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뮌헨의 마리 May 15. 2023

친구들과 뮌헨 소극장에서 영화를

줄리아와 엘리 4

뮌헨의 작은 예술영화관 아레나 Arena에서 본 <빛의 시네마>.



친구들이 뮌헨에 온 날 오후에 빅투알리엔 마켓의 유명한 테이크 아웃 카페에 들른 얘기도 빼먹을 수 없겠다. 이 카페는 뮌헨에서도 제법 유명한 편인데 왜냐면 너무 맛있어서. 커피광인 줄리아가 탄성을 내지른 것만 봐도  수 있다. 이곳 메뉴를 보니 관광객이 많이 오는 탓인지 아메리카노도 있었다. 다음에 오시면 한번 마셔보시길 바란다. 어느 이태리 카페처럼 쓰디쓴 블랙에 뜨거운 물만 부어 는 건 아니겠지? 하긴 우리식 아메리카노는 너무 연해서 이곳 유럽 사람들의 입맛에는 안  맞을 것 같다. (이게 물이지, 커피임? 이럴  같음.)


첫날 오후 다섯 시 뮌헨 시청 독일 최대의 춤추는 인형 시계탑 공연을 놓친 걸 가장 아쉬워한 건 줄리아였다. 그래서 이튿날 만남은 정오에 뮌헨 시청 앞이 되었다. 친구들과 보낸 삼박 사일 중 이런 루즈한 일정이 특히 좋았다. 우린 아침에는 실컷 자고 점심때인 12시에  만났. 뮌헨 시청의 시계 인형춤 공연은 보통 11시인데, 5/1-10/31에는 낮 12시와 오후 5시에도 볼 수 있다. 이날은 친구들 픽업해서 집으로 데려오라고 남편을 시청 앞으로 보냈더니 친구들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또 못 보고. 다음날인 5.1일도 정오에 시청 앞에서 만났는데 하필이면 데모가 열려서 12시 전에 나와서 기다렸는데도 시계탑 공연이 없었음. 줄리아가 말했다. 정확함의 척도인 독일이 이러면 안 된다고. 


둘째 날은 오후 1시에 우리 집에서 늦은 브런치를 먹기로 했다. 밀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일반 빵을 못 먹는 엘리를 위해 식탁은 과일 천국이 되었다. 그 후에도 엘리와는 우리 집에서 한 번 더 식사를 했는데 셋째 날 줄리아를 공항까지 배웅하고 뒤였다. 엘리는 넷째 날 아침 9시 비행기로 떠났다. 엘리와의 저녁을 위해 베트남 식당에서 채식용 스프링롤을 사 왔고, 집에서는 소고기 감자&토마토 수프를 준비했다. 엘리가 소고기를 먹고 힘내길 바라며. 그녀는 또 감자와 토마토를 좋아했다. 엘리는 음식을 아주 조금 먹었고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도 그녀의 옷차림만큼이나 편안하고 소박했다. 친구의 그런 점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반면, 줄리아가 좋아했던 음식은 우리 집 근처에서 열린 야외시장 아우둘트 Audult의 훈제 연어 샌드위치. 엘리는 감자 오븐구이와 연어를, 나도 줄리아와 같은 샌드위치에 엘리가 주문한 감자 오븐구이를 같이 도와줌. 친구들이 아우둘트 시장을 너무 좋아해서 오후에 가기로 했던 뮤지엄을 과감히 포기. 대신 우리 동네 마녀 카페에 갔는데 거길 또 그리 좋아했다. 이번에 보니 친구들과 내 취향이 비슷비슷했다.


브런치를 먹은 후에는 우리 집 거실에서 옛날 앨범을 꺼내보며 옛 친구들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스위스의 모니카와 엔리코가 가장 먼저 소환되었다. (취리히에 사는 모니카는 독일어권이라 독일어를, 루가노 출신인 엔리코는 이태리어를 쓴다.) 언젠가는 이 친구들과도 만날 날이 겠지. 말이 나온 김에 엘리의 대학 동창들 자비와 호세, 그리고 엘리의 남동생 루이스의 안부까지 물었다. 가을쯤 런던에서 뭉칠 땐 이 친구들도 같이 만나자고 약속했다. 나 역시 오래 연락을 못한 홍콩의 조셀린에게 연락을 보기로.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여자 셋의 수다를 보다 못한 남편이 이자르 강가로 산책을 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남자들은  이런 걸 이해를 못 할까? 



