 남편과 나는 3년간의 독일 생활을 뒤로하고 2005년 중국 상해로 떠났다. 2008년 싱가포르로 가서 이듬해 아이를 가졌고, 2009년 연말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이를 낳고 3년간의 부산 생활과 서울에서 보낸 시간들을 합하면 만 8년이 넘는 세월을 한국에서 보냈다. 그동안 친구들을 보지 못했자연스레 소식이 끊겼다.


2018년 뮌헨으로 돌아왔다. 마르부르크를 떠난 지 13년. 달라진 건 없었다. 예전에는 없던 아이가 생겼다는 것뿐. 줄리아가 소식을 전해온 건 작년 말이었다. 2차 항암을 막 끝냈을 때였다. 친구들을 다시 만나기엔 용기가 부족했다. 건강한 모습으로 기억하는 친구들에게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사이 줄리아는 윌리엄과 결혼해서 런던 근교에 살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딸이 둘. 우리 아이보다 한두 살씩 어렸다. 큰 딸은 윌리엄을 닮았고, 작은 딸은 줄리아를 쏙 빼닮았다. 우리 아이와도 친구 하기 딱 좋을 나이 같았다. 그러나 고민 끝에 이번 바르셀로나 여행은 접기로 했다. 4주 방사선 치료로 심신이 지쳤기 때문이다. 다시 기회가 올 것이다. 우린 이웃에 살고 있으니까. 줄리아로부터 내 소식을 들은 엘리가 메일을 보냈다. 만약 내가 바르셀로나에 못 온다면 자기들이 뮌헨으로 날아올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당연히 기다리겠다, 했다.



<나니아 연대기> 하드 커버 한글판과 독일어판(위). 7권으로 된 영어판 페이퍼백은 종이 재질은 별로지만 가벼워서 들고 다니기 좋고 부담없이 읽기도 좋아 마음에 든다(아래).



그리고 펼쳤다, 영어책. 친구들과 다시 만나려면 영어도 업그레이드가 필요서. 네이티브 애들과 어울려야 하는 아이의 사정은 모르겠고, 일단 내가 급했다. 무엇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뭘까, 몇 날 며칠까지는 아니지만 고민 끝에 얻은 답은 <나니아 연대기>. 뮌헨에 처음 왔을 때 아이는 초등 2학년이었다. 한국에서 들고 온 <나니아 연대기>를 아이에게 한국어로 읽어주면서 언젠가 아이와 내가 읽기를 대하며 독일어판과 영어판도 따로 두었다. 그사이 영어판을 시도해 본 적이 있는데 오래가지는 못했다. 재미를 못 느껴서. 그렇다면 이번에는? 재미있었다. 원어로 책 읽어주는 오디오도 있는지 유튜브를 검색하니 전부 2권부터 시작하길래 나도 1권을 건너뛰고 2권부터 시작했다.


아침저녁으로 침대에서 소리 내서 읽기도 하고 소리 없이 눈으로 읽기도 한다. 의외로 재미다. 모르는 단어? 많다! 그래도 패스.. 우리 아이가 알려준 팁이었다. 사실 이게 어렵잖나.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무조건 찾아봐야 직성이 풀리는 영독해 종주국에서 나고 자란 탓에. 아이가 제발 그러지 말란다. 그 말대로 했더니 단어 좀 몰라도 스토리 전개에 문제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히려 흐름이 깨지지 않아 몰입감도   재밌다. '공부'라는 생각은 던져버리고 '재미'에몰두하던 어린 시절 책 읽기로 돌아간 기분. 아, 설레발은 여기까지로 하자. 지금까지 작심삼일, 용두사미가 하루 이틀이었나. 진득하고 꾸준하게 계속될지 말지는 지금 장담하기 어렵다. 가을쯤 친구들과 재회하는 그날까지 포기하지 않는 게 목표다. 영어로 읽고 나서 독일어로도 읽고 싶지만 희망사항일 뿐. 각설하고, 이런 환상적인 이야기를 써 준 작가 C.S.Levis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내는 걸로 끝.


나니아 읽기 D-day는 방사선 치료가 끝나는 날로 정했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산책은 병원 근처 동네 한 바퀴로 짧게 끝냈다. 날씨는 화창한데 기온이 낮고 무엇보다 바람이 차가워서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다 싶어서. 그 길에서 보았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환하게 핀 개나리와 언제 폈는지 벌써 절정을 지나고 있는 명자꽃을. 방사선과 담당자 중에서 무척이나 무뚝뚝하던 남자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의외로 길게 건넨 마지막 인사말도 인상적이었다. 프라우 오, 긴 시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쾌유하셔서 이곳에서 다시 뵙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 고맙기도 해라. 그러나 순간 이런 생각도 들었다. 상대가 워낙 진지해서 대놓고 말은 못 했지만. 아니에요, 다시 만나도 괜찮아요. 여기서 다시 만난다면 제가 아직 살아있단 증거니까요! 해마다 다시 보는  붉디붉은 명자꽃과 저토록 샛노란 개나리처럼 말이다.



방사선 마지막 날 병원 부근 동네에 핀 명자꽃과 개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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