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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May 12. 2023

뮌헨에서 밤 11시에 저녁을

줄리아와 엘리 3

뮌헨의 비어가든에 오면 무조건 브레첼 Bretzel 이지! 내 친구들 줄리아와 엘리. (아래는 치즈 소스 누들 슈패츨레와 굴라쉬 수프.)



사월의 마지막 토요일 오후였다. 뮌헨에 온 친구 줄리아와 엘리를 그들이 묵을 호텔 로비에서 만났다. 룸에 여행 가방을 던져두고 호텔 로비로 내려온 그들과 소파에 앉자마자 서둘러 지난 20년을 압축해서 브리핑했다. 싱가포르에서 시험관에 성공한 후 만삭이던 2009년 연말 한국으로 돌아가 이듬해 출산한 이야기. 아이가 서울 독일학교 유치원에 다닐 무렵 5년 정도 글쓰기와 세계문학을 공부한 것. 2018년 뮌헨으로 와서 지금까지 5년간 브런치에 글을  올해부터 뮌헨의 한글학교에서 문학 특강을 시작한 것. 그리고 암투병에 대한 얘기 빼놓을 수 없었. 20년이 삼십 분만에 간략하게 정리되었다. 친구들은 내 얘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상체를 기울이고 눈을 빛내 귀 기울여 주었다. 오랜만에 영어로 그것도 길게 말하려금방 배가 고팠다. 


모처럼 날씨도 좋았다. 늦은 점심을 빅투알리엔 마켓 한 모퉁이 비어가든 프숄의 야외 파라솔 아래서 먹었다. 예약 없이 갔는데도 잠시 기다리니 야외에 자리가 났다. 줄리아와 나와 우리 남편은 무조건 독일 맥주. 그사이 엘리는 술을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는 여성으로 변모해 있었다. 그날 그녀가 마신  뭐였더라? ? 미네랄워터? (이게 그녀가 현재까지도 싱글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력한 이유 중 하나라고 줄리아가 놀려먹는 주력 테마가 됨.) 아이는 한글학교가 끝나자마자 한글학교에서 가까운 옥토버 페스트 장소에서 열리는 봄축제에 친구들과 간다고 생전 처음 만나는 엄마 친구들과 점심도 같이  먹었. 우리도 봄축제에 가볼까 했는데 다음날이 일요일인데다 그다음 날인 월요일도 노동절이라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는 걸 알게 된 줄리아가 쇼핑을 선언하는 바람에 못 갔. 가게 밖에서 기다렸다 같이 저녁까지 먹으려던 남편1시간  조용히 홀로 귀가하시고. 당연히 쇼핑은 저녁 8시 폐점 까지 이어짐. 줄리아의 매력이 그런 데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남의 눈치 보심. 이게 하나도  밉다는 게 포인트임.) 줄리아가 쉴 새 없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엘리와 나는 그녀를 서포트하랴, 계속 대화를 나누, 꽤나 분주했다. 그래서 뭘 샀냐고? 글쎄. 


런던에서 있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도 생각난다. 어학학교에서 같은 룸에 배정받고 서로 여행가방을 풀었는데 줄리아의 엄청나게 큰 가방에 롱부츠가 세 개나 들어있어 기절하는 줄 알았음. 그것도 모자라서 런던에서도 화이트 패딩과 화이트 롱부츠를 사더라는. 그게 다면 내 친구가 아니지. 런던에서 새로 장만한 선글라스를 끼고 친구들과 밤거리활보할 때의 귀여움이라니. 이런 게 그녀의 사랑스러움이다. 또 있다. 그녀 역시 나처럼 곱슬머리였는데 소형 매직기를 여행가방에 챙겨 와서 내게 선보인 장본인. 밤마다 우리는 파티에 가기 전 다림질하듯 열심히 서로의 머리를 는데 그때마다 줄리아가 외치는 말을 듣고 매번 낄낄거렸다. I hate my ( ) hair! (그때 줄리아는  괄호 속에 어떤 형용사를 썼더라..) 그런 내 친구가 딸들 교육에는 제법 보수적이라는  꽤나 인상적이었다. 큰 딸이 곧 열두 살인데 보호자 없이는 절대로 친구들과 밖으로 다니지 못하게 하고, 스마트폰도 최근에야 사줬다고. 나는 또 옛 룸메의 그런 반전 마음에  들었다.



한밤의 저녁 식사. 뮌헨 빅투알리엔 마켓 옆 타이 키친&바 Yum. 컨셉이 좀 많이 붉은 편.



