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친절한 마음이 보내주신 영양 가득 야채죽과 죽과 먹기 좋도록 하나도 안 짠 계란간장조림.(담백한 연둣빛 오이지는 너무 맛있어서 받은 당일에 순삭해버림!)
허리는 수술하고 2주 만에 많이 나았다. 지금은 걷고 움직이는데 불편함이 없다. 이것은 독일식 강인한 환자 케어 시스템 덕분이라고 본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허리 수술한 다음날 바로 침대에서 손잡고 일으켜 세우질 않나, 앞으로 뒤로 걷게 하질 않나. 둘째 날에는 보조기에 양팔을 올리라더니 혼자 복도를 걸어보라 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잘하는 한민족의 후예답게 또 했네. 셋째 날에는 보조기도 없이 혼자서 복도를 걸어보라 했다. 넷째 날? 계단을 오르내리라 하고. 그다음부터는 알아서 하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그러긴 했다. 복부 수술 후 다음날부터 걸었지 아마. 아무튼 결론은 그때부터 쭉 잘 걷고 움직이고 있다. 집에 와서도 통증이 없어서 진통제는 안 먹고 있다.
병원에서 받아온 처방전을 들고 물리치료사를 찾아갔다. 뭔가 허리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동작이나 정보를 배우거나 들을까 하고. 여자 물리치료사와 함께한 시간은 10분 남짓. 나에게 기공이 도움이 될 거라며 유튜브 채널 세 개를 소개해주었다. 다음에 올 때까지 연습하고 올 것. 그리고 내게 몇 가지 동작을 알려주었다. 그것도 오케이. 그런데 특이하게도 나에게 식이를 알려주었다. 동물성 단백질먹지 말 것(어쩌나, 계란은 좋아해서 가끔먹을 생각인데. 우유나 치즈도). 동물성 지방(고기!) 먹지 말 것. 짜게 먹지 말 것. 특히 죽을 많이 먹을 것. 항암 전과 항암을 할 때. 마침 내게는 귀한 죽이 한 통 있었다. 한글학교에서 아는 분이 끓여서 보내준 야채죽이. 죽을 한 국자 덜어서 물을 붓고 보글보글 끓여서 먹고 있는데 간을 하지 않아도 반찬이 없어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나에게도 생각이 있다. 결국 항암을 하기로 했고 날짜는 2주 후로 정해졌다. 그 소식을 듣고 남편 앞에서 두어 번 눈물 바람을 했다. 우리 애를 어쩌지? 이런 생각에. 그래도 내가 누군가. 아이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울 시간이 어딨나. 정리를 해야지. 계획도 세우고. 소식을 듣고 여기저기서 도와주겠다는 분들도 많았다. 고맙다. 그러나 일단은 내가 혼자 서는 게 중요하다. 어찌 될지 모르니 만약을 위해 750개에 달하는 브런치 글부터 카테고리별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응? 이 마당에 그게 중요하냐고? 그렇다. 우리 아이가 엄마 글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느 분이 조언하신 대로 뾰족한 글쓰기는 못되더라도 뾰족한 분류라도 해놓으면 아이가 읽기 쉽겠지. 나중에 커서라도.
미역국을 끓여서 뚝배기에 담아먹으면 더 맛있다! 한국슈퍼에서 보내주신 만두는 학교에서 돌아올 아이의 간식이 된다.
그리고 식단. 사실 이게 제일 큰 문제다. 항암 성공의핵심이고 열쇠고 모든 것이다. 내 전략은 기본에 충실하자는 거다. 결론은 미역국. 산모가 몇 달을 먹어도 질리지 않을 때는 이유가 있는 거다. 다행히 난 현재도 잘 먹고 있다. 입맛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끓여봤다, 미역국. 가장 심플한 방식으로. 미역을 볶다가 물을 붓고 끓이는 거지. 한 번에 한 가지 채소를 넣기로 했다. 복잡하거나 거창하면 귀찮아서 안 하게 된다. 이번엔 집에 버섯이 많아서 넣어봤다. 왜 이렇게 맛있지? 지금은 무가 많이 나올 철이니까 무를 나박하게 썰어 달달 볶다가 무미역국을 끓여도 맛있겠다. 죽이 먹고 싶으면 미역국에 잡곡밥을 한두 숟갈 넣어서 끓이면 맛있는 죽이 되고. 이렇게 쉬운 것을!
예전처럼 항암은 1주일에 한 번하게 된다. 그러니까 항암 전날 미역국을 한 솥 끓여놓는 거다. 잡곡밥도 한 솥. 경험상 항암 당일과 다음날은 피곤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미역국에 밥 말아서 먹고 자고를 반복한다. 사흘째부터는 산책을 나가고. 장보기와 청소와 설거지는 부지런한 남편에게 맡기고, 빨래는 아이가 잘하고 있다. 가끔 남편에게 빅투알리엔 마켓에서 문어도 사 오라 하고. 언니가 신신당부하는 소고기도 조금씩 먹고. 매끼 상추도 많이. 이것이 나의 기본 전략인데 내가 생각해도 나쁘지 않다. 최대한 피로를 줄이고 힘을 비축할 필요가 있다. 2년 전에는 언니가 있어 큰 힘이 되었다. 그렇다고 항암을 할 때마다 언니를 부를 수는 없다. 언니에게도 언니의 인생과 일과 가족이 있다. 연로하신 엄마도 옆에 계시고.나 역시 남편과 아이가 있으니 혼자가 아니다.급할 때 달려와 줄 음식 솜씨 좋은 조카도 있고, 언제라도 도와주고 싶어 하시는 한국슈퍼 사장님과 J언니와 든든한 동료들도 있다.(벌써 지난주에 퇴원하자마다 우리 집으로 불고기와 만두와 총각김치와 김을 바리바리 싸서 보내주셨다.) 생각만 해도 등이 후끈하다. 벌써 힘이 솟는다. 나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
성격도 급하시지. 남편이 호박을 사 와서 아이와 벌써 할로윈 장식을 만들었다. 아이는 이 호박에게 '봅'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