우리 집의 저녁(위). 우리 집의 브런치(가운데). 아우둘트 시장에서 직접 구운 훈제 연어구이 샌드위치와 감자구이(아래).



그래서 산책을 나갔을까? 예스 앤 노. 일단 나가긴 나갔다. 그러나 이자르 강을 따라 걷지는 않고, 조금 걷다가 다리를 건너 시내 쪽으로 다. 집에서 나오기 전 엘리가 영화를 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해서 영화도 골라둔 상태로. 저녁 날씨를 대비해서 호텔에서 따뜻한 겉옷을 챙겨 오기로 하고 그다음엔 뛰기로. 시간이 빠듯하기도 하고 작은 영화관이라 50석도 안 되는 좌석이 매진될까 봐. 친구들이 룸으로 올라간 사이 남편에게 예약을 부탁했다. 이럴 땐 동작 빠르고 협조적인 남편이 얼마나 듬직한지. 같이 본 <빛의 시네마 Empire of light>란 영화도 좋았고, 친구들은 영화만큼이나 작은 영화관도 마음에 들어 했다. 영화관에 붙은 영화 포스터를 보고 엘리가 추천한 <아디오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어제 남편과 보았다.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킨 셈.  친구처럼 다정하고도 따뜻한 영화였는데, 특히 탱고 음악과 노래가 명품이었다. 돌아보니 참 좋은 선택이었다. 삼박 사일 동안 할 수 있는 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다. 그중에 오래 기억될 만한 건 친구들과 함께 본 영화가 아닐. 시간들도. 같은 공간에 함께 앉아 영화와 함께 흘러갔을 그 시간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남편도 합류해 다시 전날의 타이 레스토랑&바로 갔고, 다시 자정이 도록 함께 있었다.


이번에 만나보니 줄리아는 좋은 엄마 같았다. 두 딸의 생일 파티를 위해 해마다 엄청난 공을 들인다고. 뭔가 특이하고도 재미있는 이벤트를 기획하려 노력한다고 했다. 저런 건 받아본 사람만할 수 있는 건데.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생각만 해도 피곤한 일이고. 줄리아 본인도 그걸 준비하며 그렇게 즐겁다나. 올해는 딸의 생일에 살아있는 동물과 곤충들을 직접 집으로 운반해서 만져보게 하 체험을 했다는데. 놀라지 마시라. 거기엔 줄리아 본인이 싫어한다는 거미는 물론이고 길이가 어마어마한 뱀도 포함되었다고. 통 크게 반 아이들을 전부 초대했는데 이런 체험을 원하지 않는 아이나 학부모는 파티에 안 도 된다는 친절한 안내문까지 미리 보냈다고 한다. 아이들은 안 무서워했을까? 전혀! 그 긴 뱀을 목에 걸어보기도 하며 그렇게 즐거워할 수 없었다고. 줄리아가 그때 사진을 찾아서 보내주겠다 했는데 제발 안 보내기를 바란다. 난 뱀 포비아가 있다. 하긴 뱀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시골에서 뱀을 자주 보고 자랐는데도 그렇다. 아마 그래서 더더욱 그런지도 모르겠고.


남편이 운전해서 공항까지 줄리아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엘리와 나는  전시회를 보러 갔다. 엘리와 마지막 날이라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엘리는 그림을 좋아하는데 뮤지엄들은 다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꽃 전시회는 성공이었다. 마지막에 꽃비가 내리는 공간에서는 사진도 많이 찍었다. 엘리에게 스페인의 산티아고 까미노 길 얘길 했더니 자기도 몇 년 전 까미노 길을 걸으려 숙소 예약까지 다 마쳤는데 코로나로 모든 일정이 취소되었다고 했다. 다시 엘리와는 까미노 이야기로 저녁을 먹고 나서도 오랫동안 이야기 꽃을 피웠다. 언젠가 꼭 가자고. 그러기 위해 둘 다 체력을 키우자고. 산티아고 길은 우리 언니의 오랜 꿈이기도 하다. 언젠가 그럴 날이 온다면 친구들도 언니도 다 함께 걸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내 친구 엘리가 남기고 간 숙제는 체력 키우기가 되었다. 나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로 굳은 결심을 한다. 그것친구들을 오래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이기에.



뮌헨의 꽃 전시회 <Flowers forever>.




작가의 이전글 뮌헨에서 밤 11시에 저녁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