저녁해가 지니 제법 쌀쌀했다. 저녁을 먹기 전에 호텔로 돌아가 따뜻한 옷을 챙겨  다시 나오기로 했는데 밤 11시까지 호텔룸 침대 위에서 수다 삼매경에 빠지고 말았다. 원인은 체력이 바닥난 엘리가 침대 위로 쓰러진 것. 이유는? 점심을 먹고 우리 남편이 뮌헨 시청사 광장 맞은편 성당 꼭대기로 우리를 데리고 올라갔기 때문. 경관이 좋다고. 좋긴 하다. 시청사랑 트윈 쌍둥이 건물이 있는 프라우엔 성당이 다 내려다보이니까. (엘리가 분명 올라가기 싫다고 했는데. 이럴 때 억지로 우겨서 데리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남편이 그 중 한 명임.) 오래된 성당의 계단은 좁고 가파르고 높았다. 엘리의 체력이 그토록 바닥일 줄은 계단을 오르기 전까지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투병중인 나보다 더 안 좋았. 엘리는 전망대에 오르기 전까지 몇 번이나 쉬었다.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출발. 엘리, 너 체력이 언제부터 랬어? 대체 그동안 너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내가 묻고 엘리가 답했다. 5년 전부터 만성피로였다고.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번아웃이 온 것 같았다. 온갖 검사로 알게 된 것 중 밀가루 알레르기도 있었다고. 결국 일반 빵과 파스타는 못 먹고 메밀빵과 메밀 파스타먹는다 했다. 고기와 계란과 채소와 과일도 물론. 알코올은 노. 이런이런, 줄리아가 혀를 차며 잽싸게 거들었다. 니 병은 외로움 때문이야! 나가서 남자를 만나라구! 술도  마시고. 안 그럼 진도가 안 나가. ..! 마지막 단어를 또박또박 강조하며 나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했다. 당연하지! 나의 즉각적인 응답과 셋의 박장대소는 동시에 터졌다. 그때 줄리아가 외쳤다. 나 배 고파! 시간은 밤 11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들어보시라.


토요일이라 늦게까지 문을 여는 레스토랑&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빅투알리엔 마켓 부근으로 검색 개시. 타이 키친&바 Yum을 찾은 시각은 밤 10시 48분. 전화로 위치 확인하고, 밤 11시가 라스트 오더라는 주의도 숙지하고, 지금 곧 달려간다는 인포를 준 후 뮌헨의 밤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춥지는 않았다. 사월 말이 추우면 되나. (그런데 올해 사월은 무지 추웠다. 오월 현재까지 난방을 끄지 못하고 있다. 다행인 건 엘리가 스페인의 태양을 선물로 챙겨 왔는지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해가 나왔다. 심지어 친구들이 머물던 호텔 거리 이름도 해라는 뜻의 존넨 슈트라세 Sonnenstraße.) 호텔은 젠들링어 토어 부근이라 열심히 달리면 10분 안에 가능할 것도 같았다. 달리지는 못하고 경보 수준으로 뛰다시피 걸어서 밤 11시 정각 도착. 서둘러 음식을 주문하고 문 닫는 밤 12시까지 먹고 얘기함. (그날 이후로 간헐적 단식의 일시적 성공은 도로아미타불이 됨.)


다시 생각나는 에피소드 하나. 옥스퍼드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였다. 친구들과 파리 여행을 갔는데 공교롭게도 대부분이 스페인, 남미 등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쓰는 친구들이었다. 브라질의 포르투칼어도 사촌쯤 되는지 잘도 통했다. 그 속에 낀 한국어? 상상이 되실는지. 처음엔 영어로 시작한다. 어느새 이야기는 스페인어로 승천 중. 자기들도 의식하지 못 한  기승전 스페인어가 되는 거다. 그러다 돌아가며 나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서 잉글리쉬!를 외치긴 했는데도 역부족. 모국어의 힘이 얼마나 강렬한지 뼛속까지 체험한 시간이었다. 나나 줄리아나 딸들에게 죽어라고 한국어과 스페인어를 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 모국어 포함 모든 언어가 그렇다. 배우기는 어렵고 잊기는 쉽다. 아이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기억에 2000년 그때 당시 우리는 파리에서 1인당 10유로 정도의 도미토리에 묵었는데 자정이면 출입문이 잠겼다. 낮에는 에펠탑을 보고 밤에는 센 강에서 배를 타고 노느라 늦은 어느 밤이었다. 시계는 자정을 향해 가는데. 뛰자! 일행 중 누군가 시계를 보고 다급히 외치는 소리에 일곱 명이 인적도 드문 파리의 밤거리를 뛰고 또 뛰어 문이 닫히기 일보직전 무사 귀가한 적이 있다. (지금은 100m 계주는 꿈도 못 지만.) 뮌헨의 밤거리를 뛰며 소환된 그날 파리의 거리는 청춘들 푸르른 꿈과 뜨거운 열기와 열정과 우정으로 가득 넘쳤다.



2023.4. 29 뮌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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